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6개월 만에 선 교단
진주 시내 초·중·고등학교 중에서 외부 인사에 의뢰하여 학생들에게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학교가 교육청에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교육청에서는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단체나 인사에 의뢰한다. 금년에는 그 일을 진주교육 삼락회에서 맡게 된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인사는 대부분 나의 진주교육대학 동기들이다. 처음 나와 같이 인성교육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사양했다. 그것은 퇴직할 때 나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강연이나 강의는 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교사 시절이나 관리직 때 비교적 강의 경험이 많았다.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교사,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연수의 강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나면 정보를 얻기 어렵고, 또 시대의 조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남 앞에 선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강의 요청을 받아도 사양하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잘 견지해 왔던 것이다.
며칠 전에 삼락회 사무국장인 黙溪 김진호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사진을 편성했는데 불가피하게 결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보충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알려왔다. 그것까지 거절하는 것은 동기의 도리가 아닐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다.
3월 30일이 그 첫 시간이다. 학교는 봉원중학교였다.
나는 무엇을 주제로 삼아야 할지 생각한 후 이렇게 교안을 구성했다.
학교 이름 봉원 중학교에 내포된 의미와 진주의 전설과 관련지어 보고, 교훈, 교육목표, 교화, 교목, 특색교육, 학교의 자랑거리가 사람의 인성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규명해 보도록 구안을 했다.
鳳原中學校
‘鳳’자의 의미. 鳳凰이란 뜻으로 ‘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서 德이 높은 天子(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皇帝)가 나오면 나타난다는 신비로운 새.
‘原’근본의 자리라는 의미. 中’적합하면서도 조화롭다는 의미.
원래 여러분의 학교가 있던 이 자리는 연못이었다.
연못 이름은‘가마못’(釜池: 물이 끓어 봉이 살지 못하는 못)이었다. 그곳을 매립하고 그 위에 학교를 세운 것이다. 연못과 鳳자도 관련이 있다.
봉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마.
대봉산(大鳳山) 은 진주(晋州)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지금은 그 산을 비봉산(飛鳳山)으로 부른다. 여러분의 학교와 맞닿아 있는 산이다. 봉곡촌(鳳谷村) 은 지금의 진주시 상봉동동(上鳳東洞)과 상봉서동(上鳳西洞)의 두 동을 합친 마을 이름이다. 옛날 이 봉곡촌에는 우리들의 조상님들께서 스스로 마을을 이루고(自作一村 : 자작일촌) 집단으로 사셨다고 한다. 이 봉곡촌(鳳谷村) 택지(宅誌)를 이야기하면 우리 진주시민의 흥망성쇠와 파란곡절을 알 수 있다.
대봉산(大鳳山) 봉지(鳳池 : 봉의 연못, 즉 봉서지), 봉암(鳳岩 : 봉바위), 봉란대(鳳卵臺 : 봉알자리), 봉강재(鳳降齋)의 얽힌 이야기가 진주강씨대종회 홈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진주 姜氏들이 정부 요직 높은 벼슬자리에 많이 계셨기 때문에 세도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영상서(領尙書) 정절공(正節公), 구만(九萬 : 서기 931∼975)할아버지의 집(봉곡촌) 뒤에 큰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이 큰 바위 위에 또 하나의 작은 바위가 얹혀 있어 보기에 크고 작은 바위가 조화를 이루어 흡사 봉(鳳 : 봉황)의 형상과 같으므로 부르기를 봉바위(鳳岩)라 하였다.
어느 날 강남도사(江南道士)라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이 바위를 보고 하는 말이 "강씨지대성(姜氏之大盛)이 유차암고야(有此岩故也)라" 즉 姜氏들의 대성함이 이 바위로 인하여 그렇다고 하였다. 그후 상서좌복야 문하시중 평장사(尙書左僕射 門下侍中 平章事) 홍(洪 : 서기 1010∼1122)할아버지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형제 열 한사람이 경상(卿相 : 정승판서)으로써 한나라의 정권(政權)을 한 문중에서 장악하다시피 하였으니 그 부귀(富貴)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호사다마(好事多摩)격으로 남이 잘되는 일에 시기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지원(李之元)이라는 자가 그 세력을 시기하여 임금에게 姜氏를 모함하여 사람을 시켜몰래 봉바위를 부수니 그 바위 속에서 함박같이 생긴 흰돌 네개가 들어 있어 이를 철추(鐵椎)로 부수니 새빨간 피가 흘렀었다고 한다.
그후 고려 인종(서기 : 1123∼)때에 척준경(拓俊京)이 임금에게 참소하기를 "상서 강홍(尙書 姜洪)의 형제들 일당이 불의의 앙심을 품고 있으니 속히 조처하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이라." 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인종(仁宗) 임금은 깜짝 놀라면서. " 어떻게 하면 강홍(姜洪) 일가의 세력을 꺽을 수 있겠는가." 하고 물으니 척준경은 말하기를 " 강홍(姜洪)과 그의 도당(徒堂)을 내치시고 그들의 향토(鄕土) 晋州의 명소(名所) 지명을 고치소서." 하니 인종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상서공(尙書公) 강홍(姜洪)의 형제와 일족을 죽이고 대봉산(大鳳山)의 이름을 「봉을 날려 보낸다는 뜻」으로 비봉산(飛鳳山)으로 고치고, 봉지(鳳池 : 봉 연못)의 명칭을 「봉을 가마솥에 삶는다는 뜻」으로 부지(釜池 : 가마 못) 이라 고쳤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姜氏들은 한순간에 망하고 말았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한 자는 그 댓가를 받는 법이라, 척준경도 그후 서기 1126년에 반역(返逆)을 도모하다가 실패하고 그도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많은 후손들이 번성하고 권력도 회복되어 전날의 선조들의 세도를 꿈꾸게 되었다
[출처] 진주 강씨대종회 홈페이지
옛날부터 鳳凰은 오동나무위에 둥지를 틀고, 竹實(대나무 열매)먹고, 靈泉의 물을 마신다고 했는데 그 영천은 이슬방울이다.
진주시는 날아간 봉황이 되돌아와서 진주의 기백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오죽광장(梧竹廣場)도 그러한 뜻에서 만들어졌다. 오죽광장에는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두었다. 봉황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대나무 열매를 먹도록 하기 위해서다. 옛날에는 오죽광장을 국제 로타리로 불렀었다.
그 외에 봉란지(봉알자리) 만들고, 봉황교(鳳凰橋)도 설치했다. 봉황교는 비봉산과 선학산을 있는 다리인데 부러진 봉황의 날개를 잇는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날아간 그 봉황이 돌아온다면 어느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에게 영향을 제일 먼저 주겠는가? 나는 鳳原中學校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학교는 정말 훌륭한 사람을 기를 수 있도록 애쓰고 있더라. 한 가지씩 학교 이름에 포함된 내용과 결부시키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개교 : 1984. 3. 7(34년전)
2. 교목 : 반송(盤松)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반송처럼 진취적 기상과 꿋꿋한 의지 따뜻한 심성을 지
닌 조화로운 봉원인을 기원함.
3. 교목 : 장미(薔薇) 열정, 기쁨, 아름 다움의 화신인 장미처럼 진정한 아름다움과 자신의 꿈을 이루
는 열정 지혜를 갖춘 봉원인을 육성.
4. 교훈(校訓) : 학교 교육이념을 간편하게 표현함.
정직(正直) : 사람의 성품과 마음이 바르고 곧음.
근면(勤勉) : 부지런히 일하며 힘씀
봉사(봉사) : 국가나, 사회,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힘씀
5. 교육목표 : 바른 품성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창의적인 민주 시민 육성(德, 智)
6. 특색교육활동 : 아침 독서활동
7. 학교자랑
가.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환경(비봉산과 관련)
나. 남녀 공학(이해의 폭 넓힘, 長短點 보완)
다. 양궁
라. 한마음 축제(배운 기량 발표)
마. 아침 독서 시간
이처럼 큰 뜻을 내포한 아름다운 학교에서 좋은 뜻을 지닌 교육 내용으로 훌륭하신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여러분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에 좋은 교육목표아래 좋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제자를 지도했고, 또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체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러하더라. 경험담의 내용은 인성과 공부가 조화로운 사람이 성공됨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로 구성 했다.
이 학교는 남녀 공학이다. 수업시간 내내 느낀 점은 남학생들의 눈빛이 살아있는데 반해 여학생들은 수동적이었다.
개성이 강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느끼게 해 준 한 시간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