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리드가 부르는 ’ 퍼펙트 데이‘에 가사는 공원에서 샹그리아를 마시고 동물원에서 먹이를 준 뒤 영화 한 편을 보고 어두워질 때 집으로 간다. 거기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한다면 완벽한 하루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나직하게 마치, 일기를 읊조리듯 부르는 이 노래는 그 소박한 일상에 자신의 욕망이 모두 녹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연인이 있기에 나 자신을 잊게 된다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가사는 그러므로 완벽한 날이란 결국 비슷해 보이나 어제와는 다른 반복된 일상처럼 보이나 차이가 있는 오늘이야 말로 완벽한 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빔 벤더스는 거기에 복수를 붙여 ‘퍼펙트 데이즈’라는 제목의 영화로 완벽한 날들에 대해 고민하고 화답한다. 부동의 공간이라 인식하던 곳에서 의외의 사건들을 만나고 과거란 지나간 것이 아닌 현재의 연속 속에 있음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동이 트기 전 골목을 청소하는 이웃의 비질 소리에 히라야마는 잠에서 깨어난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양치와 세수를 하며 수염도 다듬는다. 출근하기 전 루틴인 반려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일과 작업복과 차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실 동전을 챙기는 일 역시 잊지 않는다. 차에 오른 그는 카세트로 재생되는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향한다. 이때 카메라는 그의 시야에 비치는 사소한 풍경들을 담아낸다. 도시의 랜드 마크로 보이는 스카이 트리, 인력거에 오르는 관광객과 등교하는 학생들을 지그시 눌러 포착하듯 시점 숏으로 포착한다. 이 이미지들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노라마처럼 어떤 사유도 없이 그저 명멸할 뿐이다. 다만,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영원성을 확보한다. 같은 일터와 언제나 공원 벤치에서 해결하는 점심이, 퇴근 후 가는 목욕탕과 식당이 그렇다. 지나간 것들은 새벽을 여는 골목 청소와 정리되는 이부자리처럼 늘 소멸하고 어제처럼 다시 생성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영화는 전지적 시점과 인물이 직접 보는 시점을 교차로 보여주며 장면들을 각인시킨다. 일상에 늘 있었으나 포착하지 못했던 것들에 시선을 주고 부피와 질감을 만들어 현실은 내가 인지하는 것들과 하지 못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시킨다.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그는 군소리없이 자리를 내준다. 그 사이에 잠깐 하늘을 올려다 본다. 청명한 하늘이 있고 그 아래 시선을 마주하는 나무가 있다. 잎이 흔들리고 그 틈새로 볕이 드는 모습을 세상이라도 다 얻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 코모레비’라고 하는 그 찰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히라야마가 시선에 담던 모든 순간들은 그가 포획한 시간의 이미지들인 것이다.
히라야마는 점심 시간이면 늘 공원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울창한 나무들의 틈에서 새어나오는 빛, 코모레비를 포착하려 한다. 이때 시점은 영화 카메라의 시점과 히라야마가 꺼낸 필름 카메라의 시점을 교차로 보여준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영화의 화면은 일시 정지하며 흑백으로 변한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감각과 그 순간의 단면을 포착하는 사진을 대비 시켜 기억이라는 관념속에 서있는 히라야마를 발견한다.
기억은 시간으로 이루어져있다. ‘ 퍼펙트 데이즈‘의 이미지들은 그래서 공간이 아닌 시간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히라야마가 바라보는 풍경과 물건들은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 모습이 아닌 어제와 달라진 그의 마음처럼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가시화 되는 것들을 통해 가시화 되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려 한다. 필름 카메라와 카세트 테이프는 그가 머무르고 있는 지나간 현재를 말한다. 영화속에서 그가 즐겨듣는 올드팝 역시 마찬가지다. 더 애니멀스로 시작해 벤 모리슨과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거쳐 킨크스와 니나 시몬스에 이르기 까지 그는 ‘여기’에 있되 ‘거기’를 살고 있는 인물임을 각인 시킨다.
히라야마는 자신이 하는 일인 공공 화장실 청소에 지나칠 만큼 장성을 다한다. 동료는 그에게 어차피 더러워질텐데 뭐 그리 열심히냐는 핀잔도 듣는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무언가를 가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장실을 가꾸듯 일상 역시 충만하게 돌본다. 화분에 식물을 보살피고 독서를 즐기며 팝 음악을 즐겨듣고 카메라로 하늘과 나무를 열심히 찍는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개인사에 관심이 없다. 왜, 어떻게 도쿄에서 화장실 청소 일을 하며 낡은 집에 사는 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소박한 일상에 집중할 뿐이다. 영화는 보이는 것 이면에 무엇을 보았느냐고 관객에게 묻는다. 가출을 해 자신에게 의탁한 조카와 아이를 찾으러 온 누나와의 상황을 통해 어렴풋이 그의 과거를 짐작할 뿐이다. 그 순간 관객들은 영화가 깔아둔 반복되는 필로우 숏과 꿈 장면을 연결하게 된다.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기 위해 넣는 인서트가 필로우 숏이지만 반복되는 과정에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의미를 획득한다. “ 엄마가 그러는데, 삼촌은 우리랑 다른 세계에 산대.” 히라야마는 조카의 말에 알고 보면 세상은 수많은 다른 세상으로 이뤄 진걸지도 모른다고 한다. 반복 되고 의미 없이 나열되던 필로우 숏은 히라야마와 조카, 그들과 관객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의 연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텅 빈 그 인서트들에 서있던 것은 관객이고 영화속 인물들과 그렇게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 할 때 히라야마는 항상 책을 읽다 잠에 든다. 이때 영화는 그가 꾸는 꿈을 알 수 없는 이미지와 흑백의 화면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영화가 봉인하고 있는 그의 과거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지 짐작하게 된다. 누나는 딸을 데리러 히라야마의 집을 찾아오게 되고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요양원에 계시니 한번 찾아 뵙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고는 예전처럼 그러진 않으실거란 말을 덧붙인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제안을 거절한다. 그가 가족 누구와도 연락 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이유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기인한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짐작할 뿐이다.
필로우 숏과 꿈 장면들은 연결을 위한 브릿지나 소멸하고 새롭게 생성되는 어제와 비슷한 하루의 재연을 위한 것이 아닌 영화의 기능인 타인을 통해 자신을, 존재하기에 부재하는, 현실을 통해 비현실을 환기하게 하게 한다.
빔 벤더스는 완벽한 하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반복되는 듯 보이는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내가 아는 노래를 다른 방식으로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고 그림자가 포개지면 더 어두워지나? 같은 이상한 의문을 함께 고민해줄 누군가가 그 밤거리 어딘가에 있다. 현재에 충실 할 때 그 하루는 완벽에 가깝다고 영화는 히라야마를 통해 말 한다. 다만, 아쉬운 지점은 빔 벤더스 특유의 로드무비의 색채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루틴에 금을 내는 사건들이 더해지면 발생하는 일탈에 예상치 못한 즉흥성을 기대했던 건 과욕이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모레비라는 동적이면서 동시에 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오고, 그것을 인간의 삶을 다르게 보는 방법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감탄하게 된다.
첫댓글 오모나! 두번 정독했어요 ㅎㅎ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 제게는 코모레비입니다. 이 게시판에서, 일상을 통해 획득되는 영원성은 소대가리의 리뷰는 good이다 아닐까요?
드라마든 영화든 평범하고 빈궁하고 위엄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루틴에 금. 일탈. 즉흥성' 이 저는 뽀뽀, 조카, 그림자밟기 정도인 것도 좋았습니다. 근데 만일 일탈과 즉흥성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갑자기 아야랑 도시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것? ㅎㅎ
사회문제나 세대문제도 보입니다. 슬쩍 터치 하는 것이 좋았어요.
리뷰보고 나니 퍼펙트 데이즈 엄청 마렵네요. ㅜㅜ
지금의 나에게 딱 필요한 영화인듯 한데...
글 읽으며 잠시 영상을 그려보았습니다~
감사히 읽고 갑니데이~
어제 아침 조조로 봤어요.
끝나고 여운이 남아, 혼자 커피 한잔 먹으며 흐린 하늘과 멀리 관악산 을 감상했지요.
히라야마씨가 아침에 집을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 표정, 짧은 순간 스치는 미소가 이해되는 순간이랄까?
나 혼자의 perfect day 완성.
영화를 본지 몇달이 되어서 얼마간 희석된 감상을
글을 읽으며 되살려봅니다
말씀하신점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빔 밴더스감독작을 많이 본 사람으로..
지금은 조금쯤 한발 물러난 느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비단 이 작품에 대한것은 아니고
언제부턴가 개인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 ~소확행이나 욜로같은 유행 (이 단어가 왠지 거북하다면 현상)
이 가져오는 안착된 삶의 방향성이 가져올 집단적
벽에 대해 근심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이방인이 가지는 타국에 대한 판타지성이
영화에 디폴트로 깔려있는듯 해서 다소간 불편했고요
세번째는 아날로그감성을 가진 기성세대의
문화우월성도 좀 부대꼈어요
주인공이 두고온 자신의 캐슬에 대한 트라우마같은것을 굳이 슬쩍 집어넣은 저의 같은것도 곱게만 보이지않았습니다
왕자 저하의 감상평에 감탄합니다. 지성 충만한 평론가 님으로 모십니다.
기회가 되면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__)
리뷰를 읽고 나니 영화가 참 궁금해졌습니다. 완벽한 날들에 대해 고민하고 화답한다..그 답을 느끼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와 ~ 멋진 리뷰 감사힙니다!
영화 보고 나오면서 한 번 더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소대가리님 글 읽으니 정리가 되네요 ~^^
ost도 너무 좋았고, 연기 너무 좋았어요.
좋은 영화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욱 좋네요.
감사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깊이있고 좋은 리뷰를 읽을 수 있는건 행운인거 같아요 ^^
이 좋은 영화를 놓쳤네요^^ 평이 좋아서 꼭 보고 싶었는데 리뷰글 보니 더 보고 싶은영화^^
와 저도 어제 보고왔는데 소대님 리뷰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