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성모님!
나자렛(Nazzareth), 히브리어로 지켜보다, 파수꾼의 뜻이 담긴 이 마을은 예루살렘의 북쪽 91㎞, 갈릴리 호수 남서쪽 산골짝에 자리한 마을이다. 비옥한 이즈르엘 평원이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해발 380m) 위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다. 아기 예수를 데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잠시 피난 갔다가 주님의 천사가 이르는 대로 되돌아와 정착한 곳이 바로 나자렛이다. 기원전 2천 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나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이 없어 구약에서 한 번도 언급이 된 적이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나자렛에서 그리스도인이 받은 박해는 이루말할 수 없이 많다. 우선 이슬람교도들은 성당을 그냥 두고 보지를 않았다. 박해를 받아 성당은 지었다가 훼손되고 다시 성당을 복원하는 역사로 점철 되었다. 1620년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들어오면서 성당들이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른다. 현재 약 4만 5천 명의 아랍인 주민 중 절반 이상이 로마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종파 간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아랍인들은 거의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지만 나자렛에 사는 아랍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많다. 아랍인들로서는 드문 아랍그리스도인들인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나자렛이란 말이 붙어 다닌다. “크리스찬” 이라는 말도 히브리어로 “노쯔리(notzri)”, 아랍어로는 “낫스라이” 라고 불리는데, 이는 “나자렛 사람들”,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위에 죄목으로 쓰인 십자가 명패에도 예수님이 나자렛 사람이라고 지목한다.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Iesus Nazarenus Rex Indaeorum) 즉 INRI이다.
5세기 수도원 옆에 세운 성당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얼마 후 그 이전에 세웠던 비잔틴 성당이 발견되었다. 기둥과 다듬어진 돌을 보아 2-3세기 교회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더욱 의미 있는 발견은 그리스어 대문자 ‘XE MAPIA’ 로 쓰인 기록이다. 이 말은 χαίρϵ Μαριάμ, 곧 ‘아베 마리아’란 뜻이다.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 아닐까. 성당 바닥에는 십자가가 새겨진 모자이크도 있다.
예수님 탄생 예고 동굴 열다섯 살 어린 소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하느님의 말씀이 가브리엘 천사의 전언을 통해 내린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15살 순진무구한 소녀에게 이 무슨 말인가? 개신교에서는 수태고지((受胎告知)라고 하는 성모영보(聖母領報,라틴어: Annunciatio)라고도 하는 이 장면은 종종 그림의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중세 유럽에는 이 장면을 두고 그린 화가가 많았다. 마리아가 독서 중인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을 뽑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옆에는 순결의 상징인 하얀 백합이 놓여 있지만, 대천사 가브리엘이 손에 백합을 드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 위에는 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이나 비둘기로 형상화된 성령이 그려지는 것이 많아, 성령에 의하여 잉태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게는 성모영보를 그린 이콘 중에 잊혀 지지 않는 그림이 하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와 가브라엘 천사가 나오는 그림이다. 마리아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는데 비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유독 날개가 호화찬란했다. 무지개 빛깔로 그린 천사의 날개는 전체 그림과 어쩐지 조화를 잃은 듯 너무 화려했다. 잘 알고 지내는 수사님에 의하면 잉태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순종했지만 아직 열다섯 어린 소녀인지라 놀랍고 두려워서 눈물을 글썽이지 않았겠느냐고. 마리아 눈에 맺힌 눈물을 통해 바라본 천사의 날개가 영롱했으리라고, 화가는 그렇게 생각했을 터. 일종의 프리즘현상이겠지. 이 그림을 그린 수사님은 프라 안젤리코이다. 프라는 수사님을 안젤리코는 에인젤, 천사가 아닌가? 천사 수사님이다. 수사님은 성화를 그릴 때 언제나 눈에 눈믈을 흘린다고 했다. 유독 수태고지를전하는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예수님의 잉태의 축복을 전하는 이 그림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내 묵상 자료로. 놀람, 경탄, 신비 등등 거룩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내 안에 있는 인간적인 반응, 수긍하지만 받아들이기에 내 그릇이 작아서 놀랍고 ‘정말 그럴까?’ ‘그것은 정말 이루어질까?’하는 갈등..... 이 그림은 성모님으로서의 마리아가 아닌 열다섯 소녀 마리아 입장에서 본 성모영보이다. 하느님의 점지를 받은 축복의 자리가 아니라 수난과 가슴이 찢어지는 아픈 세월을 감당해 내야할 착하고 어린 마리아에 대한 ‘련민’인지도 모른다. 소녀 마리아!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성모님을 좋아한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층 성전에서 본 전경, 8각형 지하에 탄생동굴이 있다.
성당 천장, 백합화를 형상화
나자렛에서 ‘성모영보 성당’으로 가는 길은 복잡한 아랍인들의 시장을 거쳐야 한다. 혼잡하고 좁은 시장 길을 지나 언덕을 올라서면 웅장한 성당이 보인다. 베이지색 건물에 옅은 벽돌색 돌을 줄무늬가 되도록 배열한 아름다운 성당이다. 규모는 정면 폭이 30m, 길이 70m 되는 성지에 있는 성당 중 가장 크다. 청동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1층 성당 안에 반 지하 형태의 계단을 내려가면 성모영보 동굴이 자리한다. 현재의 성모 영보 동굴은 헤로데 시대에 속하는 가정집으로 마리아께서 사셨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곳에는 3세기경 시나고그 기둥이 발견 되었다. 그리스어로 "XE MAPIA, (이는 χαίρε Μαριάμ 곧 ‘아베 마리아’,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 라는 뜻이다) 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발견함으로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었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자그마한 영보 성당 중앙제대에는 라틴어로 "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쓰여 있는데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 2000년 3월 이곳을 방문하시어 성모님께 기도드렸다 순례자가 많아서 여기서 미사를 드리기가 어려워 2층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성당 안 스테인드 그라스는 성모님 영보 순간을 그린 것이리라. 스테인드 그라스의 부드러운 빛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천사가 다시 발현하는 듯한 신비스러움마저 들게 한다. 헌데, 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문제다. 도무지 정신을 집중하고 미사에 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오묘했다. 성당 안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하여 들어오는 아름다운 빛으로 인하여 성모님께 나타나신 그 순간을 느끼게 해 준다. 신부님껜 죄송하지만 미사 대신 이런 느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성모영보 대성당은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봉헌으로 지어졌다. 옛 성당의 유적과 성모님의 영보 순간이 이루어진 성모님 집터 위에 새로이 건물을 올린 성당은 중앙바닥이 8각형으로 뚫려 있다. 2층 성당에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과 여러 국가의 지원으로 모자이크, 그림, 조각 등이 다양하게 장식되어 있다. 성당 벽을 따라가며 각 나라의 성모님을 기리는 그림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우리나라는 부산교구에서 보낸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 한복을 입으신 성모님께서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인데 조금 아쉬웠다. 예술적 감각이 살아나는 성화를 보냈으면 좀 좋을까. 기억에 짚이는 대로 평하면 스페인에서 봉헌한 그림이 특이했고 아름다웠다. 각 나라에서 보낸 성화의 특색은 그 나라 문화에 따라 표현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성화의 성모님은 흑인으로, 중국 교회에서 보낸 성모님은 중국옷을 입은 중국 여인이다. 토착화된 성화들은 깊은 인상을 준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온 인류의 구세주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가브리엘천사와 성모님, 영보의 순간 중앙제대 왼쪽, 프란치스코회 순교자들을 위한 경당
성당 바깥 전면 제일 윗자리에는 성모님과 가브리엘 천사가 아래 4명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네 명의 복음사가들, 독수리(요한), 황소(루카), 사람(마태오), 사자(마르코)가 장식되어 있다. 지금 성당은 196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이 자리에 지어진 다섯 번째 성당이다. 최초의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후 헬레나 성녀가 세운 이후 이슬람 등 외교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우기를 거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모님이 살던 집터에 성당을 세우려고 발굴하던 중에 수천 년 전에 쓰던 석재, 수많은 동굴, 물 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포도즙 짜는 틀, 동굴 집터, 화덕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 터도 찾아냈다. 마리아 집터 위로 50여 m 떨어진 요셉 성인의 집터(성 요셉성당)가 있다. 그대의 눈에는 어떠한가? 어린 마리아와 또래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골목을 다니며 놀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나자렛 회당 기념성당이 나온다. 회당은 시장 복판에 자리해서 시끌벅적하다. 아랍어로 ‘이거 좋아요, 진짜라니까요’ 하고 우리에게 물건을 사라고 보채는 거겠지. 전승에 따르면 회당 기념성당은 예수님의 나자렛 회당(시나고그) 설교(루카 4,16) 자리에 지어졌다고 한다. 12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나자렛 시나고그는 공관복음 모두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루카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어 이사야 예언서를 낭독했다고 전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 16-19) 회당 정면 제대 뒤엔 예수님께서 시나고그에서 가르치시는 모습의 성화가 있다. 이 시나고그를 들러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이곳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기념비적인 성경 말씀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루카 4, 28-29)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벼랑도 가까이 있다. 나사렛의 '벼랑산'이라고 하는 이곳에서 2009년 성지순례에 나선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그곳에는 타볼산, 모레산, 길보아산, 수넴, 나인 등 많은 성경 안의 명소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맙소사 무지한 그들이 예수님을 벼랑 끝에서 밀어 떨어뜨렸다면, 끔찍해서 몸이 떨린다. 성경에 나오는 회당이라 둘러보지만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마음이 끌리는 게 아닐까. 성모님 손잡고 시장 보던 중 사먹던 떡뽁이, 오댕 같은 주전부리라든가 동네 아이들과 회당에서 탈무드를 공부하다가 술래잡기나 제기차기 하던 흔적이 어디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지만 찾지 못했다. 가까이 있는 성 요셉 성당에는 요셉성인의 공방도 있다. 요셉 성인과 예수님, 부자간에 다정하게 대패질도 하시고 가구를 짜 맞추다가 저녁 먹자고 부르러 오신 어머님께 장난을 거시는 개구쟁이 예수님의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비누방울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가벼움, 경쾌한 발소리를 귀여겨듣고 싶었다. 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나오질 않던가? 성모님과 물장난을 치던 예수님의 천진한 모습이. 말이 나온 김에 회당기념 성당은 견디기 힘들었다. 나자렛 수도원에 거주하는 브라질 관구 작은형제회 수사님이 관리하는데 향을 자꾸만 피우는데 질식할 것 같았다. 호흡기가 좋지 않은 나는 자꾸만 기침하느라 혼이 났다. 아! 수사님이 기념으로 준 올리브 가지를 배낭에 꽂고 다니다가 집까지 무사히 가지고 왔다. 성지 순례를 하면서 나는 시종 성경 안의 사건으로 한편의 영화를 찍으려는 욕심으로 묵상보다 사건중심으로 보고 다녔다. 사실 순례하는 중에 묵상하기는 힘이 든다. 시선을 집중해서 현장을 주의 깊게 봐놓았다가 일과를 끝내고서, 아님 순례에서 돌아와 묵상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이스라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정신이 없다. 하도 많은 성지가 다 성경에서 보고 들었던 곳이 아닌가?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 그날 밤 펼쳐놓아도 어디가 어딘지 기억하기 힘이 들 정도였다. 순례에서 돌아와서 차분하게 사진과 메모했던 것을 찾아보니 비로소 순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하나하나 엉켰던 기억이 또렷이 살아나는 것은 경탄할 정도이다. 아직도 제 성지순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성모님과 어린 예수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나자렛은 더없이 친근하게 순례자를 반겨주었고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들었던 아랍상인들의 호객하는 소리조차 다정했다. 전쟁으로 시끄러운 이스라엘의 현실을 잊어버리고 평화로운 예수님의 고향과 헤어집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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