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에게 영화는 말과 침묵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다. 그가 그리는 세계에서 언어는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자신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기에 암묵적인 합의로 만들어진 오해로 이루어진다. 그의 영화적 메커니즘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했다. 다른 대상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만들어지는 관계의 화학반응을 관찰하거나 (아사코), 우연을 인위로 발생시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가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우연과 상상) 그러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궁극의 소통 수단인 언어의 불완전성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상처 입고 위로받는 가를 (드라이브, 마이 카)그려냈다. 그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이하 ’악은‘)는 앞선 영화 실험들을 모아 자연 상태에서의 균형이라는 결과를 도출하려 한다. 도시와 자연이라는 경계는 인간이 그어놓은 선일뿐 누구라도 생태라는 자장 안에서 무너지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존재임을 입증하려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에서 대사는 말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었다. 내면과 외면을 연결하는 수단이자, 극중극이라는 설정 안에서 극 밖에 쓰이는 언어와 안에서 쓰이는 언어를 서서히 섞이게 만들어 현실과 극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을 그 속으로 불러들였다. 이번 작품 ‘악은’은 그 반대의 경유를 택한다고 볼 수 있겠다. 줄거리는 단출해지고 인물은 철저히 자신을 감추는 듯한 방식으로 연기한다. 마치 이미지와 사운드가 정해진 상태에서 필요한 이야기만을 넣어 주제를 드러내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전체의 얼개는 다소 느슨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8살 난 딸 하나와 함께 사는 타쿠미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연에 기대 살아간다. 숲과 그 숲이 만들어내는 물은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 그들에게 도시에서 온 이들이 마을에 글램핑장 조성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금전적 이득을 제시하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숲의 생태는 주민의 삶과 직결된다는 논박에 계획한 일들은 난항으로 이어진다. 초반부의 상황들만 따라가면 생태주의적 관점의 이야기로 읽힐지도 모른다. 개발을 미는 도시의 회사 샘물을 지키려는 마을 주민들 그 중간에서 권태와 동경을 느끼는 타카하시와 마유즈미의 모습까지 표면상의 이야기는 도시의 탐욕과 자연의 순수로 보이지만 실상 이영화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는 범주 안에 속하는 ’ 악‘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하고 묻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목이 등장하기 전에 나오는 현악기로 만들어내는 미묘한 소리에 틸트 되기 직전까지 보이는 숲속에 하늘을 담아내는 롱테이크다.
극단적인 로우 앵글 화면이 숲 속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들은 손처럼 가지를 뻗고 있다. 관객은 그 시선이 누군가의 것이라고 짐작할 무렵 처음으로 ‘하나’라는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오프닝에 등장하던 시점이 특정 누군가의 시선이 아님을 드러내려는 듯 하나를 프레임 아웃이 된 상태에서 프레임을
잡아낸다.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초반에 타쿠미가 하나를 데리러 가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하나가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포징 된 모습을 잡아내는 트래킹 샷은 그 자체로 기괴하면서도 이 시선이 마치 차에 타고 있는 타쿠미의 시선처럼 착각하게 하지만 여시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비추며 앞선 화면이 시점샷이 아님을 강조한다. 사운드의 사용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쓰인다. 모든 경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영화에서 사운드는 이미지를 가리거나 드러내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화면에 이질적으로 어울리거나 엉뚱한 지점에서 시작과 끝을 맺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는 시선이 인물에게서 혹은 화자의 입장인 프레임 밖의 존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현상을 관찰하는 화면이라는 사실을 주지 시키고 사운드 역시 현장의 소리와 외부에서 입혀진 것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관객의 이입에 의한 가치 판단과 동조가 아닌 자연사적 존재의 양태를 지켜보라 주문하고 있다.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은 악을 존재하게 하지 않으려는 상태가 악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발생시킨다. 영화에서 자연에서 가장 지향점이 있다면 그것은 균형일 것이다. 극이 진행될수록 모든 미장센과 인물들의 관계가 대비를 이루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빽빽한 숲이 만들어내는 음영을 시작으로 사고의 방식이 전혀 다른 도시와 자연이 대비되고 타쿠미가 뜨는 샘물은 생을 이어가는 삶을 의미하지만 그가 자르는 장작 나무는 죽음으로 비친다. 학교 안의 어른들의 간담회와 밖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역시 문 하나를 두고 갈리는 형태도 마치 자연과 인간의 경계처럼 묘사 된다. 마을에 가장 큰 어른인 스루가가 하는 상류와 하류에 관한 이야기 역시 전혀 다르면서 동시에 연결된 것들의 대비처럼 읽힌다. 자연은 대비를 통해 균형을 만든다. 샘물은 땅 와사비 같은 풀들에게 양분을 주고 지역 우동가게의 정체성이 된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무는 장작이 되기 위해 죽어가고 잘려나간 둥치 위에는 타쿠미의 딸 하나가 서있는 방식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도쿄의 회사는 글램핑장을 만들어 코로나 지원금을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악은 현상을 유지하려 하는 자연의 순환이다. 반면 자연에게 그들은 균형을 깨려는 존재다. 사냥을 피해 물가로 다니는 사슴들의 보금자리이자 마을의 정체성과 같은 샘을 파괴하려는 악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류이자 하류인 존재다. 위에서 내려오고 흐르다 고이는 방식 모두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자연은 생겨난 것은 소멸하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것이 채워지는 형태를 유지한다. 어떤 존재도 그 자장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목적성을 갖고 행동을 한다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한들 태어난 것들은 반드시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파국으로 향하는 결말은 예정된 죽음으로 간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초반부에 하나가 타쿠미에게 업혀 대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부녀는 숲에 나무들의 이름을 가르쳐주며 걷는다. 나무는 영화 속에서 죽음에 가까운 이미지를 갖는다. 종반부가 되어 하나를 호명하는 것은 부름보다 애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런 식으로 보면 인물들의 이름 역시 묘한 구석이 있다. 타쿠미는 목수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하나는 꽃이다. 타카하시는 교량을 의미하고 마유즈미는 눈썹을 그린다는 말이다. 자연이라는 목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교량을 끊어냄으로써 균형을 맞추고 꽃은 지기 마련이다. 꽃이 떨어진 빈자리에 눈썹을 그리듯 채우는 것은 순환의 순리다. 이들은 언제든 서로에게 상류이자 하류가 될 수 있는 의미를 가졌다. 삶은 죽음으로 파생되고 이어진다. 하나가 숲에서 줍는 깃털 역시 비슷한 메타포를 지녔다. 챔발로를 연주하기 위해 꿩의 깃털은 필요하지만 꿩의 죽음을 담보해야 한다. 무언가 죽으면 상응하는 뭔가가 함께 따라가야 하는 섭리를 알기에 스루가는 하나에게 숲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로우 앵글로 숲을 위로 올려는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오프닝에선 낮을, 엔딩에선 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장센과 인물, 내러티브 역시도 대비의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한 세계의 내면이 이토록 양가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카메라가 관객을 속이는 방식으로 화면을 만드는 이유는 믿었던 순간을 어쩌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볼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죽는다. 선이냐 악이냐 묻는 대신 이름을 붙여주자. 그 순간에 일상은 신화가 된다.
첫댓글 시점샷이 아니다. 삶은 죽음으로 파생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좋아요, 이제 영화를 보러 가면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보고싶은 영화가 또 쌓이네요.
ㅋㅋㅋ
새벽에 올리신 글 읽으며 영화에 진심이신 소대가리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오늘도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가여운 것들 보러 가셨나요?ㅋㅋㅋㅋ
@족구왕
저도 일단 오늘 보려고 예매해두었습니다. 보고나서 다시 한번 읽어볼께요~
보시고나면 리뷰~~!!!!!
@안젤리나 졸려 오늘 시간이 안되서 일단 취소ㅋㅋ
저도 예매해야겠네요.^^ 보고 나서 다시 읽으러 올께용 ㅋㅋㅋㅋ
글 한편 읽었는데, 영화를 본거 같네요 ㅎㅎ
늘 놀라웠던것이 소대가리님은 영화를 한번 보시고 이 모든게 분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과 끝장면의 디테일이 세세하게 기억날정도로니..리스펙입니다.
언제나 깊은 통찰에 놀랍니다
첫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선이 누구인가 했어요
바닥을 기는 공벌레의 등에 달린 눈인가..
그랬으면 이 영화가 더 쉽긴했겠지만 하감독은
그러진 않았죠
로우앵글로 숲을 보던 카메라가 거칠게 전환되어
하나를 비출때만도 그런가보다 했어요
두번째 거친 카메라전환이 있고부턴
뭔가 꿍꿍이를 잔뜩 숨기고 있군 싶었어요
카메라의 시선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단지 보여지는것이라는 것을 혼자 결론내고 나선
좀 편안해지긴 했어요
카메라 움직임에 감탄하고
인물들을 관찰하고
밋밋한 서사를 잘도 집중시키는구나 생각하면서
(이 영화주인공이 우연과상상의 스탭이었다는데
하감독님의 배우는 늘 그런식이죠
다른 작품을 보신분이면 다른영화에서는 만날수없는
배우들을 찾아서 아마 반가우셨을거예요)
적어도 엔딩의 곤혹스러움을 마주하기전에는 말이죠
제 곤혹스러움을 좀 정리해보고자 했지만
뭐할려고 싶어서 (바로 다른 영화보기도 바빠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소갈님 리뷰는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