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38)
*다시 찾은 옥관자
김삿갓은 마당을 찾아보다 못해 조금 떨어진 시궁창까지 와보니 어린아이가 잃어버린 구슬은 다행히 시궁창 언저리에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색깔이 좋은 옥관자(玉貫子) 인듯 싶은, 매우 값진 보물로 보였다.
김삿갓이 그 구슬을 줍기 위해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때마침 시궁창에서 먹이를 찾던 오리떼 중에 청둥오리란 놈이 썩 다가가 그 구슬을 냉큼 집어삼켜 버리는 것이 보였다.
"이크, 큰일이군. 귀중한 보물인 듯 싶은데 오리란 놈이 그만 삼켜 버렸으니, 어쩐담! "
김삿갓이 그런 탄식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황 별감 댁 대문이 열리며 아이의 아비인 듯한 20세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부산스런 모습으로 아까 그 어린아이를 안고 나오며,
"네가 가지고 놀던 옥관자를 저 아저씨가 가져갔단 말이지 ? " 하고 말을 하며, 김삿갓을 괘씸한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안겨 있던 아이조차, "응! 저 아저씨야! " 한다.
졸지에 김삿갓은 도둑으로 몰렸다.
김삿갓에게 다가온 젊은이는, "여보시오, 이 아이가 가지고 놀던 옥관자는 우리집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귀물이니 욕을 보지 않으려면 빨리 내놓으시오." 하며 거두절미로 김삿갓을 몰아 부쳤다.
김삿갓은 옥관자를 청둥오리가 삼켜 버렸다고 사실대로 말을 할까 생각도 하였지만 성미가 급해 보이는 젊은이가 대뜸 청둥오리 배를 갈라 볼것 같아, 애꿎은 생명을 잃게하고 싶지 않았다.
("반 나절만 지나면 그 구슬이 오리의 배설물에 섞여 나올 것을..그때까지 잠시 내가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되면 생명도 하나 살릴 수 있지 않은가? ) 이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젊은이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을 하였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던 옥관자는 내가 훔쳤소이다. 그러나 반나절 후에는 반드시 돌려드릴 터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그러자 젊은이는 화를 벌컥내며
"뭐 어쩌구 어째? 남의 귀한 물건을 훔쳤으면 당장 내놓을 것이지 무슨 잔소리야! "
하고 호통을 치더니, 즉시 하인들을 불러내어 김삿갓을 결박하라고 일렀다.
젊은이의 명령이 떨어지자 하인 네댓이 일시에 달려들어 불문곡직하고 김삿갓을 밧줄로 꽁꽁 올가 묶었다.
김삿갓은 꼼짝없이 결박을 당한 후 혼자 생각을 하건데 ..
(황 별감은 부처님처럼 인자하신 분인데.. 이 젊은이는 그의 아들인지, 손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하여 조상을 닮지 못하고 성미가 이리도 사나울까? )
젊은이는 결박진 김삿갓을 땅바닥에 꿇어 앉힌후 또다시 호통을 질렀다.
"네가 훔친 옥관자를 아직도 내놓지 못하겠느냐? "
김삿갓은 얼굴을 들어 젊은이를 올려다 보며 말을 하였다.
"옥관자를 내가 훔친 것이 분명하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있어 반나절이 지난 후에 돌려 주겠다고 했는데 결박까지 짓다니 너무 성급한것 아니오? "
젊은이는 그 소리를 듣고 더욱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남의 물건을 훔쳤으면 주인에게 당장 돌려줄 일이지 반나절을 보낸 후 돌려주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봐라! 아무래도 저 놈이 옥관자를 몸에 감추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저 놈의 몸을 샅샅이 뒤져보아라!" 젊은이가 이같이 말을 하자 하인들이 썩 나서서 김삿갓의 몸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그러나 김삿갓의 몸에서 옥관자가 나올 턱이 없었다.
젊은이는 다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지며 하인들에게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이런 놈을 섣불리 다루다가는 큰일나겠다. 집에서는 아무리 달래도 내놓지 않으니 관가에 끌고가 치도곤을 청해야겠다. 썩 끌고 관아로가자!"
그리고 김삿갓을 굽어보며 엄포의 말을 이어갔다.
"이 고을의 사또는 우리 집안의 어른이시다. 네 놈이 관아에 끌려가면 살아서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니 죽기 전에 옥관자를 순순히 내어 놓거라! "
관아로 끌려가면 김삿갓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애매한 청둥오리를 죽게야 할 수 없지 않은가?
몇 시간만 참으면 청둥오리가 옥관자를 도로 내어 놓을걸 ..그러면 만사가 해결 될 것 아닌가?
그러나 청둥오리를 내버려둔 채 자기만 관아로 끌려가면, 옥관자를 찾을 길 또한 묘연해지지 않겠나?
생각이 이에 이른 김삿갓은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나에게는 공범자가 있소. 나를 관아로 끌고 가려면 공범자도 함께 가도록 해주시오."
"뭐? 네놈에게 옥관자를 훔친 공범자가 있다고? ..누구냐 그놈이!"
김삿갓이 얼굴을 들어보니, 옥관자를 삼킨 청둥오리는 아직도 시궁창에서 다른 오리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김삿갓은 문제의 오리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의 공범자는 저기 있는 청둥오리요. 그러니 옥관자를 찾고 싶으면 저 오리도 나와 함께 관아로 데리고 가 주시오. 우리 둘이 함께 가지 않으면 옥관자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오."
젊은이는 그 소리를 듣고 어이없어 하면서,
"이놈아! 네가 미치지 않고서야, 청둥오리가 너와 공범이란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
그러나 김삿갓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말을 했다.
"말이 되고 안되는 것은 재판을 받아보면 될 것이오. 아무튼 저 청둥오리가 나와 공범인 것은 확실하오.
따라서 옥관자를 찾으려면 관아에 함께 가야만 할 것 이오."
젊은이가 총명한 위인이라면 이쯤에서 뭔가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나, 옥관자 찾는데만 급급하여 사리와 총기를 잃어버린 듯
"네놈의 이야기는 미친 자의 횡설수설 같구나 .
그나저나 청둥오리가 너와 공범자라 하니 함께 묶어 가기로 하겠다."
하고 하인에게 청둥오리를 당장 잡아 묶으라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결박을 진 채, 두 다리를 묶인 청둥오리와 함께 사또가 있는 읍내로 끌려가게 되었다.
젊은이 휘하의 하인들도 모두 동행하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인들은 김삿갓을 끌고가며 동정하는 마음으로 은근히 귀뜸을 해주는데,
"문천 고을 사또 어른은 황별감의 조카사위 되는 분이라오. 당신이 동헌에 끌려가면 목숨이 남아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옥관자를 선선히 내어 놓으시오.
그러면 살아날 길이 있으리다."
그러나 김삿갓은 듣기만 할 뿐 대답할 수 없었다.
옥관자를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안 마을에서 문천 읍내까지는 30리가 넘었다.
일행이 관아에 도착한 때는 이미 한 낮이 지났다.
젊은이는 김삿갓과 청둥오리를 형리에게 인계하여 동헌 마당에 꿇어 앉혀놓고 관아에 들어가더니 사또와 무슨 공론을 하는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이방의 안내를 받으며 사또가 동헌 대청마루에 좌정하더니 김삿갓을 굽어보며 다짜고짜 서슬이 퍼런 호통을 내지른다.
"오리와 공모하여 황 별감 댁 옥관자를 훔쳤다는 자가 바로 네놈이냐? "
문천 군수 이호범은 처가댁으로부터 부탁을 단단히 받았는지 처음부터 무시무시한 태도로 나왔다.
그러나 김삿갓은 머리를 정중히 수구려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황 별감 댁 자제께서 저를 다짜고짜 도둑으로 몰아, 제가 오리와 공모하여 옥관자를 훔쳤노라 대답한 것입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눈알을 부라리며 벼락 같은 호통을 쳤다.
"이놈아!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오리는 말 못하는 짐승이 아니더냐. 헌데, 오리와 공모하여 옥관자를 훔쳤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 "
그러나 김삿갓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태연자약하였다.
"제가 미치고 안 미친 것은 두어 시간 뒤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이놈아! 네놈이 본관을 우롱해도 분수가 있지, 방자스럽게 누구더러 기다려라 말라 하느냐!"
"저 같이 못난 자가 어찌 감히 사또 어른을 우롱하겠사옵니까. 다만 두어 시간 후에 저 청둥오리가 황별감 댁 옥관자를 반드시 돌려 드릴 것이오니,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옵소서."
문천 군수 이호범은 머리가 비상한 사람으로 김삿갓의 말에서 어떤 암시를 받은듯..
잠시 머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더니 얼굴을 번쩍 들며 물었다.
"옥관자를 오리가 돌려 준다니? 그렇다면 오리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