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고전주의의 탄생 - 2음절 나노칩을 택한 2009년 케이팝 ‘쏘리 쏘리’(성기완)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쏘리 쏘리(SORRY, SORRY) 작사·곡: 유영진
①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내가 내가 먼저
네게 네게 네게 빠져
빠져 빠져 버려 baby
Shawty Shawty Shawty Shawty
눈이 부셔 부셔 부셔
숨이 막혀 막혀 막혀
내가 미쳐 미쳐 baby
바라보는 눈빛 속에
눈빛 속에 나는 마치
나는 마치 뭐에 홀린 놈
이젠 벗어나지도 못해
걸어오는 너의 모습
너의 모습 너는 마치
내 심장을 밟고 왔나봐
이젠 벗어나지도 못해
어딜 가나 당당하게
웃는 너는 매력적
착한 여자 일색이란
생각들은 보편적
도도하게 거침없게
정말 너는 환상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네게 빠져 버렸어
①반복 (중략)
2009년은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해였다. 연초에 소녀시대의 ‘지’(Gee)가 나왔고(2009.1.5), 봄이 되자마자 슈퍼주니어(슈주)의 ‘쏘리 쏘리’가 발매되어 전세계 댄스플로어를 강타했다(3.12). 2008년 하반기에 ‘미쳤어’를 부르며 주로 의자에 앉아 있던 손담비가 복고풍의 ‘토요일 밤에’를 발표하여 봄날의 형님들을 심쿵하게 했다(3.24). 겨울, 봄 시즌에 가해진 에스엠(SM)의 융단폭격에 와이지(YG)는 라이브로 대항했다. 1월30일 빅뱅의 ‘빅쇼’를 1만3천명 관객으로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했으나 음원 쪽은 매복 태세였다. 슈주의 기세가 꺾일 때쯤인 5월에 투애니원(2NE1)이 ‘아이 돈 케어’(I don’t care)를 앞세워 화려하게 데뷔했다(5.17). 반격이었다. 제이와이피(JYP)는 원더걸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2008년에 발표하여 원더걸스 최고의 히트곡이 된 ‘노바디’(Nobody)의 영어 버전이 6월에 발매됐다. 포미닛이 ‘핫 이슈’를 발매해서 관심을 모았다(6.21). 그해 여름은 투애니원과 브라운아이드걸스(브아걸)와 카라의 시즌이었다. 투애니원은 후속곡 ‘파이어’(Fire)로 불을 질렀고(7.8), 브아걸이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걸며 뇌쇄적인 눈빛으로 그 유명한 ‘시건방춤’을 추기 시작했다(7.21). 빙빙 도는 골반에 다들 홀렸다. 카라 역시 빙빙 돌렸다. ‘미스터’를 발매해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7.30).
이렇게 2009년 봄여름, 단 두 계절 동안 케이팝은 완성됐다. 그 이전의 케이팝이 남한이라는 로컬의 민속음악이었다면 그 이후의 그것은 전세계가 즐기는 보편적인 팝음악이 되었다. 2009년의 케이팝은 음악적으로도 최고였다. 이해에 나온 케이팝 이디엠(EDM·Electric dance music)을 능가하는 곡은 여전히 없다. 한국에서 최고의 감각을 지닌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거액의 돈을 받으며 대박을 위해 종사했다.
주의할 것이 있다. 이때의 감각이란 ‘디자인 감각’을 말한다. 2009년 이후 케이팝은 디자인 제품을 생산한다. 케이팝 제품들은 자동차와 비슷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지만 거기에 멋진 외모를 더해야 한다. 튀면 안 되지만 평범해도 안 된다. 한마디로 심플하고 멋져야 한다. 자동차에도 첨단 아이티(IT) 기술이 접목되어 있듯, 케이팝 역시 첨단 디지털 테크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케이스를 뜯으면 그 안에 녹색 보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래들은 마스터링된 사운드라는 인터페이스 밑에 100% 디지털 코드들로 접합된 보드를 가지고 있다.
2009년산 케이팝 제품의 특성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노래가 ‘쏘리 쏘리’다. 이 노래는 한국 팝의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었다. 예술사가 뵐플린이 주장한 ‘바로크-고전’의 작용-반작용은 한국 팝에도 잘 적용된다. 2009년 이전의 한국 팝이 변화와 역동성, 순간적인 용솟음과 운동성을 강조하는 바로크적 경향을 띤다면, 그 이후의 한국 팝은 균형과 절제, 극단적인 형식미와 잘 마감된 디테일을 강조하는 고전주의 계열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사실 세계적인 면이 있다. 세계의 모든 팝 음악은 디지털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인디 음악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생산라인에서는 요소들의 복제와 반복적 배치, 질서 있는 구조화가 필수적이다. 그 영향으로 21세기의 팝은 네오클라시시즘적 경향을 띠게 된다. 이 경향을 ‘디지털 고전주의’라 불러 보자. 비틀스와 이디엠은 슈만과 바흐만큼이나 성격이 다르다. 이러한 21세기적 경향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반영된 팝 제품을 출시하는 데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고, 2009년은 그 완성도가 정점에 달한 해라 할 수 있다. ‘쏘리 쏘리’는 그 시기에 생산된 대표적인 제품이다.
디지털 고전주의는 가사의 측면에서도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전통적인 가요 노랫말이 서정성이 깃든 오솔길을 연상시킨다면, 쏘리 쏘리의 가사는 회로도를 연상시킨다. 반도체를 집적하여 메모리칩을 만들듯, 발음과 음가와 뜻을 지닌 낱말들을 기판에 납땜하여 가사칩을 만든다. ‘쏘리 쏘리’는 2음절의 칩들로 구성되어 있다.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내가 내가 내가 먼저
네게 네게 네게 빠져 빠져 빠져 버려 베이비
정교하게 2음절로 된 말들을 잘 골라서 가사의 회로도를 구성한다. 2음절 8개씩 두 줄로 기본 구성되는 회로도다. 맨 끝의 2음절은 살짝 3음절로 처리한다. 이 미세한 변화는 심플한 디자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제품의 디테일을 예쁘게 만든다.
2009년에 케이팝은 3~4음절로 되어 있던 기존의 가사칩을 버리고 1~2음절의 나노칩을 채택한다. ‘지’는 1음절, ‘쏘리’는 2음절이다. 2음절 가사칩은 그 이후의 케이팝 이디엠에서 보편화된다. 어떤 노랫말 칩도 2음절을 넘으면 재고의 대상이 된다.
케이팝 가사칩은 낱말의 국적이 모호한 다국적의 어휘를 선호한다. 한국말과 영어가 한 노래의 기판 위에 적절하게 배열된다. 이 회로도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뜻이 아니라 발음의 연결성이다. 한국말이든 영어든 그 연결성의 측면에서는 동일하게 기능한다. 말은 달라도 이진수가 조합된 아스키코드를 쓰는 건 어느 언어나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그 안에 세계 팝의 역사를 살짝 일깨우는 문화적 코드도 숨겨놔야 한다. 이 노래에서는 ‘쇼티’(shawty)라는 단어가 그 역할을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칭할 때 쓰는 흑인 속어에서 유래한 ‘쇼티’란 단어는 힙합에서 참 많이 쓰였다. 세계 시장에 나갔을 때, 이런 단어들은 그쪽의 언더그라운드에 접합될 플러그인 요소로 작동한다. 이런 것들을 잘 배열하여 내용보다는 형식 중심으로 구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결국 이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너 이쁜데 나랑 사귈래?’ 케이팝이 전세계를 꼬신다. 나랑 사귀자고. 예전 같으면 남한 남자애가 세계를 상대로 할 수 없었던 도발이다. 볼품없고 찌든 느낌의 제3세계 냄새가 나는 놈이 무슨. 그러나 디지털 시스템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소리의 퀄리티도, 가사도, 외모도, 국적과 지역성을 잘 지워준다. 디지털 처리 되면 일기장의 내용은 사라진다. 이제 그 누구도 그 내용은 볼 수가 없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