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2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권력에 대한 욕구
인간은 많은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욕구에 따라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천박하게 생각하던 옛날에도 재물에 대한 욕구를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물도 절대로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을 천박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권력을 가지려고 하고, 그 권력을 가진 다음에는 그 권력을 행사하여 더 많은 권력을 쥐거나 많은 재물을 가지려고 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힘을 기르려고 합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욕구를 성취하고자 노력하고 살아갑니다.
권력과 힘에 의존하는 욕구는 동물들에게도 있고, 공동체 생활을 도모하는 모든 동물에게는 가장 우선시되는 본능일 것입니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수사자는 제 새끼가 아니면 제 권한 안에 들어있는 모든 암놈들의 새끼를 물어 죽인다고 합니다. 산양들은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서 뿔을 곤두세우고 서로 힘껏 박치기를 한답니다. 그 때마다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이 날 정도로 싸움을 하고,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만신창이 되어도 조금도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권력과 탐욕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다고 합니다. 그 욕망과 욕구가 헛된 것인지 잘 알면서도 언제나 그 욕구와 욕망의 한계까지 인간은 몰고 갑니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유혹과 그 달콤한 성취는 마약처럼 사람을 완전히 취하게 만들어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사람들이나 동물들은 적절한 선에서 수용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지려면 능력도 또한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힘은 투표로 행사되고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 되는 것이 약간 모순도 있지만 권력은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민주 공화국이라고 합니다. 민주적 공화국은 권력의 기초로서 국민주권의 원리,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민주주의, 권력구조면에서 권력분립주의,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에 의한 정치과정의 통제, 세계관에서 상대주의, 사회와 국가의 이원주의(二元主義) 등을 바탕으로 합니다. 민주적 공화국은 그 권력구조의 집권(集權) ·분권(分權) 여하에 따라 단일공화국과 연방공화국으로 구별되며, 또한 권력분립의 형태에 따라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의회정부제 국가 등으로 구별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국민은 누구로부터 나왔나요? 세상사람 중에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권력과 권한도 모두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이고,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결국 모든 권한과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 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로 권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것이고, 부정과 불의로 권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지려면 먼저 하느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하느님께서 허용한 범위 내에서 아주 겸손하게 그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바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사제들과 백성들의 원로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십니다. 그들이 질문한 것은 시비를 걸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반박하고 싸움을 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답이 뻔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이 세례를 준 것도 하늘에서 온 것이고, 또한 사람들에게서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의 진리를 펴고, 하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펼치시는 것은 하늘에서 온 권능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간절한 희망에서 온 것입니다. 그 권한은 권능을 가진 분에게만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리를 알 수 없는 사제들과 백성들의 원로들은 자기들 꾀에 자기들이 말려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은 많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을 참지 못하고 반론할 말을 생각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그들과 같아서 하느님의 권능과 예수님의 권능을 의심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가르치심에 의혹을 품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지 못하고 자주 지식과 나만의 편견과 아집의 노예가 되고, 악마의 하수인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4,2-7.15-17
그 무렵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15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축일12월 12일 복자 토마스 홀랜드 (Thomas Holland)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 지역 : 영국(UK)
활동 연도 : 1600-1642년
같은 이름 : 도마, 토머스, 홀란드, 홀란트, 홀런드
토마스 홀랜드는 아마도 상류 계층에 속한 리차드 홀랜드(Richard Holland)와 앤(Anne)의 아들로 1600년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Lancashire)의 서튼(Sutton)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생토메르(Saint-Omer)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1621년 8월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영국 대학으로 옮겨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프랑스어, 플라망어(벨기에 북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어), 에스파냐어 그리고 라틴어에 유창하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도서관’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박식하였다. 1623년에 제임스 1세(James I) 왕의 아들인 찰스(Charles) 왕자가 결혼 문제로 에스파냐에 왔을 때 그가 대표로 뽑혀 마드리드(Madrid)에 가서 라틴어로 연설하기도 했다.
1624년 그는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돌아와 예수회에 입회하고 와텅(Watten)에서 예수회 수련기를 마쳤다. 이어서 리에주(Liege)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은 그는 오늘날 벨기에 북서부 헨트(Gent) 지역에서 잠시 활동하고, 생토메르에서는 신학생들의 영적 지도를 맡기도 했다. 1634년 헨트에서 종신서원을 한 토마스 홀랜드는 이듬해에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는 1635년 잉글랜드에 도착해 7년 동안 런던(London)과 고향 등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의 사목과 선교 활동이 금지된 상황이라 가명 등을 사용하며 비밀리에 움직였고,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기에 때로는 외국인으로 행세하기도 했다. 1642년 10월 4일 런던 거리에서 체포되어 클러컨웰(Clerkenwell)에 있는 뉴 프리즌(New Prison)에 갇혔다가 뉴게이트(Newgate)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12월 7일 재판에서 ‘가톨릭 신자이고, 사제이며, 더욱이 예수회원’이란 죄목으로 반역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12월 10일 토요일에 감옥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날인 주일과 월요일 미사를 감옥에서 봉헌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 12일 그의 마지막 미사는 처형장인 타이번(Tyburn)으로 이어졌다. 그는 처형장에 모인 많은 이들 앞에서 설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 후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토마스 홀랜드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12월 12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토마스 홀랜드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토마스 홀랜드 (Thomas Holland)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