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물안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유령이라는 언급을 통해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되지만 어딘가에나 있고 공통의 목격 대신 개별적으로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는 미지의 대상이라고 표현해야 할 듯하다. 홍상수는 유령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상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경계를 관찰하고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로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관객은 홍상수의 영화를 통해 그의 삶에 이면이나 혹은 호소하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만 정작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영화적 실험일 뿐이다. 물론 사적인 이야기가 다큐처럼 비칠 수는 있어도 그 용도는 삶을 반추하는 것보다 보편이라고 믿는 편견과 시선을 비틀린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영화의 기능인 현실의 이면을 보여주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라는 사회적 개체가 맞닥뜨릴수 있는 보편적 상황의 연출일 뿐이다. ‘여행자의 필요’라는 이번 신작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언어와 언어가 성기는 충돌과 융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을 관찰하고 보여주려 한다. 우리가 반복하는 것은 시간인가 인지인지 낯선 여행자의 걸음을 통해 묻고 있다.
‘여행자의 필요’는 이리스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의 하루를 팔로우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개인 교습을 한다. 이송과 원주라는 두 인물을 상대하는 과정은 마치 같은 일을 반복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리스의 교수법은 기존에 문자와 문법을 익히는 외국어 교육의 방법에서 벗어나 있다.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내면을 드러내는 훈련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고 싶었던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뱉어내면 이리스는 인덱스카드에 프랑스어로 그 말들을 적어준다. 그 둘을 교습하면서 그녀는 동일한 경험을 한다. 대화가 이어지고 음악을 들려준다. 이리스는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지루한 기색을 보이다가 프레임 밖으로 벗어난다. 소리가 있고 같은 공간에 있으나 틸트로도 패닝으로도 이리스를 담아내지 못한다. 이리스는 묻는다. 만족스러운 연주였나요? 이송과 원주는 비슷한 답변으로 만족스럽지 못하고 남의 평가가 두렵다고 한다. 형식과 형태는 있으나 내용도 감정도 없는 연주, 그것은 그들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와 통한다. 공허와 결핍이 불러오는 불안을 내용 없는 언어로 포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어느 날 나타난 여행자 이리스를 통해 스스로를 진솔하게 마주 보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리스는 자신이 만난 이들에게 내면에 감정이 나오도록 해준 산파와 같은 역할이었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테이프에 녹음을 해주며 다시 청취하길 권하는 것은 탈관습이 되는 과정을 기억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 영화 속의 여성들은 한국이라는 사회에 뿌리내린 젠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송과 원주는 아버지에게 늘 미안하다. 젊고 아름다웠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로 쓰다가 요절하고 원주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해순은 변호사였다가 영화사 사장으로 삶에 변화를 시도한다. 여성들은 남성에 대해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고 와인보다 막걸리를 즐겨 먹고 숲 속 작은 개울에 발을 담그던 이리스 역시 어느 순간 그들을 닮아간다. 동거인인 인국에게 교습으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주려고 하고, 그가 연주를 할 때 유일하게 프레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들어주며 훌륭한 시인이 될 거라 격려한다. 그러다 그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방문을 하자, 거짓을 말하고 외출을 하는 방식을 통해 남성을 보호하려 한다. 낯선 언어를 전달하며 탈관습적인 모습은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 했지만 이리스 역시 조금씩 마신 막걸리에 취하듯 자신이 서있는 터전과 비슷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리스를 사랑하는 인국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의 관습적인 다그침에 반박을 하면서도 이리스와 함께 지내며 변했던 서양식 식습관 역시 엄마의 찌개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이리스를 찾아 나선 인국은 그녀를 만났던 장소를 찾고 카메라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누워있는 이리스를 담아낸다. 인국은 잠든 이리스를 깨우고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녀는 그곳이 내 집이냐는 질문과 우리는 여전히 친구냐 묻는다. 그렇다는 인국의 대답은 시원찮게 받아들이는 이리스, 그들은 하산을 하며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그들은 프레임 밖에서 어떤 관계로 남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관계라는 손은 이리스라는 전령의 발목을 잡았고 무지갯빛 감정은 잿빛이 되어 갈지도 모른다. 여행자의 특권은 그곳의 기존 질서를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존재했던 모든 것은 잊힐 뿐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탈관습적인 사고와 행동이다. 진실은 거기에 있다. 가서 바라보고 만지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형식적인 오브제에서 자유분방하고 나를 이해하듯 타인을 이해할 준비가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여행자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여행자는 있어야 하고 그들을 통해 진실을 발견할 것이다. 홍상수는 이자벨 위페르를 이리스라는 이름의 여행자로 불러들였다. 그가 찾는 또 다른 이상은 무엇일지 기대해 본다.
첫댓글 홍상수 감독 신작이군요~~
새벽 감성 담긴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 속 생각 다발에 빗질을 해주시네요 👍 영화적 실험이라는 말 공감합니다. 상업영화라면 이런 반복 못하겠죠. 반복해서 봤을 때 비로소 조금 느껴지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었습니다. 짧은 영화인데 꽉찬 느낌이었습니다. 이해영 배우가 이리스를 처음 대면할 때 보이는 속물 근성과 우습고도 낯뜨겁게 하는 장면도 반가웠고요.
홍상수 영화는 다 찌질한 남자들의 여자 꼬시는 이야기 일거라는 저의 편견을 깨는 영화 같군요. 리뷰 잘 봤습니다. 언제나 삶을 여행하듯이 살고 싶은데 말이죠.
위의 소울님 말씀처럼 홍상수 영화를 그렇게 생각하고 안본지 꽤됐는데 이번영화는 다르네요.소대가리님이 풀어주셔서 그런가..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포스터 보고 불란서 영화인가 했는데 홍상수였군요
홍상수감독 영화 한편도 안봤는데 이번주말에 찾아봐야겠어요.
리뷰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