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말하지 않아도
편집부
빈집
정일해
동네 할머니들 우리 집에 모여 국수 삶아 먹는다.
"아이구야, 국수 먹으니 옆집 하동댁 생각나네.“ "맞제, 국수 하나는 하동댁이 잘 말았제?“ "한번 불러 봐라. 혹시 올랑가 아나?“ "불러본들 저승문을 열고 나올 수 나 있겠나?“ "저그 집 풀 난거 봐라. 풀이 담을 넘는다. 넘어.“ "저거 보면 저승문 열고 나오고 싶을끼다.“ "글치. 그 할망구가 좀 깔끔쟁이였제.“ "그라모 우리 말 나온 김에 낼은 그 집 풀이나 좀 베까?“ "그래 그라자, 하늘에서 보고 기분이나 좋거로.“
할머니들 이야기하다 말고 빈집만 바라본다.
누가 뾰족박쥐일까, 우시놀, 어린이시나라, 103쪽 |
이 시의 힘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 데 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다루면서도 슬픔이나 그리움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아주 평범한 일상의 장면 속에 그 감정을 놓아두고, 독자가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화자는 할머니들의 대화를 해석하거나 끼어들지 않고, 그저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긴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지도 않고, 그 상황을 정리해 주지도 않는다. 이런 태도는 감정을 직접 전달하는 대신 장면 자체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특히 대화가 표준어로 다듬어지지 않고, 실제 말하듯 사투리 그대로 옮겨져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말투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공간을 함께 드러낸다. 덕분에 독자는 추상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특정한 마을의 구체적인 사람들 사이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실감이 살아나는 동시에,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대화의 흐름 역시 거슬림이 없다. 국수를 먹는 자리에서 “국수 잘 말던 사람”으로서 하동댁이 떠오르고,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대화 속에서 무심하게 드러난다. 이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집으로 옮겨 간다. 가까이 보이는 하동댁이 살던 빈집, 그리고 담을 넘어서 자라난 풀. 이 눈앞의 장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부재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습이 된다. 깔끔하던 사람이 살던 집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이 지금 없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이때 대화는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꾼다. 단순히 “그 사람이 그립다.”는 말로 머무르지 않고, “풀을 베러 가자.”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 시의 인상이 분명해진다. 빈집을 보며 느끼는 쓸쓸함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이 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쓸쓸함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꾼다. 떠난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마음, 그것이 거창하지 않더라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방식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명절을 앞두고 벌초하는 어른들의 모습처럼 익숙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 큰 의식이나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풀을 베는 작은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결코 작은 행동이 아님도 알게 된다.
결국 이 시는 죽음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그 빈자리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보여준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전해지게 만드는 방식. 바로 그 점에서 이 시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