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디 라마는 30~40년대 고전 미녀들이 넘쳐나던 할리우드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리던 절대미모의 배우였다. 이미 10대에 유럽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대표작 ‘엑스타시’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38년 부터 할리우드로 건너와 MGM과 계약을 맺고 ‘여신’ 처럼 추앙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붐 타운’, ‘삼손과 데릴라’ 등이 있다.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그녀를 영화에서 전형적인 금발미녀로 소비하기 바빴지만, 정작 그녀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좋아했으며, 각종 기계를 해체하는 것을 즐겼다. 단순히 ‘별난 취미를 가진 미녀’ 정도가 아니라, 훗날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 등의 근간이 되는 ‘주파수 도약’ 이라는 기술로 특허를 받았던 천재 과학자였다. 그러나 헤디 라마의 이런 과학자로서의 업적이 칭송받은 것은 60년대가 지나서였다.
세계대전이 펼쳐지던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전성기를 보낸 그녀의 인생 자체가 한편의 영화와 같았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첫 남편은 무솔리니, 히틀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물 군수업자였다. 남편은 그녀의 배우활동을 반대했고 감금하기까지 했는데, 헤디 라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영화같은 위장작전으로 집을 탈출, 프랑스와 런던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할리우드 배우가 되었다.
그랬던 그녀가 독일군과의 해상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 하던 미군을 위해 ‘어뢰’에 적용될 수 있는 무선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그녀는 언제나 영화 안팎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신여성이고 싶어했으며, 배우에 그치지 않고 <낯선 여인>(1946), <불명예의 여인>(1947), <렛츠 리브 어 리틀>(1948) 등의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