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김훈의 장편소설로, 고대시가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제목을 차용해서 창작한 것이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라는 부제목은 제목인 <공무도하>를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실제의 내용은 고대시가인 ‘공무도하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고대시가 <공부도하가>가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도 강 혹은 바다와 같은 ‘물’이 아주 중요한 제재로 활용되고 있다. 장마 기간에 한강의 범람이라는 소재로 시작되는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바닷가 마을 해망이라는 공간 역시 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자인 문정수는 아마도 작가 자신의 기자 생활을 반영하여 형상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작품은 장마철 가상으로 설정한 서울의 서북경찰서에 근무하면서, 한강물의 범람에 따른 침수 위험을 시시각각으로 접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문정수의 상황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새벽이 되어 기사 송고를 마친 문정수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노목희의 집으로 향한다. 노목희는 고향 창야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동류들을 밀고하고 잠적한 장철수와 연결되는 고리이며, 그는 개에 물려 죽은 아이의 부모를 찾아 떠난 바닷가 마을 해망에서 문정수가 만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백화점의 화재 현장에서 보석을 빼돌린 박옥출은 그 이후 10년 동안 몸담았던 소방서를 떠나, 장물을 처리하여 해망으로 떠나서 정착한다.
이렇듯 작품은 기자인 문정수와 출판사 편집자인 노목희가 등장하는 서울이 하나의 배경이고, 그들과 이리저리 얽힌 인물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게 되는 해망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삼아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미군의 폭격장으로 사용되었던 해망에서, 창야에서 자취를 감췄던 장철수는 베트남 출신의 여성 후에와 바닷속의 포탄 잔해를 건져내는 일을 한다. 해망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해망의 바다는 생존의 터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해망은 누군가 그곳으로 스며들어 정착하기도 하지만, 그곳을 떠나는 이들도 공존하는 장소이다.
중국 학자인 타이웨이 교수가 쓴 역사이행서 <시간 너머로>의 편집을 담당한 노목희는 출판에 이어, 초빙 강연까지 주관하는 등 바쁘게 지낸다. 그리고 타에에이의 두 번째 책을 출고한 다음날 노목희는 유학을 떠난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 가운데 누군가는 익숙한 공간에서 다시 일상을 영위하지만, 누군가는 몸담고 있던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강을 건너지 마라’는 말과는 다르게, 어쩌면 우리는 익숙한 공간에서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는 의미일까?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이기도 한 <공무도하>의 의미가 어렴풋하게 잡히는 듯도 하다. 이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은 서울의 경찰서를 전전하면서 기사거리를 찾는 문정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문정수는 취재한 내용 가운데 기자로서 써야할 기사거리가 있는가 하면, 기사가 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고픈 내용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은 취재가 끝난 이후 새벽에 찾아간 노목희에게 기사거리가 되지 못한 사연들을 풀어놨지만, 이제 그녀가 떠난 이후에는 그저 자신의 가슴에 담아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통해서, 아무리 만류하더라도 사람들은 언젠가 ‘강을 건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