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송이엄마의 미스 테리
송이는 극히 일부인 말 한마디를 부풀려서 마치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물었다.
“엄마, 내가 현 장희 엄마한테 다 들었는데.”
“무슨 말을?”“대전이모네 이야기. 그런데 엄마는 계속 나에게 숨길거야?”
하지만 고아라는 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랜 친구인 장희 엄마가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둘만이 아는 가족사라 도 넘은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부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까지만 해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도대체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거야 아이한테.”
“응 어쨌든 들었어.”
“그래? 할 수 없지 니가 대학에 들어가면 해주려고 했는데 공부가 안된다니까 해주긴 해 주는데
너무 상상이상으로 발전시키지는 말아라. 그게 더 공부에 방해 되니까 약속하면 해 줄게.”
“어이구 우리 엄마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겨자씨 만큼이라도 할까요
마음도 고우신 우리 고아라 권사님.”

고아라는 딸이 자꾸 하는 ‘우리’라는 말에 신경이 거슬려 장희 엄마가 도대체 대전의 어떤
이야기까지 했는지 확인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으로 말을 던졌다.
“너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인데 자꾸 우리라고 그래~”
“아 우리엄마는 예민하게 왜 그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잖아~”
“아. 하긴 그래 우리 딸 하하하하.”
송이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공부를 미끼로 미스 테리를 풀겠다며 바짝 다가가 앉았다.
고아라는 예민한 사항을 걸러내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조심조심 살얼음판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 친 할아버지는 대구 공단 주변에 사셨는데 늦은 결혼을 해서 외아들인 너희 아빠를 낳았다.”
“엄마. 너희라니? 그건 우리라는 말하고 같은 뜻?”
“어? 그래 맞아 니 아빠를 낳았다는 말이 헛 나온 거야. 나보다 니가 더 예민하다 하하하.”
“하긴 그렇네.”
‘우리’와 ‘너희’의 뜻은 정리되고 송이의 상상은 없었다.
눈앞에 명백한 현실은 부모님과 외동인 자신 자신뿐이었기에 믿은 것이다.
부모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은 태어날 때 두 눈으로 확인하고 믿은 사람은 없다.
낳았다 하니 믿고, 어려서부터 그렇게 인식하고 각인 되었으니 믿고,
엄마 아빠라 불렀으니 입으로 믿었고, 딸이라 부르니 귀가 믿었고,
안아주니 팔로 믿고, 마음으로 깊은 사랑을 주니 그 사랑 때문에 때려도 믿고
버렸다 해도 ‘날 버린 부모’라고 믿는 것이 아닌가.
“아빠 고3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학교를 마치자마자 운전 학원에서 딴 면허증으로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응~ 그래서 관광 운수업을 시작 하셨구나?”
“어? 그 그래 맞아.”
송이는 이해와 상상의 도가 높았지만 때로는 너무 단순해서 즉답을 하는 버릇 때문에
단순 상상으로 아빠가‘관광 운수업’을 했다고 정리를 해 버렸다.
혼자 몸이니 악착같이 돈을 벌어 모두저축해서 대형 관광버스 2대와 25인승 한 대를
만들어낸 노력의 댓가라고 자기 나름으로 생각했다.
“화물회사는 이익을 위해 과적을 하고, 아빠는 단속을 피하려고 국도만 찾아다니며
야간 운행을 하는 화물 트럭 운전수를 3년 하다가 군에서도 운전병을 마치고 또
운전 3년을 했는데 어느 날이었다.”
송이는 처음 듣는 가족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한 모녀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 자정이 되었다.
“밤 12시. 너희 아버지는 대구공단에서 짐을 산더미처럼 싣고 서울을 다니는데 계속 쉬지 못한 탓에
건장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너무 피곤했다고 했다.
아이구 내가 왜 이러냐~ 자꾸 너희라고 나온다. 이놈의 습관이 잘 안 고쳐지네 하하하하.”
송이의 즉답이 또 나왔다.
“응 나도 그런 게 있으니까 괜찮아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
“응. 그때 내가 도로 한 가운데 서서 손을 흔들어 너희 아빠트럭을 세웠다.”
“엄마가 왜?”
“응, 내가 대구 공단에서 근무를 했거든? 하여간 차를 세워놓고 부탁을 했다.”
“무슨 부탁?”
“아저씨, 제가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요 갑자기 언니가 너무 많이 아파서 대전을 가야 하는데
버스가 끊겨서 그래요 혹시 대전을 지나가시면 근처까지 만이라도 태워다 주실 수 있으세요?”
“나중에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는 코스모스같이 가녀린 몸매의 아가씨가 부탁을 하는데
졸림 방지도 되지만 처음으로 가까이 하는 여자라 호기심에 잘 됐다 싶어서 태워 주었다고 하셨다.”
“하하하...아빠가 엄마 같은 미녀를 태워서 기분이 업 되어서 피곤하지도 않았겠다.”

고아라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예? 그럽시다. 저는 서울을 가는데 말동무나 해 주세요 졸리지 않게.”
“예.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아가씨 저는 아저씨가 아니고 총각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
한 국남의 무뚝뚝한 성격이 초승달 눈웃음의 미녀 앞에서 신바람이나 말이 많아졌다.
고아라에게 넌지시 물었다.
“언니가 어디가 아프세요?”
“예. 언니가 습관성 유산이 벌써 세 번째인데 형부가 급히 와 달라고 해서요.”
“아~ 그러셨구나. 근데 부모님이 안계세요? 동생분이 가시게요?”
“예 아저씨. 우리 자매만두고 일찍 돌아 가셨어요.”
“아~ 그러셨구나. 근데 자꾸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총각이라니까요.”
“예. 체격이 크셔서....죄송합니다.”
“아니요 사람들이 가끔 그렇게 불러요.”
처음 본 사이였지만 남녀의 긴 시간의 대화가 두 사람 사이를 가까이 만들어 놓았다.
국남은 언니네 집 근처인 충북대 부근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아라는 너무 미안해서
사양을 했다.
이야기가 진행 되는 동안에 송이는 한 생각이 떠올라 엄마의 말을 끊고 말했다.
“엄마 그렇게 유산만 하는 이모는 언제 언니를 낳았데? 나는 본적도 없고 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 들은 것 같은데?”
“야야 한참 내 러브스토리를 진행 하려는데 이야기를 끊어 넘어가자.”
“어? 알았어. 엄마.”
큰 체격에 떡 벌어진 어깨의 듬직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가녀린 코스모스 처녀는
대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차라도 한잔 대접하겠다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 명함을 건네주었다.
“제 명함은 없고요 요리 전화를 해서 한 국남을 찾으면 됩니다.”
“성함도 멋있어요. 체격하고 어울려요. 제 피부는 까맣지만 이름은 고 아라 에요.”
“하하하 까만 피부가 더욱 잘 어울려요.”
“진짜요?”
“예. 웃으시는 눈도 마치 예쁜 초승달 같아요.”
“예? 호 호호호.”
예쁜 초승달이라는 칭찬에 바뀐 웃음을 보여주자 송이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말을 끊었다.
“아이구 우리 엄마 닭살......”
하지만 고아라는 듣는 둥 마는 둥 러브 스토리에 취해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빠는 날 계속 훔쳐보았다.
조금 까만 피부에 조금 작은 입과 가느다란 작은 치아가 가지런 총총 박힌 모습이
무척 예뻐서 자꾸만 훔쳐보았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해도 얼굴을 기억해 놓아야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흘 후. 대구 공단으로 돌아온 우리는 만나자 마자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사랑의 속도는
쾌속 질주를 했다.
결혼식도 필요 없이 석 달 후에 집을 얻고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임신을 했다.
“국남씨 저 아기를 가졌어요.”
“예? 그럼 내가 아빠가 하하하하.”
웃음은 거기까지였다.
화물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고 일자리가 떨어졌다.
3개월 입덧시작부터 너무 힘들어 직장을 그만 두었다.
둘 다 직장은 구하기 어렵고 할 수없이 전셋집을 나와 월세로 옮기고 남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돈을 다 떨어지고 임신 8개월이 되어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자 언니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이구 아라야 너 정말 너무했다. 자네도 그렇고.”
“죄송합니다.”
“하나뿐인 언니한테 둘 다 이럴 수는 없지 안 그래요? 아기는 어떻고?”
“예. 아직.....”
“뭐야 병원에도 여태 안 가보고 이 사람아 그렇다고 병원에도 안 가봐?”
“언니 너무 국남 씨를 나무라지 말아~ 우리 형편이 그래서.”
“알았다.”
언니부부는 제법 큰 규모의 여행사를 했다.
몹시 바쁜 중에 달려온 언니는 빨리 가봐야 한다고 병원검사비와 당분간 쓸 돈을 건네주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고아라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 어디에서 끊을까를 생각하다가 현장희 엄마가 말했다는
대전 이야기에서 말을 끊었다.
“송이야 여기까지가 전부다. 그 날 이후로 언니와 형부는 더 바빠지고, 우리는 일을 하느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우리는 화장으로 부모님 산소도 없으니까 더 만날 구실도 없었다.
그게 끝이야.”
“아~ 그랬구나...겨우 그게 전부인데 무슨 큰 비밀이나 있는 것처럼 말도 안 해 주고 나 참.”
“끝~ 오늘은 공부보다 딸하고 안고 자야지 이리와 우리 딸 하하하.”
송이는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또 자신의 맹점으로 단순하게 묻고 답을 해 버리고 말았다.
“엄마 근데 25인승 버스를 먼저 사고 나중에 대형 버스를 샀을 건데 언제 어떻게 돈을 벌어서 샀어?
두 분은 재주도 참 좋아. 공부 합시다. 홧 팅. 서울대 연대 천문학과 홧팅.”
“너는 참~ 고집도 세다 서울 행만 주장하고.”
“엄마도 만만치 않거든 충청도로 가라는 고집? 이제 더 이상 숨긴 게 없는 거지?”
“어? 어~ 그렇지 없어 하하하하.”
고아라는 딸이 만족한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송이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묻지 않았다.
‘유성우’가 있기 한 달 전쯤.
공부에 바쁜 별 볼일 동아리 회원들은 동아리 방에서는 모였지만 보현산 천문대와 과학관에
가는 일은 힘들었다.
하지만 경북과 현짱 절친은 수능 전에 한두 번쯤은 가자고 했다.
“송이야 유성우가 있는 날에는 가야하는데 바로 이어서 7월 7석이야 어쩌지?”
“그럼 한번만 가야 하는데?”
현짱은 경북과 어울려 다니고 싶어서 반대를 했다.
“둘 다 가자~ 마침 쉬는 날이야.”
“어? 그래 그럼 한번 생각해 보자.”
동아리 모임에서 송이는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과제를 준비하고 때론 별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중 2부터 고3까지 길다 면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송이는 별신동 환희를 닮아버린 별 해설사가 되어 친구들을 사로잡았다.
곧 다가올 7월7석 이야기는 풋풋한 고딩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사랑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압권이라고 모두 엄지 척을 했다.
작은 별 해설사 환희도 중학생에 들어서면서부터 갑작스럽게 커버린 심장과 뇌
그리고 좋아 한다고 생각만 하면 일어서는 솜털을 고1까지 키워왔다.
생각만 해도 손바닥에서 땀이 나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은
‘풋사랑’이라고 말하며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드디어 유성우가 내리는 날.
그런 특별한 날에는 환희와 해설사는 더욱 긴밀한 파트너가 되었다.
환희는 전에도 오늘도 미래도 해설사 도우미로 살다가 해설사가 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야 별을 좋아하는 송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해설사가 물었다.
“환희야, 별 볼일 동아리 예약이 있는데 그 친구들도 뜸해졌지?”
“예? 아 예~ 대학을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그 친구들은 공주, 부산, 경북, 충북, 서울, 연세대 천문학과나 대기학과에 간다고 정해 놨던데?”
“교수님께서 그렇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상담해 주신 덕분에 일찍 정한 거죠.”
“그렇지~ 내 후배들을 많이 양성해야지.”
“그것이 교수님께서 여기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니까요.”
“아이구 환희는 기억도 잘해 하하하.”
박 하순 해설사는 함박웃음을 웃었다.
“교수님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어디 있냐? 너도 천문학과 갈 거잖아 하하하하.”
“예.”
“그건 그렇고 그 팀이 오면 니가 인솔해서 와라.
오면서 선배님들과 대학진로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천천히 와라
그럼 더 좋겠지?”
“예. 감사합니다.”
환희는 지금 대학진로보다 송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한 달 전부터 운행을 시작한 셔틀 버스에서 별 볼일 동아리 회원들이 내렸다.
환희는 동아리 회원들이 송이 아버지 버스를 타고 오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환희야 안녕~”
“경북이형 왔어요. 근데 오늘은 왜 송이 아버지 버스를 타고 오지 않았어요?”
“어? 그런 사정이 있다.”
“그럼 대구에서는 어떻게 왔어요?”
“그건...묻지 마라.”
“왜요?”
^^다음 회를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