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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일 토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진통제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벌써 13년 전, 봄부터 어머니는 자주 병원을 들락거리셨습니다. 어떤 때는 며칠 입원도 하시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드실 수 없는 복통에 시달리셨습니다. 칼로 생살을 도려내는 통증으로 며칠씩 고생도 하시고, 갑자기 심박 수가 빨라지고 호흡을 못하셔서 입원도 하셨습니다. 14년 전에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으셔서 아주 고생을 심하게 하셨는데 그 봄에 다시 목에 대상포진에 걸린 것 같다고 심하게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피부과와 정형외과 등에도 가 봤지만 대상포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 디스크에 걸리신 것도 아니고 인대가 늘어난 것도 아니라면서 의사 선생님은 약간의 염증에 ‘환상통증’으로 심한 통증을 느끼고 계시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작년에 SBS에서 드라마로 다룬 적이 있는 환상통증(Phantom Pain)이란, 어떤 특정한 사고 후 그 부위가 완치되거나 절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계속되는 것처럼 아픔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환상통증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합니다. 암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들도 환상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나도 12년 전에 설인두암을 수술한 이후에 수술한 부위에 느끼는 통증으로 자주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진통제를 먹어도 잠시뿐 다시 통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강력한 진통제를 먹고 통증을 견디려고 하다가도 습관이 될까봐서 통증을 그냥 견뎌보려고 버티기도 합니다. 수술한지 벌써 12년이 넘었는데도 통증에 시달린다면 대부분 날보고 꾀병을 앓는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진통제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환상통증 환자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복용 중인 진통제로 견딜 만해요. 하지만 퇴근해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려고 하면 칼로 찌르는 듯한 ‘환상통’이 갑자기 생겨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곤 해요. 궂은날이나 장마철에는 더욱 심해지죠.” 뼈에 생기는 암인 골육종 으로 10년 전에 오른쪽 허벅지 아래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분은 의족을 착용하고 있지만 그 없는 부위에서 희귀한 통증의 하나인 ‘환상통’이 발생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호소를 하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도 그 통증을 이해해 주지 않고, 심지어는 병원에서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베트남 전쟁 중에 수족을 잃은 분들이 의수족을 하고 있어도 환상통증에 시달리고 있고,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셨던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시 대상포진과 같은 통증으로 시달리고 계셨고, 신경성 대장염을 다시 앓고 계셨습니다. 나도 암 수술 후 그 통증에 자주 시달리고 있습니다. 잘려져 나간 육신도 그 아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처 입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런 저런 상처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을 ‘잃어버린 양’ 또는 '쉬는 교우'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의 습관대로 ‘냉담자’(冷淡者)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신앙에서 열정이 없어지고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그들이 교회 안에서 받은 상처가 아픔이 되어 지금 환상통증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을 아프게 한 비수와 화살과 몽둥이와 총알이 바로 우리에게서 날아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로써, 행동으로써 눈길로써 집단 따돌림으로써 그들을 내 몰았고, 그들의 수족을 자르고, 의수족을 달게 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고통으로 앓고 있겠습니까? 그리고 영혼의 진통제를 찾아서 매일을 방황하겠습니까?
한국전쟁의 비극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매년 그 몸살을 앓고 계시며, ‘잃어버린 양’들도 매일 그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이렇게 선포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오 10, 6-8)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고쳐 주고 죽음에서 살려 주어야 하고, 찰거머리처럼 붙잡고 늘어지는 마귀를 떼어내야 하고, 상처로 얼룩진 나병 환자와 같은 아픔을 고쳐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을 예수님은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모든 것을 거저 주어야 한답니다. 그리고 절대로 과거를 묻지 말아야 한답니다. 평화를 나누어 주어도 절대로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오 10, 14)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을 만날 때 아무리 섭섭하게 하고 문전 박대를 당했다고 하여도 먼지만큼이라도 담아 두지 말고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이제는 진통제 없이도 살 수 있는 날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렇게 길 잃은 사람들을 어루만져야 합니다.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축일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 Xavier)
신분 : 신부, 선교사
활동 연도 : 1506-1552년
같은 이름 : 방지거, 사베리오, 사베리우스, 사비에르,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Javier, 또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하비에르)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 성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파리(Paris)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에 있는 생 드니(Saint Denis, 오늘날의 Saint Pierre de Montmartre) 성당의 지하 묘소에서 서원을 했다. 그들은 정결과 청빈 서원을 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선교 활동에 헌신하기로 서원했다.
그는 성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다음 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다. 당장 예루살렘 성지 순례가 불가능해지자 그와 동료들은 선교에 대해 교황에게 순명하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해 교황의 승인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1540년 9월 27일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에 의해 예수회의 탄생이 승인되었다.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해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포르투갈의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했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에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했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며 왕성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1551년 12월 일본에서 몰루카로 돌아온 그는 2년 전에 도착한 편지 두 통을 받았는데, 그 한 통에는 그가 ‘인도와 그 너머의 나라들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는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들어가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고, 산타 크루즈호를 타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함께 출발해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산첸(上川, 샹추안) 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광둥항으로 들어가는 배를 수소문하던 중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2년 12월 3일, 중국 본토까지 불과 14km의 뱃길을 남겨두고 산첸 섬에서 선종했다.
흔히 그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했고, 그가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해도 1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또는 ‘일본의 사도’로 불린다. 그는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바로 이어서 1622년 3월 12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 Xavier)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