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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게 됨과 양자 됨과 거룩하게 됨의 은혜-죄인인가 의인인가
은성: 아버지 오늘 소요리문답 33문답을 잘 공부했는데,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확실하게 정리가 되질 않아요.
아버지: 오늘 공부 중에 이런 말이 있었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지만 여전히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요, 따라서 날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참으로 지혜롭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인이자 죄인이다’(영어: righteous and at the same time a sinner; 라틴어 simul justus et peccator)라고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은성: 맞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나 히브리서를 배울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로 확실하게 의롭게 되었다고 했지 않았나요? 그런데 아직도 죄인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라고 하니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버지: 먼저 우리가 공부했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문답을 볼까? “
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하므로 그의 성령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은성: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네요. 그러니까 이제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너 자신을 살펴보고 과연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니?
은성: 그건 아니네요. 그리고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는데요.
아버지: 그렇지. 요한 사도의 말씀을 들어보자.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은성: 와, 여기 보니까 우리가 죄인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도 분명하네요.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 사도가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며,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한 중보자(대언자)가 계심을 알려준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은성: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죄인의 상태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고 지옥에 가는 형벌 받을 죄인이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죄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오늘도 배웠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그 영원한 생명을 잃을 수가 없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은성: 그 말씀을 들으니 언젠가 ‘관계’와 ‘교제’의 차이에 대해 배운 것이 생각나네요. 자녀가 부모님에게 잘못했을 때에 부모님을 화나게 만들고 교제가 불편하게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스도인이 연약하여 일시적으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완전히 관계를 끊어버리시는 것이 아니고 교제가 부자연스럽게 되고, 양심의 평안을 잃고 구원의 즐거움을 잃게 되는 것이요, 성령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다시 그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다고 했어요. 그것을 배울 때 저는 굉장한 위로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관계’와 ‘교제’의 차이를 모르고 무조건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하면서 두려움과 슬픔이 컸었거든요.
아버지: 너는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보니 믿음이 있는 자녀임이 분명하구나.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되고, 절대로 영생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면서 살 필요가 없고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단다.
은성: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관점에서 칭의론을 설명하며, 입으로만 주장하는 믿음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니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고 했지요?
아버지: 맞다. 사람들이 너무나 믿음만 이야기하면서 삶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심지어 죄를 지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방종의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그런 것을 보면서 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생겨나고, 구체적으로 믿음과 더불어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새로운 성경해석을 들이밀기도 한다.
은성: 듣고 보니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되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구먼요.
아버지: 그렇지. 그런데 오늘 꼭 정리할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로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이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구원의 길은 로마서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4-26)
둘째로 소요리문답 32문답은 이렇게 가르친다.
“문: 확실하게 이루시는(유효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무슨 유익을 얻습니까?
답 : 확실하게 이루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의롭다 하심과 아들로 삼아 주시는 것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이 땅에서 이와 함께 받는 여러 가지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유익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의롭다 하심과 아들로 삼아 주시는 것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는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말한다. 송아지는 소의 성격을, 망아지는 말의 성격을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니?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 생명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치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엉망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절대로 맞는 말이 아니다. 요한 사도가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9-10) 만약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를 지으며, 그것을 즐긴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 의문스럽고, 진정으로 믿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골로새서 말씀이 생각나네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우리가 한국인으로 살다가 미국에 가서 미국 시민권을 얻는다면 미국 시민의 권리도 누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긴 우리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소요리문답 32문답은 “의롭다 하심과 아들로 삼아 주시는 것”과 함께 “거룩하게 하심을 얻는 것”을 말한다. 소요리문답 32문답은 이에 대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이루시는 것인데, 이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몸과 마음이 새로워짐을 얻고 점점 죄에 대하여서는 능히 죽고 의에 대하여서는 능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보면 ‘죄인인가’ 아니면 ‘의인인가’의 의문에 대한 답변이 확실하게 보인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몸과 마음이 새로워짐을 얻고’ ‘점점 죄에 대하여서는 능히 죽고 의에 대하여서는 능히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확실한 답변이라고 생각되지 않니? 죄를 짓기는 하지만 점점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현실이다. 이것을 ‘성화’라고 말하며, 소요리문답 36문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 땅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신 것과 거룩하게 하심에서 함께 받는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아는 것과 마음이 평안한 것과 성령 안에서 얻는 즐거움과 은혜의 자라감과 끝까지 굳게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문답을 보면 참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갈수록 장성하며, 결국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의롭다 하신 자는 죄가 있다 할지라도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의인인데, 죄를 전혀 안 짓는 의인이 아니라 여전히 죄를 짓는 의인이다. 그리스도인의 옛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함께 죽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할 때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롬 6:4-11). 이제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롭다 하시는 그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 2:20). 바울이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을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이다. 이 말씀의 초점은 바울의 죄인 됨에 있지 않고 죄인인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께 초점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인 됨보다는 새사람 됨의 분명한 확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죄를 짓지만 죄가 왕 노릇하지 않고 의가 왕 노릇하기 때문이다.
은성: 굉장하네요. 성경과 소요리문답을 잘 설명해 주시니 이제 잘 정리가 되었어요.
아버지: 우리가 오늘 보았듯이 소요리문답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궁금증을 다 풀어줄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이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깨달으면 믿음이 든든하게 뿌리내리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된다.
은성: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소요리문답을 공부하는 교회가 참 좋은 교회이고, 교인들이 열심히 이 소요리문답을 공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우리가 소요리문답을 다 배우면 대요리문답을 배우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배울 필요가 있다.
은성: 그렇게 해야 하겠네요. 정말 이렇게 좋은 공부를 하면서 은혜를 누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이렇게 큰 것이지. 오늘은 이만큼 하자.
은성: 예. 오늘 많이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나도 너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어서 고맙다.
* Martin Luther's Latin phrase, "Simul Justus et Peccator."
By whose righteousness will we be judged? In this brief clip, R.C. Sproul shares the very heart of the gospel as he explains Martin Luther's Latin phrase, "Simul Justus et Peccator."
This Reformation Month, watch a short video every day on the history and insights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 And don't forget that for this month only, you can request your free digital download of R.C. Sproul’s video teaching series Luther and the Reformation plus the ebook edition of The Legacy of Luther, edited by R.C. Sproul and Stephen Nichols at ligm.in/Reformation. Offer ends October 31, 2019.
Play: https://youtu.be/xci-kUhXOW8
Perhaps the formula that Luther used that is most famous and most telling at this point is his formula simul justus et peccator. And if any formula summarizes and captures the essence of the Reformation view, it is this little formula. Simul is the word from which we get the English word simultaneously. Or, it means 'at the same time.' Justus is the Latin word for just or righteous. And you all know what et is. Et the past tense of the verb 'to eat.' Have you et your dinner? No, you know that's not what that means. You remember in the death scene of Caesar after he's been stabbed by Brutus he says, "Et tu, Brute?" Then fall Caesar. And you too Brutus? It simply means and. Peccator means sinner.
And so with this formula, Luther was saying, in our justification we are one and the same time righteous or just, and sinners. Now if he would say that we are at the same time and in the same relationship just and sinners that would be a contradiction in terms. But that's not what he was saying. He was saying from one perspective, in one sense, we are just. In another sense,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we are sinners; and how he defines that is simple. In and of ourselves, under the analysis of God's scrutiny, we still have sin; we're still sinners. But, by imputation and by faith in Jesus Christ, whose righteousness is now transferred to our account, then we are considered just or righteous. This is the very heart of the gospel.
Will I be judged in order to get into heaven by my righteousness or by the righteousness of Christ? If I had to trust in my righteousness to get into heaven, I would completely and utterly despair of any possibility of ever being redeemed. But when we see that the righteousness that is ours by faith is the perfect righteousness of Christ, then we see how glorious is the good news of the gospel. The good news is simply this, I can be reconciled to God, I can be justified by God not on the basis of what I did, but on the basis of what's been accomplished for me by Christ.
But at the heart of the gospel is a double-imputation. My sin is imputed to Jesus. His righteousness is imputed to me. And in this two-fold transaction we see that God, Who does not negotiate sin, Who doesn't compromise His own integrity with our salvation, but rather punishes sin fully and really after it has been imputed to Jesus, retains His own righteousness, and so He is both just and the justifier, as the apostle tells us here. So my sin goes to Jesus, His righteousness comes to me in the sight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