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드림>은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과 행동으로 모든 감정과 의사를 전달한다. 팬시한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쇼트의 결합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치 초창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션을 보는듯한 움직임과 다양한 레퍼런스로 활용한 영화의 아미지들까지 재미있다. 하나, 영화가 담고 있는 깊이만큼은 가볍진 않아 보인다. 얽힘과 설킴을 겪는 이들과 그들이 서있는 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담아내고 있다.
1980년대 뉴욕은 미국의 풍요를 대변하는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브라운관에서는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화려한 비주얼만큼이나 화려한 사운드로 무장한 메탈밴드의 음악이 주류였던 때이기도 했다. 도그는 그 도시에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외로운 시민이다. 전자레인지에 맥엔 치즈를 데워 먹으며 티브이채널을 암만 돌려도 결국 마주하는 건 꺼진 브라운관 화면에 비친 자신이다. 상대가 있음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알던 ‘우리’라는 범주는 파괴 되었고, 만들어진 파편은 개인이 느끼는 고독마저도 지불과 구매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주입한다. 로봇은 당신이 느끼는 혼자라는 감각을, 거기서 발생하는 우울과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 말한다. 미디어가 보내는 신호에 도그는 반응했고 로봇을 구매한다. 박스가 도착하고 내용물을 조립한다. 전원을 켜니 작동을 하고 마침내 파트너가 생겼다. 로봇의 모든 행동과 성격은 도그로부터 주입된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까지 함께하는 그들은 마치 본체와 그림자 같은 관계가 된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는 9월이다. 처음 만난 날도 , 함께 즐겨 듣는 노래도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다. 그들은 폐장을 앞둔 해수욕장을 찾는다. 혼자라서 갈 수 없었던 그곳을 둘이라 함께 갈 수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충실했고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기계인 로봇에게 물은 치명적이었고 도시의 규율이라는 철조망으로 된 장벽은 그들을 갈라놓는다. 9월에 시작된 그들의 사이는 6월을 기약해야 한다. 영화는 뉴욕의 가장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계절 9월을 통해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본 이들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지금 거기에 당신은 기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오셨나요?“
불가항력의 이유로 헤어짐을 맞이한 그들은 각기 다른 꿈을 꾼다. 로봇은 꿈 안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 고쳐진 상태로 철조망을 넘는다. 흥겨운 기분으로 도그를 만나러 가지만 도그는 집에 없고 두 번째 꿈에는 자신이 아닌 다른 로봇과 함께 한다. 세 번째에 들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난다. 도그의 꿈에는 로봇대신 눈사람이 나온다. 친해지고 싶지만 모든 것이 서툰 자신에 비해 주목받는 눈사람, 이내 그는 로봇으로 변하고 도그는 마치 악몽에서 깨듯 잠에서 깬다. 도그는 그 후로 새 친구를 사귀거나 애인을 만들어 보려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들이 꾸는 꿈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도그에게 로봇은 외로움을 충족시켜 줄 자신의 분신이라면 로봇에게 도그는 ‘나’라는 기억을 만들어준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로봇은 꿈속에서 자유롭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생명의 탄생을 위해 새들에게 기꺼이 품을 내주지만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은 떠난다. 혹시나 도움을 줄 거라고 믿었던 토끼들은 어떤가? 그들은 다가와 로봇의 다리를 자르고 필요한 부분만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가져간다. 금속 탐지기를 든 원숭이는 해변에서 발견한 로봇을 고물상에 팔게 되고 그는 자아를 잃은 고철이 된다.
<로봇 드림>은 그들이 꾸는 꿈과 그 이후에 벌어지는 현실을 통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뉴욕이라는 도시의 양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장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80년대지만 60년대부터 이어진 해결이 안 되는 갈등 안에서 개인이 견디는 고독은 로봇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을 연상케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잃은 공장 노동자를 은유한 그 캐릭터는 지금에 와서 꿈을 꾸는 로봇으로 재현된 것이다. 도그 역시 그렇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를 사귀어도 그들은 내 맘처럼 통하는 부분이 없고 결국 돈을 써서 구매한 새로운 로봇만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이 눈에 밟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잃어버리고 망각하는 것들 사이에 두고 온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둘’ 이라는 관계는 대칭을 이룰 때 조화롭다.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가오는 사람이 있고, 떠나는 이가 있다면 제자리에 있는 이도 있다. <로봇 드림>은 이 이분화되는 ‘사이’라는 명사에 대한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망가진 로봇은 너구리라는 새 가족을 만난다.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로봇의 시점으로 영화는 결말을 향해 간다. 전혀 다른 몸으로 살고 있지만 잊지 않고 있던 도그와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다. 고대하던 재회는 기적처럼 일어나고 달려가 그를 잡아보지만 프레임은 넓어지며 두 명이 아닌 네 명을 담아낸다. 도그와 새로운 파트너, 로봇과 그를 따라나온 너구리 그 순간 화면을 전환하며 가장 <로봇 드림>다운 방식으로 그것이 상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우의 기쁨은 곧 너구리의 서운함이란 사실을 알기에 유리에 투영된 자신의 변한 모습을 봤기에 로봇은 도그를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로봇은 이제 새로운 몸체인 카세트에 음악을 재생 시킨다. 그들이 함께 듣던 “September”를 노래가 만드는 진공 안에서 개는 꼬리를 흔들 것이고 로봇은 너구리와 함께 핫도그를 먹을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찬란한 이별을 하고 있다. 그 모든 순간들은 언젠가 모래에 파뭍히고 파도에 휩쓸려 가겠지. 그렇다고 추억까지 부식되진 않을 것이다. 우연이란 인연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든 꼭 다시 만날테니 말이다.
*구현우 시인의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에서 빌려왔음.
첫댓글 한치의 공감도 제거할수 없는 리뷰네요
이런 영화 보고나면 깨끗이 표백된 흰 빨래가 된것 같아요
건조기말고 여름태양에 말린 빨래요
로봇의 다리를 이전의 다리와 같은 색을 칠해서 비슷하거나 같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는게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것같아요
오늘은 태클없이 잘 읽었어요
포스터랑 각종 딱지? 굿즈를 받아서 기분좋았는데
어딨지?ㅋㅋㅋㅋ
막연히 좋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왜 좋은지 이제 알겠어요^^ earth wind fire September ㅠ.ㅠ 소대가리님 👍 청소기 다리 금색 다리가 계속 생각나요. 짝이 안맞아도 조금씩 나아가는 발걸음이 중요하죠. 꽃. 바다. 사월. 그분들도 부디 🙏 😥
아
팬시한분위기와 경쾌한 음악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시대상황이나 소비패턴들도 충분히 공감가는 말씀🤗
글을 읽다보니 막연하지만 어떤 이미지들이 촤르르르 지나가네요.
리뷰를 읽은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마음들게 해주셨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잘지내시죠^^😁
항상 제 머릿속 복잡한 것들을 다 정리해주시는 소대가리님 글은
늘 정리되어있는 한편의 완성된 책같아요🙏
대사가 없어서 제가 느낀 감정으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수있어서 더 좋았어요.
혹시 ...댓글부대 리뷰는 없나요🫣
"우연이란 인연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든 꼭 만날테니 말이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이거 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봤네요..다들 좋다고는 하셔서..
뭔가 사랑스러우면서 쓸쓸할거 같은 영화 리뷰네요.
로봇드림의 영화보다 소대가리님의 리뷰가 더 마음에 와닿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