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극우파 국민전선 장 마리 르펜 후보가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진출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과 국제사회 전체가 떠들썩하다. 우리나라 신문·방송들도 크게 다루었다. 이것이 정말 그렇게 큰 일일까. 르펜의 득표율은 겨우 17%다.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치세력이 한결같이 르펜을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르펜이 결선에서 자크 시라크를 꺾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공화국의 수치’로 규정했고 여러 도시에서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다.
여야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진행중인 우리나라에도 좌우 논쟁이 있다. 좋은 기회다.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불거진 극우 논쟁을 참고삼아 우리 사회의 좌경화 또는 우경화 정도를 한번 짚어 보자. 극우파 르펜은 도대체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일까.
“모든 불법 체류자를 즉각 추방하자”. 프랑스에서는 이런 게 극우파의 주장이다. 정상적인 우파와 좌파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되도록 너그럽게 대하자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불법 체류자는 적발되면 예외없이 추방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약점을 악용해서 악덕 기업주들은 임금을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정부는 3D 업종 구인난을 이유로 이런 범죄행위를 눈감아준다. 프랑스인의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국가 그 자체가 르펜보다 훨씬 더 극우적이다.
“강력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사형제를 부활시키자”. 이것 역시 프랑스에서는 극우파나 하는 주장이다. 정상적인 좌·우파는 모두 사형제에 반대한다. 그러면 한국은? 사형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확실한 극우파 국가다.
르펜의 ‘극우적 공약’은 유럽통합조약 탈퇴, 유로화 추방, 내국인을 우대하는 고용정책, 주 35시간 노동제 철폐, 국산품 보호, 핵전략의 현대화와 미국 중심 신국제질서 거부, 모든 종류의 마약 불법화, 상속세와 소득세의 궁극적 폐지 등 외교·안보·노동·경제·사법 등 사회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
독자들께 권한다. 어떤 공약이 마음에 드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공약을 할 필요조차 없는 사항이 몇개나 되는지 세어 보시라. 만약 르펜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이곳이 ‘극우파의 해방구’라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할 것임이 분명하다. 극우와 정상적인 우파, 극좌와 정상적인 좌파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관용의 유무다. 자기의 것과는 다른 견해를 용납하지 않고 법률과 제도와 폭력으로 발본색원하려는 순간, 우파는 극우가 되고 좌파는 극좌가 된다.
한국 국민과 언론이 르펜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없다. 우리는 르펜이 말로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극우적인 법률과 제도를 반세기 넘게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천하의 르펜도 국민들이 공공장소에서 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법률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 ‘이념검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좌·우 극단주의뿐이다. 극단적이지 않는 한 모든 견해를 용납한다.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보면 르펜보다 훨씬 더 극우적인 정치집단과 언론사들이, 자기와는 다른 모든 사상적 경향을 가리켜 ‘좌익’이라며 ‘사상검증’의 칼을 들이댄다. 극우적이지 않은 모든 사상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딱지를 붙인다. 민주주의는 좌(左)와 우(右)를 모두 포용한다. 위험한 건 언제나 좌나 우가 아니라 좌·우의 극단이다. 한국의 극우파는 자기가 극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