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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설헌 유고시
서 시 序詩 외
새벽 꽃가지를 기어 오르는 안개를 헤치고, 해가 뜨면 눈을
뜨는 나의 기다림은, 노을이 비껴 타는 바람의 층계에
꽃잎파리가 쌓아가는 머언 자주빛 연륜입니다.
1966
정설헌 시인 본명 정장선鄭庄善 1944 - 2005 전남 신안군 하의면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 서정주 신석정 선생의 애제자, 1966년 흑조시인회를
창립하였고 사설학원 국어강사로 지내며 시와 한글서예에 정진하였다.
소 곡 小曲
1
분이가 손을 흔들다
돌아선 모랫길로
사각사각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해돋이를 굽어보는
내 조그만
환상의 바다 위에
푸른 기억의 그물을 던지다.
2
내 그림자와 마조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울고 싶어지기에
새벽안개속 어지럽게 흩어진
꿈 부스러길 애써 긁어 모으다.
당 신
물빛 화병에 갈꽃을 꽂아놓고 당신은 갑니다. 부산히 갈꽃에
비린내가 묻어나는 새벽 안개 자욱한 기억의 그늘밑에서 오련히
돋아나는 내가 놓쳐버린 손의 이야기를 지레 당신이 하였습니다.
시작노트 - 그 어지러운 방황을 걷우고 흔들리며 타오르는 환상을 사리어 떨리는
가슴을 묻고 이 셀레이는 고독을 포개어 투명한 기다림의 둑을 쌓아야겠습니다.
정 오
1
흔들리는 선실의
싫증난 정사로
아직은
화장대 앞에 납시지 않는
마나님의
딸과
나란히 누워
그의 시체는
찬란한 햇살을 받고 있었다.
2
한사코 그녀의 태 안으로
벌거벗고
정오는 흘러들어
자즈러지며
연신 정액을 빨아들였다.
달 밤
달밤이
기진하여
꽃잎에 눕는다
벌거숭이 꿈 속의
몸살나는
입맞춤
푸른
꽃잎에
눈물이 진다
설레는
달밤이
눈물에 탄다
기진하여
달밤이
꽃잎에 눕는다.
뽀에지
나는
찻집 히아신스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모나리자의
초상 밑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나는
밤마다
울고 있는
소녀와
만났다
밤마다
울고 있는
소녀와
잤다
나는
밤마다
꿈 속에서
헤어졌다
울고 있는
소녀와
꿈 속에서
헤어졌다.
해와 달의 사이에서
당신은
언제나
바다 밑에
살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우리의 정원을
덮는
음악의 하늘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모래에 덮인
언덕에
살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우리의 아침을
건너가는
푸른 하늘입니다.
생 활
이 맑은 대낮에 후줄근히 가랑비를 맞으며 구만리 장천에
띄워 보낸 고독의 풍선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 번 꼭,
한 번 허허 웃어보며 허기진 가슴을 쥐어 뜯으며, 어처구니
없게스리 담배에 불을 붙이는, 아까운 것도, 정말 아까운
것도 하나 없는 이 모진 세상에 산기産氣가 도는 아랫배를
슬슬 어루만지며 눈물 한 번 찔끔 짜 보이며 웃어 보이던
<분이>야.
1982년 6월
아직도 해는 중천에 걸렸는데, 삼팔따라지같은 목숨 질질
끌며 수챗구멍이거나 공중변소같은 데를 기웃거리며 헛구
역질을 하며, 하루에도 수천번씩 되먹지 못한 생각에 하루
에도 수천번씩 죽어도 보는, 바람 센 들녘에 버려진 염소처
럼 절룩거리며 가다가 오직 한 번만이라도 꼬옥 잡아보고
싶은 손이 있어, 섣달 그믐날 고추밭 모퉁이에서 연 날리던
추억을 보듬고 몸살을 한다.
사 설 辭設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 기진하면 낯선 동네 어귀에 앉아 하늘도
쳐다보았다.
조금만 더 가면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와 천둥도
만났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가다가는 노루도
늑대도 만나고 휘파람 부는 곰에게 내 사정얘기도 했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떡갈나무 숲에 앉아
쉬어도보고, 초저녁 별을 세는 고슴도치도 만났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바위틈을 지나다가 두더지도 만나고 한밤중엔 꼬리를
흔드는 도마뱀도 만났다.
조금만 더 가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도 맞췄다.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는 보인다는데
정설헌 시인의 작품세계를 말한다 / 고중영 시인
문우 정설헌은 공존성 동시성 동일성에 대하여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찌보면 존재와 존재에 방불하는 사유의 간격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시인이다. 절대미학의 진수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화두를 붙들고 평생을 낭인처럼 떠돌던 그의 시혼詩魂이 이제는 어느 피안彼岸에 앉아 바지를 장딴지까지 걷어 부치고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잠시 괴롭혀보기로 한다.
시 (사설)은 상징적 표현수법이다 은유를 환유로 끌어가자는 화자의 의도가 어느 고비길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그가 시詩를 너무 아끼는 탓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너무나 맛이 있어 아끼는 것은 쉽게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듯 그는 '조금만 더 오르기' 에서 '정상에 서기' 를 단념하고 있다. 정상에 서면 시의 황홀함이 반감될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우 정설헌이 너무 아까워 쉽게 입에 넣지 못한 시의 미향을 자못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에는 '무법칙의 합법성' 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우연성인' 이라는 말로 설명되는데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유의 공감을 말한다. 시는 이 공존성에서 출발해야한다. 그래야만 나와 너의 관계가 성립되고 그 성립이라는 조건 속에 시정신의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차단된 의식의 적절한 방출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함축'이라는 훈련된 시어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무작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뚜렷한 공존성 위에 동시성同視性이라는 설계로 극명한 동일성同一性을 그려내는 언어 테크닉이라야 하는 것이고 그 테크닉은 무의식에서 출발하여 의식의 단계에 이르러 형태를 이루고 시의 카테고리 안에 숙성시킨 자기승리의 전리품이라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나는 문우 정설헌과 처음 만났던 날을 역력히 기억한다. 아마 아현동 어느 생맥주 집이었는데 만나기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교감하고 있어서인지 만나는 순간 이미 서로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 성님, 우리나라 시를 망쳐먹은 놈은 바람보다 풀잎이 먼저 누었다는 아무개 놈인디. 워떡허지요.
이것이 문우 정설헌의 순수순간이다. 정설헌은 '내 애인을 춘향에게 비교하지 말아야한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을 가졌다. 그의 그런 잠재의도가 침해당했을 때의 분노가 늘 내면에서 화산처럼 부글거리는 어리석도록 담백한 천재인데 그의 시 <사설>에도 그런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첫 행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는 세상을 긍정하고 싶은 그의 심간에 짙게 깔려있는 부정의 냄새다. 또 자기 부정을 통해 긍정하고 싶은, 그런 속내를 누군가에게라도 간파당하고 싶은 표방인 것이고 그래서 고개도 넘고 산도 넘은/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반사적 자의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인식의 공존성을 통한 탐핵探核의 과정인데 과연 내 생각이 올바르냐? 하는 자기성찰을 통해 의식의 궁극을 찾는 작업이라는 말이 된다. 그는 그렇게 자기사유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서야 시의 행보를 옮긴다. 그의 그러한 시도는 또 다른 각도에서 독자들의 동시성同視性을 요구한다.
'가다가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 천둥도 만나고/ 노루도 보고 늑대도 보고/ 쉬어도 보고 별을 헤는 고슴도치도 만나고/ 두더지도 만나고 꼬리를 흔드는 도마뱀도 만나고/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 맞춤도' 했는데 너희들도 그런 나를 본적이 있느냐는 거다. 그런 나를 보았지? 암 보았어야해 라는 동시;성을 고집스럽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갈구에 목말라 하던 그는 마지막에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는데' 라는 미확인을 우수로 던져두고 사라지며 형체가 분명치 못한 사유분포를 이유 있는 언어배열로, 라는 과제를 여운처럼 남겼다. 그가 던져놓고 간 여운을 수용하고 안하고는 각자의 의사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어느 누가 그것을 취하든 취하지 않던 간에 시의 동일성에 견주어 이해되어야 한다' 는 주장인 것이다.
문우 정설헌의 시세계를 이런 단문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시학이라는 오묘한 감정 갈래와 교차를 모두 설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 한편을 책 한 권 분량으로 설명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글을 읽은 정설헌은 관 뚜껑을 박차고 나와 성, 그게 아니란 말이여. 염병을 앓고 있네. 니미럴'하고 관 속으로 다시 들어가 누울지라도 그 문우가 그러면 나는 그걸로 좋은 것이다.
새벽 꽃가지를 기어오르는 안개를 헤치고, 해가 뜨면 눈을 뜨는
나의 기다림은, 노을이 비껴 타는 바람의 층계에 꽃잎파리가 쌓
아가는 머언 자주 빛 연륜입니다. ( 서시序詩 전문 )
가파르기만 했을 한 시대의 생生이라는 면적에 세상에서는 다 이룰 수 없는 자주빛 꿈을 손 시리게 심고있다. 눈물겹다.
실락원失樂園
1
나의 자서전에는 아직도 쉼표 하나 없이 텅비어 있다.
어디에 마침표를 찍든 그것도 몹시 황송한 일이다.
2
막이 내리고 불이 꺼진 객석에
나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3
자정이 지나 강의가 끝난 뒤 나보다 행복한 친구를 만나
소주 두 서너 잔 기울이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고 위로하며
악수를 하고 헤어진 뒤 육차선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질주하는 휘황한 불빛 속으로 눈 꼬옥 감고 뛰어들어 이대로
가면 나도 조금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해 본다.
4
성이 난 한생원1)이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초봉이2)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초봉이 애비 정주사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미럭쇠3)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칠복이4)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칠복이 애미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태석이5)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태석이 애비 문영환씨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봉필이6)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덕만이7)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뭉태8) 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덕순이9)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응칠이10)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응칠이 아우 응오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춘호11)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춘호 여편네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이주사12)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영식이13)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수재14)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5
기가 막혀 한생원이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초봉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초봉이 애비 정주사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미럭쇠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칠복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칠복이 애미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태석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태석이 애비 문영환씨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봉칠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덕만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뭉태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덕순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응칠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응칠이 아우 응오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춘호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춘호 여편네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이주사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영식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수재도 히히 웃는다.
(주) 1) 채만식의 '논 이야기'의 작중 인물
2) 채만식의 '탁류'의 작중 인물
3) 채만식의 '쑥국새'의 작중 인물
4) 채만식의 '불효 자식'의 작중 인물
5) 채만식의 '도야지'의 작중 인물
6) 김유정의 '봄 봄'의 작중 인물
7) 김유정의 '총각과 맹꽁이'의 작중 인물
8) 김유정의 '총각과 맹꽁이'의 작중 인물
9) 김유정의 '땡볕'의 작중 인물
10) 김유정의 '만무방'의 작중 인물
11) 김유정의 '소나기'의 작중 인물
12) 김유정의 '소나기'의 작중 인물
13)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의 작중 인물
14)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의 작중 인물
6
보리菩提 라는 나무도 본디 없고 명경明鏡 이란 대도 본디 없다.
본래 무일물無一物 인데 어느 곳에 먼지가 쌓이겠는가. - 혜능
보신탕을 끓이자. 우리 모두 보신탕을 끓이자. 대 - 한민국
보다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지글지글 보신탕을 끓이자.
조회장네 스피츠를 끌고 오자.
지박사네 테리어도 끌고 오자.
로총장네 요크셔도 끌고 오자.
구의원네 말티즈도 끌고 오자.
나장관네 파니엘도 끌고 오자.
허군수네 치와와도 끌고 오자.
대-한민국보다 큰 가마솥의 개새끼들이 누깔이 튀어나오도록
셋바닥을 질게 뽑고 울대가 찢어져라 악을 씁니다. 헐떡 거리며
뻐드러집니다요.
조회장네 여편네가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지박사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로총장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구의원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나장관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허군수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조회장네 스피츠의 무덤 가에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지박사네 테리어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로총장네 요크셔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구의원네 말티즈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나장관네 파니엘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허군수네 치와와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2002
* 실락원은 새로운 시의 낙원을 바라며 시도하는 역설적 제목이라고 시인은
이야기 했고 모든 사람이 알고있는 정형과 내용의 편견에 대한 도전이요
논문 처럼 쓰여진 시, 산문처럼 또는 설명문 같은 시 등의 모든 시도가 가능한
시의 낙원을 바란다는 표현을 했다.
위의 시들은 그가 다시 광초에 손을 대면서 다시 시를 쓰려는 준비를 하던,
그리고 두줄시가 수면위에 떠오르면서 함께 문학을 했던 분들이 너무 두줄시로만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 하던 2002년 9월 경에 쓰여진 것이다 <맹기복>
정설헌 시인의 자취
본명 정장선鄭庄善 (1944 - 2005) 전남 신안군 하의면 웅곡리에서
출생하여 목포중, 고시절부터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여러 백일장에서
수상하는 등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으며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수학.
서정주, 신석정 선생의 애제자로 1966년 동향의 문우들과 흑조시인회를
창립하여 1967년 부터1980년 까지 주간으로 동인활동에 헌신하였다.
한때는 국전 서예 입선작가인 선친 초암 정유신 鄭裕新 선생과
서예학원을 경영하였으며 목포문인협회 회원 목포난석회 총무 등을 거쳐,
목포영흥중학교와 문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광주로 이주하여
사설학원 국어강사로 살면서도 서예에 정진하여 지필묵을 놓지 않았다.
조사弔詞
수인이의 편지
선생님, 수인이 왔다 갑니다.
날씨가 맵차요.
일주일 내내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비가, 비만 오다가
그래도 오늘은 선생님 한테 올 수 있어서 좋아요.
갑자기 흐려지고 눈발도 날려서 생각만큼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고작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 몇년은 지나간 것만 같아요.
살아 있는 사람은 그렇답니다.
아득하게 달아날 수도 있고
언 손 주머니에 넣어 녹일 줄도 안답니다.
저도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아 어찌할 줄도 모르고..... 그랬지만
벌써 꽤 씩씩해졌답니다.
잊혀져가는 게 가장 두렵다고, 아프기만 해도 좋으니 선생님만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사람이란 게 이렇게 간사한 것 같아요.
선생님 마지막 가시던 날, 마음에 가슴 속에 선생님 묻으면서
제가 부탁드린 거 있었죠.
'다음 번에 올 땐 꼭 대답해주셔야 해요' 했던 거
선생님께 오니까 역시 선생님이 오냐 - 답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쓸쓸해 보이시던 모습이,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그나 저나 큰 일이네요.
선생님께만 오면 선생님 앞에서만은 이렇게 편해져서.....
저는 선생님께 아무 것도 아니어서 맘껏 울지도 못해서.....
옆의 아이가'할아버지 저 왔어요' 하는데 목소리가 맑습니다.
다시 만나게요. 선생님 수인이 왔어요.
- 눈이 너무 예쁘게 와요.
2005년 2월 20일 일요일
선생님 태우시던 담배가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도 기억 못하는 수인 올림
* 정설헌의 무덤에 놓여있던 편지, 설헌의 부인이 태워줄까 한다길래 달라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수인이의 편지는 계속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시인 정설헌을 아시나요 / 김선기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이 타계하던 날 밤,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기억이 더 생생하다. 데드라인 무렵 낯익은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대뜸 ‘‘말땅’이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네, 별이….”기분도 그렇잖은데 술 한잔 하자는거였다.
과거의 행적이야 어떻든 현대시단에 한 획을 그었던 미당이 떠난 것은 문학의 끈을 놓지못하고 있는 나로선 충격이었다. 사실, 연합통신 리얼타임뉴스를 통해 미당의 죽음을 알고 있던 터라, 그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우리는 궁동 예술의 거리 선술집에서 만나 술병 깨나 쓰러뜨렸다. 그날 밤 내내 미당을 떠나보낸 슬픔에 못이겨 주먹울음을 펑펑 울어대던 이가 바로 시인 정설헌이다.
을유년 정월 초사흗날, 그의 죽마고우인 주정연 시인에게서 비보를 받았다. 정설헌 시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시인 정설헌(본명 정장선·1944~2005)은 예순 두 해를 외롭게 살다갔다. 아니, 지상에서의 마지막 남은 시간까지 그 외로움을 만끽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신안 하의도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목포중·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한 문재文才였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미당은 그를 애제자로 삼고 ‘청아淸雅'라는 호號를 내렸다. ‘속 되지 말고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시를 쓰며 살아라’란 스승의 깊은 맘이 담겼으리라.
정설헌은 스승인 ‘미당未堂’을 ‘말땅末堂’이라고 불렀다. 그의 ‘말땅론未堂論’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애증이 한껏 묻어나 사제지간의 애틋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정설헌은 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문단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단화 된 문단 풍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그는 간혹 문학행사에 나가 ‘패거리 문학’의 폐단에 목청을 높였다. 독설을 쏟아내는 그를 문단에서 좋아할리 없다. 그래서 정설헌은 늘 혼자였고, 그 고독감을 술로써 풀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맘이 맞는 문우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60~70년대 잘 나가던 주정연·박광호·정영일·김창완 시인이 그들이다. 정설헌은 그들과 1966년에 ‘흑조黑潮’동인회를 창립했다. 1920년대 시단을 이끌었던 이상화·박종화·홍사용 중심의‘백조白潮’시대는 가고, ‘흑조’가 이어받아 한국시단을 지고가야 한다는 게 정설헌의 욕심이었다. 흑조는 그해 12월 청마 유치환의 발문을 얹어 첫 동인지를 창간해 지난 2000년까지 34년간 28권의 동인집 발간, 한국 문학동인사文學同人史를 다시 쓰게 했다.
그후 정설헌은 ‘흑조’마저 환멸을 느끼고, 1982년 7월 목포에서 열린 ‘흑조의 밤’에서 ‘사설’ 발표를 끝으로 절필했다. 그러나 그는 붓은 놓았으되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4반세기를 온 몸이 붓이 되어 살았다. 이제, 유작이 되어버린 ‘사설’만이 ‘정설헌의 40년 시혼詩魂을 느낄 수 있어 애틋하다. 그의 절필시가 된 ‘사설’의 일부다.
‘…<중략> 조금만 더 가면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와 천둥도 만났다. … <중략> … 조금만 더 가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도 맞췄다.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는 보인다는데.’
문단의 병폐와 사이비 문인들을 향해 살기어린 독설을 뿜어댔던 시인 정설헌. 그가 그토록 보고싶어했던 자신의 바다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데도 못 가네 / 고중영
정월 초사흘 어느 때였을지.
나를 두고 가려는 문우 곁에서
하늘 기울어 쏟아진 시간을 다둑거리는데
취하면 날 끌어안고 볼을 부비던
정감 넘치든 그 문우
빙그레 웃으며 행장을 다 수습했다.
한국 시詩를 말아 먹은 놈은
바람보다 먼저 누워
헤헤헤
경박스레 웃은 그놈이라며
시사랑에 겨워 성내기 서슴찮으면서도
흉허물 다 끌어모아 속내 깊이 감추기,
그도 이제 지쳐 그만 가시려나?
여보시게.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풍진風塵도 뜻스럽다는 저승 가거든
눈, 마루 남쪽 끄트머리 딛고 서서
목 길게 빼고
바른 손 펴 눈썹 위에 얹은 채
이승 쪽 바랏다가 바랏다가
내 훌훌 털고 찾아갈 기미 보이거든
상제님 마시는 옥황주 한 동이
시 한 편과 바꿔 두시게나.
알태기 닳아빠진 국화문 청자 술잔
시울 닦는둥 마는둥 화급한 저 행주치마
가래바지 외로 짼 어을우동도 청하고
심야삼경 자규울음 허리 끊어
서리서리 간수했더라는 황진이도 청해다가
일배 일배 부일배에 곤죽 되어
쇠똥밭에 꼬구라지듯 꼬구라지듯
시 한 수 목터지게 읊음시러
까짓거,
저승 한 번 우렁차게 말아 먹어 보세나.
그 약조하기 전엔
자네 아무데도 못가네. 암.
정설헌 시인의 작품세계를 말한다 / 고중영
남도의 재사 정설헌이 고인이 된지 1년이 가까워지는 이무렵 그동안 (목포 나그네) 라는 이름으로 발행하던 출향시인 문집을 (나그네) 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됐다. 그 (나그네)를 끌고 갈 마부가 주정연 시인이다. 우리 회원들은 나그네라는 제호로 새로 단장한 마차를 끌고 가는 주시인의 손바닥에 혹 물집이 잡히면 재빨리 붕대를 감아 드려야한다. 이번 문우 정설헌을 회고하는 일도 역시 주정연 시인의 심간에 고인 애석함을 쓰다듬는 일이며 또한 모든 회원들이 함께 아쉬워해야할 일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유작을 게재하며 간단한 해解를 붙이면서 하루 속히 정설헌 유고시집이 출간되기를 고대한다.
사설辭說 / 문우 정설헌은 공존성 동시성 동일성에 대하여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찌보면 존재와 존재에 방불하는 사유의 간격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시인이다. 절대미학의 진수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화두를 붙들고 평생을 낭인처럼 떠돌던 그의 시혼詩魂이 이제는 어느 피안彼岸에 앉아 바지를 장딴지까지 걷어 부치고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잠시 괴롭혀보기로 한다.
위의 시 (사설)은 상징적 표현수법이다 은유를 환유로 끌어가자는 화자의 의도가 어느 고비길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그가 시詩를 너무 아끼는 탓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너무나 맛이 있어 아끼는 것은 쉽게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듯 그는 '조금만 더 오르기' 에서 '정상에 서기' 를 단념하고 있다. 정상에 서면 시의 황홀함이 반감될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우 정설헌이 너무 아까워 쉽게 입에 넣지 못한 시의 미향을 자못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에는 '무법칙의 합법성' 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우연성인' 이라는 말로 설명되는데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유의 공감을 말한다. 시는 이 공존성에서 출발해야한다. 그래야만 나와 너의 관계가 성립되고 그 성립이라는 조건 속에 시정신의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차단된 의식의 적절한 방출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함축'이라는 훈련된 시어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무작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뚜렷한 공존성 위에 동시성同視性이라는 설계로 극명한 동일성同一性을 그려내는 언어 테크닉이라야 하는 것이고 그 테크닉은 무의식에서 출발하여 의식의 단계에 이르러 형태를 이루고 시의 카테고리 안에 숙성시킨 자기승리의 전리품이라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나는 문우 정설헌과 처음 만났던 날을 역역이 기억한다. 아마 아현동 어느 생맥주 집이었는데 만나기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교감하고 있어서인지 만나는 순간 이미 서로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 성님, 우리나라 시를 망쳐먹은 놈은 바람보다 풀잎이 먼저 누었다는 아무개 놈인디. 워떡허지요.
이것이 문우 정설헌의 순수순간이다. 정설헌은 '내 애인을 춘향에게 비교하지 말아야한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을 가졌다. 그의 그런 잠재의도가 침해당했을 때의 분노가 늘 내면에서 화산처럼 부글거리는 어리석도록 담백한 천재인데 그의 시 <사설>에도 그런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첫 행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는 세상을 긍정하고 싶은 그의 심간에 짙게 깔려있는 부정의 냄새다. 또 자기 부정을 통해 긍정하고 싶은, 그런 속내를 누군가에게라도 간파당하고 싶은 표방인 것이고 그래서 고개도 넘고 산도 넘은/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반사적 자의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인식의 공존성을 통한 탐핵探核의 과정인데 과연 내 생각이 올바르냐? 하는 자기성찰을 통해 의식의 궁극을 찾는 작업이라는 말이 된다. 그는 그렇게 자기사유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서야 시의 행보를 옮긴다. 그의 그러한 시도는 또 다른 각도에서 독자들의 동시성同視性을 요구한다.
'가다가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 천둥도 만나고/ 노루도 보고 늑대도 보고/ 쉬어도 보고 별을 헤는 고슴도치도 만나고/ 두더지도 만나고 꼬리를 흔드는 도마뱀도 만나고/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 맞춤도' 했는데 너희들도 그런 나를 본적이 있느냐는 거다. 그런 나를 보았지? 암 보았어야해 라는 동시;성을 고집스럽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갈구에 목말라 하던 그는 마지막에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는데' 라는 미확인을 우수로 던져두고 사라지며 형체가 분명치 못한 사유분포를 이유 있는 언어배열로, 라는 과제를 여운처럼 남겼다. 그가 던져놓고 간 여운을 수용하고 안하고는 각자의 의사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어느 누가 그것을 취하든 취하지 않던 간에 시의 동일성에 견주어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문우 정설헌의 시세계를 이런 단문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시학이라는 오묘한 감정 갈래와 교차를 모두 설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 한편을 책 한권분량으로 설명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글을 읽은 정설헌은 관 뚜껑을 박차고 나와 성, 그게 아니란 말이여. 염병을 앓고 있네. 니미럴'하고 관 속으로 다시 들어가 누울지라도 그 문우가 그러면 나는 그걸로 좋은 것이다.
새벽 꽃가지를 기어오르는 안개를 헤치고, 해가 뜨면 눈을 뜨는
나의 기다림은, 노을이 비껴 타는 바람의 층계에 꽃잎파리가 쌓
아가는 머언 자주 빛 연륜입니다. 서시序詩 전문
해解: 가파르기만 했을 한 시대의 생生이라는 면적에 세상에서는 다 이룰 수 없는 자주빛 꿈을
손 시리게 심고 있다. 눈물겹다.
소곡小曲 / 사람의 순간적인 감성도 그 사람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면 잃어버릴까 아쉬워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도 그런 것들을 연민한다.
당 신 / 사유를 문자로 환치換置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식을 잃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천재라 말하기도 한다.
어떤 여자의 고백 / 변형구조의 과정을 보편적인 부피로 압축시켜 독자들에게 주고 싶어 한다.
구성이 느슨한 문학적 구성이 시의 매력임을 발견해야 한다.
위험한 거리 / 지대한 관심사를 시학적 부정으로 학대하여 독자의 연민을 이끌어내는 기법이다.
이 작품은 상당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으나 모든 내용을 사람의 애소哀訴감성으로 교묘히 포장하고 있다.
정 오 / 3인칭의 정오가 2인칭의 '네'가 되다가 결국은 1인칭의 '나'로 변신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의 권리이며 시인이 독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독재獨裁다.
달 밤 / 대상에 접근하는 시인의 시선이 특별한 언어로 발효하고 있다. 이런 기법을 환유歡游라고 한다. 국물이 고소한 설렁탕 한 그릇을 먹는 맛이다.
생 활 / 감정의 불연속선을 적당한 매듭으로 이어가는 상황시다. 부등식에서 등식을 추출하는 시인의 표현력이 황홀하다.
1982년 6월 / 불가시적 가시不可視的 加視. 무형인 의식을 핀세트로 집어서 실상의 사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그 작업에 주정적인 칼라 부여를 잊지 않고 있다.
실망 / 버나드쇼의 연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궁극적 자아를 대상에게 던져 사유를 파괴하는 동안 그 대상이 스스로를 수습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글을 반탄시라고 한다.
해와 달의 사이에서 / 의식 속의 모든 것들이 화자에게 오브제화할 때만 비로소 직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무한 자유주의다. 이렇게 되면 어떤 것도 어떤 짓도 가능해진다는 점을 표방하고 있다.
뽀에지 / 시의 합리주의가 어떤 경로를 거쳐야 다다이즘에 이르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시다.
언어의 전통성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언어를 반복 나열하여 詩 속에 굳게 장치하던 퇴화된 언어들을 부정함으로서 '무의식이야말로 인간의 심제心齊'라는 비합리적 영역을 구축한다.
주말 /'고산식물' 이라는 이미지가 신선한 수사修辭를 통해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감정의 갈래를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이는 시다. 또 '갈아 앉은 지난 여름' 이 다시 돌아와 '지난 여름이 잠시 머물고 갔다'로 이어지는 어법이 심상치 않음을 읽어야 겠다.
바다를 건너는 헨리 6세는 정설헌 시인의 시안으로 보면 실패한 자의 도피를 뜻한다. 문우 정설헌은 이와 같이 다가오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유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단생활보다는 실생활에 충실한 쪽으로 생의 가닥을 잡았으리라.
첫댓글 정설헌 시인의 유고시 10편
귀한 작품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