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잎은 솔잎처럼 가늘고 특이하게 ‘분홍색’ 꽃 피죠
김민철 논설위원별 스토리 • 10시간 전
대체로 노란색에서 붉은색 사이 색을 띠는 다른 나리 꽃과 달리 솔나리꽃은 분홍색이에요. /김민철 기자© 제공: 조선일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야생 나리(백합과 나리속)는 10개가 넘지만 솔나리는 그중 가장 개성 만점인 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다른 나리 꽃은 대체로 노란색에서 붉은색 사이인데 솔나리꽃은 유일하게 분홍색입니다. 드물게 꽃이 흰색인 흰솔나리도 있습니다. 또 다른 나리들은 모두 잎이 긴 타원형이지만 솔나리만은 잎이 솔잎처럼 좁고 가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솔나리입니다. 이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도 꽃 색과 잎 모양을 보고 솔나리를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자라는 곳도 독특합니다. 나리 중 참나리는 사람 사는 곳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다른 나리들도 산에서 그렇게 높지 않은 능선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나리는 깊은 산 정상 부근이나 능선 풀밭 또는 바위틈에서 자랍니다. 적어도 해발 800m 이상, 최소한 2~3시간을 땀 흘려 산에 오르지 않으면 솔나리를 만날 수 없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도 7~8월로, 가장 늦게 피는 나리입니다. 여러 가지로 개성이 강하고 만나기도 힘들어 도도한 느낌을 주는 나리입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몇 년에 한 번 보는 정도입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50여 곳의 자생지가 있다는데 개체 수가 많지 않은 데다 훼손도 심해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솔나리 줄기는 중간에서 4~5개로 갈라지고 줄기 끝에 꽃송이가 옆이나 밑을 향해 달립니다. 꽃잎은 6개이고 꽃잎 안쪽에는 자주색 반점이 있으며, 꽃이 활짝 피면 꽃잎이 뒤쪽으로 젖혀집니다. 고산에서 자라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습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솔나리의 영어명은 노딩 릴리(Nodding lily)입니다.
야생 나리 중에서 그냥 ‘나리’라는 식물은 없고 참나리·땅나리 등처럼 접두사가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이들 나리 이름 규칙을 알면 나리를 만났을 때 이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꽃이 피는 방향에 따라 접두사가 다릅니다. 하늘나리는 하늘을 향해 피고, 중나리는 옆을 향해, 땅나리는 땅을 향해 핍니다.
여기에다 ‘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줄기 아래쪽에 여러 장의 잎이 수레바퀴 모양으로 돌려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말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고 잎이 돌려나는 나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울릉도 특산인 섬말나리는 돌려나는 잎이 1~3층으로 여러 층인 것이 특징입니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리는 참나리입니다. 참나리는 잎 밑부분마다 까만 구슬(주아)이 붙어 있어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주아는 땅에 떨어지면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는 씨 역할을 합니다. 무성생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왕성하게 자손을 퍼뜨려 화단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나리들은 꽃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털중나리를 시작으로 솔나리까지 아름다운 나리꽃을 차례로 볼 수 있습니다. 나리 이름 규칙을 알았으니 올여름 나리를 만나면 이름 맞히기를 한번 시도해보세요.
김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