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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행 6:7
(기도)
,,,그 복음 그것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아침에도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 십자가 피의 복음이 우리에게서 (?)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그리고 세상이 끊임없이 내어놓고 있는
왜곡된 인본주의의 지향, 인본주의의 교리가 우리를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 이 아침에도 말씀의 전신갑주가 우리에게 입혀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6장 7절만.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아멘.
이제 대단한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자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예루살렘은 어딥니까? 율법의, 유대주의의 근거지에요. 유대주의의 본산. 그래서 거기 예루살렘이라는 단어가 당연히 등장하는 거죠?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더 많아져요. 그러니까 유대주의가 점점 밀려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중요한 단어가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입니다. 유대주의의 핵심들이죠. 제사장. 율법을 숭앙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잖아요? 제사장들은 그죠?
근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사도들이 교회에 자꾸 문제가 생기니까 이 문제 해결 방법은 오로지 말씀밖에 없구나.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선행해야 하는구나, 해서 말씀 앞에 기도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죠? 기도와 말씀에 전념 하니라. 말씀은 그냥 어떤 설득이나 지식이나 논리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이해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인제 기도가 들어가는 거죠, 그죠? 그래서 그렇게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다, 그래요, 그죠? 왕성해지고 예루살렘과 제사장의 무리, 그 유대주의가 격파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 보세요. 그 당시에 제사장들과 율법주의, 유대주의가 행했던 것이 뭡니까? 그게 지금 이제 깨지고 있다는 것인데. 율법주의와 제사장들, 유대주의가 했던 게 뭐에요? 그들이 술에 취했을까요? 절대 술 안 마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만 마셨어요. ㅎ 안식일에. 술에 취하지 않았고 방탕하지 않았어요. 도둑질 하지 않았고요. 거짓말을 하면요, 그 예레미아서나(?) 레아킴 예레미아서나 (?) 그 유대 사가들의 책을 보면 실지로 당시에 제사장들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았느냐 하면요 입에서 자꾸 이렇게 질투나 시기 거짓말 같은 게 나오잖아요? 우리 같은 경우에 안 그럴려고 해도 얘기하다보면 늘 남 욕하고 있잖아요, 항상? 아닌 것처럼 그러시지만, ㅎ. 그러면요 그들이 바늘로 자기 입을 꿰맸대요. 바늘로. 마취제가 있었겠어요? 뭐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겨우 음식, 죽 같은 거나 빨아먹을 만큼 남겨놓고요 입을 자기가 꿰맸다는 거예요. 당시에 여러분 기둥위의 성자라는 사람이 있었죠? 아래에 있는, 자꾸 이렇게 음욕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니까 30미터 기둥을 세워놓고 기둥 위에서 삼십 년 살았어요. 기둥 위에서. 엄마도 안 봤대요. 자꾸 자기 마음속에 이렇게 어두운 생각들이 들까봐. 여러분 그게 제사장의 율법주의, 유대주의에요. 굉장히 기특한 것 같지 않으세요?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요즘 우리가?
제가 옛날에 알프스에 갔다고 그랬죠? 제가 알프스에 갔는데 거기 알프스에 수도원이 있어요. 거기는 만년설이 있는 곳이니까 얼마나 추워요? 근데 그 밀가루포대 같은 수도사들 옷 있죠? 그거 굉장히 춥습니다. 여자들 그거 제가 이해를 해요. 통으로 된 치마 같은 거 하나 수도승들이 입고. 거기에 인제 뭐 15일, 40일 이렇게 체험하러 가는 사람들도 그 옷을 입어야 되는데. 그거 하나 입고 자고, 또 그 옷을 입고 묵상하고 그거 입고 밥 먹고 하는데 바람이 아래에서 숭숭 들어오는데 얼마나 춥던지. ㅎㅎ. 여자들 어떻게 다녀요? 그거 겨울에? 치마 입고. 그리고 수시로, 말도 안 하거든요. 그리고 수시로 자기가 자기를 때려요, 또. 그러니까 나중에는, 제가 거기에 그때 당시에 다른 종교들에도 진리가 있는가를 너무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수도사들의 삶에 대해서 좀 배워보려고 갔다가 나중에는 여기가 마귀가 사는 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갖고. 도대체 즐거움이라는 게 없어요. 그냥 밥 먹을 때도 쾡 해가지고. 눈이랑 쑥 들어갔어요, 너무 굶어서. 그리고 낮에 가서는 또 그 알프스 그 추운데 일을 해야 돼요, 또. 그리고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계속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해야 되고요. 근데 90먹은 할아버지도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평생을 거기에서, 이젠 연로해서 일도 못하니까 성경을 히브리어로 계속 이렇게 필사하세요. 아니 인쇄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데 그걸 왜 쓰고 앉아 있어요? 90년 동안? 그런 것이 인본주의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뭔가를 해서 구원에 기여를 하겠다는 것이죠. 그게 제사장들의 율법주의에요, 유대주의였어요.
그런데 제사장들이 말씀의 도에 복종하더라. 말씀이 흥왕하여 전하되니까 그렇게 열심히 도덕과 윤리와 율법을 지켰던 제사장들이 말씀에 순종했다, 그래요. 그러면 말씀의 도의 핵심이 뭐에요? 이 제자들이 전했던 말씀의 도의 핵심? 나오잖아요. 스테반의 설교도 조금 있으면 나올 거고 뭐 베드로의 설교 바울의 설교 우리 다 배웠잖아요? 거기에서 중심 핵심이 뭐였어요? 예수, 은혜!였어요. 그렇죠? 예수와 은혜. 그러니까 율법주의와 유대주의가 주장하던 것은 인간의 행위가 반드시 하나님의 상을 유발해내는 어떤 가치 있는 것이다, 라는 게 유대주의였고 제사장들의 그 생각이었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그거 아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그분의 피의 공로만 의지하면 돼. 근데 너희들은 그렇게 열심히 율법 지키고 제사 지내고 있었던 너희들에게 와서 회개하라고 외쳤다고 해서. 왜냐하면 회개하라는 건 돌이키라는 뜻인데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회개하라, 라고 한다는 건 그거 아니야, 라고 이야기 한 거잖아요?
세례 요한의 복음은 그거였단 말에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때 무슨 복음을 전했겠어요? 예수님이 죽기 전인데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잖아요. 그때 무슨 복음을 전했겠냐고요? 회개하라, 그랬어요. 하나님 나라가 왔다. 그러면, 근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사마리아에도 가지 말고 이방인에게도 가지 말고 예루살렘, 유대인에게만 가라고 했다는 건 유대주의에 대해서 하나님이 할 말이 있었다는 거예요. 제자들을 통하여. 그러면 제사장과 유대주의 자에게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해라, 라고 얘기했다는 건 너희들 그거 아냐, 그 방법으로 구원 못 받어, 라는 뜻이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자존심을 뭉개니까 예수를 유대주의가 죽인 거 아닙니까?
그 유대주의는 전체 전 인류, 아담 안에 있는 선악의 판단을 이제 내가 하기로 결정한 그 전체 죄인들의 상징이에요. 유대주의라는 건. 그 유대주의, 그 죄인들에게 너희들 그거 아냐. 인본주의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어. 너희들 암만 착한 일 많이 해봐라. 절대 그거 안 된다니까.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그들이, 제사장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여 버렸단 말입니다. 그걸 바울이나 베드로가 계속 설교를 했어요. 그리고 제자들이 우리가 이제 말씀을 전한다, 해놓고 그렇게 말씀을 전했단 말입니다. 유대주의, 예루살렘에서.
그러니까 예루살렘 전체가 유대주의인데 여러분, 예루살렘에,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있었느냐 하면 요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같은 데 가면 그 이슬람 성인이 되면 거의 이백만 명이 모여서 순례를 오거든요. 티브에서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새카매요 사람들 머리로. 그런데 예루살렘 성은요 아주 작은 성이었어요. 모리아 산위에 세워놓은 아주 작은 성. 고 성에 수시로 절기 때마다 그마 만큼, 그 당시의 인구가 얼마나 됐다고 이백만 명이, 이백오십만 명이 모였어요, 남자만. 네? 율법 지키겠다고. 제사 지내겠다고.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에서 너희들 그런 열심 다 필요 없는 거야 너희들 아무리 제사지내고 너희들이 아무리 율법 지킨다고 해도 그거로 구원에 이르지 못해. 그리고 그건 상의 근거 안 된단다, 했더니 말씀이 그들 안에 들어가니까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이 말씀의 도에 복종하더라. 라고 나오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됐다는 거예요? 예수의 은혜만 붙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그게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은, 그러니까 죄라는 게 뭔지 한번 규명을 해봐요. 죄가 뭐에요? 죄?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도둑질하고 이거가 죕니까? 맞아요, 죄에요. 그러면 여러분이 남을 돕고 뭐 선한 일을 하고 그건 죄 아닌가요? 그건 그냥 선이에요? 맞습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그건 선이라면서요? 죄라는 거 자체가 이 시대의 교회에게 잘못 인식이 되어 있어요.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신데 은혜를 받아야 할 자가 하나님 없어도 되는 것처럼 사는 걸 죄라 그래요. 나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깨끗하고 얼마든지 선하게 살 수 있어요. 선악 판단? 우리가 해요, 내가 해요. 당신의 선악 판단의 기준을 내가 왜 쫓아가야 해요? 당신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애기까지 다 죽여라, 하는 거 그거 잘못 명령하신 거예요. 이게 자유주의 신학이거든요.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마구 비판을 해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게 죄에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자기의 선악구조를 갖고 판단해버리는 거.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뭐 자기가 이 현대의 과학이나 논리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은 빼버리는 거 이게 죄에요.
그러나 오늘날 신앙이 전부 그렇게 갑니다. 정(?)이니 박택훈이니 뭐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사람들에게,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개혁 쪽의 선봉장인 것처럼 그렇게들 여겨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성경의 그런 부분들을 안 믿어요. 인정하지 않아요, 여러분. 근데 왜 그렇게 존경을 받느냐면 목사들도 세금내자, 뭐 교회의 모든 절차를 민주적으로 하자. 교회가 민주주의에요? 전체군주젭니다. 하나님만 왕이고 나머지는 다 복종해야 되는 거예요. 언제부터 교회가 민주주의가 됐어요? 뭐 이런 것들 주장한다고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개혁주의의 선봉장들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내가 인터넷에서 몇 번 논쟁을 했는데 그 사람들하고요. 그게 기독교의 지향점 아니에요. 그거는 다 하는 거예요, 남들도요. 절에서도 그런 개혁들을, 이 급진 개혁주의 중들이 하고 있어요, 우리가 몰라서 그런 거지. 그 사람들도 개혁주의에요, ㅎㅎ 불교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진짜 쓰레기군요.를 깨닫는 일을 하는 게 교횝니다. 아니, 여기에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아무것도 몰라요. 근데 다수가 옳다고 인정하는 걸 끌고 가는 거를 그게 옳은 교회라고 한단 말입니까? 그 다수가 가라지였으면 어떡할 거예요? 네? 여러분 복음을 여러분이 알면 알수록 진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없구나라는 걸 절실히 깨닫지 않습니까? 없어요. 드물어요. 그런데 그런 다수들이 원하고 다수들이 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걸, 그걸 옳다고 쫓아가는 게 교회가 맞냐고요? 그런 게 선이 아니에요. 그런 게 착한 게 아니라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은혜만 꼭 필요합니다. 절 좀 도와주세요. 우린 이렇게 더러울 수밖에 없고 우린 하나님의 은혜가 한 순간이라도 떠나면 이렇게 금방 나락으로 떨어지네요,를 경험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그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덮쳐들어오는 걸 복음이라 그래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소설 있죠?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거. 저는 톨스토이의 말년 작품들도 참 좋아하지만 여러분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말년 작품들을 한번 잘 읽어보세요. 그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가 그 혁명세력으로 오해를 받아서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 직전에 황제의 명령으로 인제 사면을 받고 시베리아로 유배 가잖아요?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서 그가 예수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작품이 다 바뀌어요. 죄와 벌이라든지. 여러분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소설을 잘 읽어보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집보다 훨씬 감동이 있어요. 여러분이 복음을 안다면. 제가 오늘 새벽에도 일어나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 주일날 도움을 좀 받으려고. 그 양반의 책도 90%이상은 쓰레기에요. 복음을 알고 나니까 그 양반도 어느 한계에서 넘어가질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요즘은 읽을 책이 없어요. 그래서 차라리 요즘은 그냥 뭐 신경숙이나 박완서의 소설을, 그 안에는 인생이라도 담겨 있죠. 맨 신학과 교리에 묶여갖고 벗어나지를 못해요. 그냥 기독교 강요에 묶여 있어, 로이드 존스도 보면. 여러분 그런 책들을 많이 읽으세요. 이제는 제 방에도 책이, 집에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 보면은 다 아우 로이드 존스의 쓰레기, 박영선의 쓰레기 다 쓰레기들밖에 없어요. 요즘 제가 하루에도 한 열 시간 책을 읽는다면은 아홉 시간 반은 버려야 할 것들을 추려내는 시간밖에 안 돼요. 그만큼 없어요. 좋은 책도 없고.
근데 그러한 진짜 참 신앙인들의 삶과 생각이 묻어 있는 책을 보면 굉장히 큰 은혜들이 있어요. 뭐 대학시절에 읽은 거지만 저는 그때 그게 무슨 얘긴가 그랬어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보면요 그런 얘기가 나와요. 예수님이 이제 돌아가신지 한 천팔백 년 되니까, ㅎㅎ.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시대의 이야기로. 세상에 한번 내려가서 다시 한 번 내가 왔다, 라고 이야기를 해볼까? 하고 내려오시는데 교회에 갔는데 아무도 못 알아봐요. 예수님을. 왜냐하면 여러분 유대주의라는 걸 보세요. 그거 모세에게, 하나님이 하늘의 본을 보여주고, 히브리서 8장 9절, 보여주고 모세야 네가 본대로 지어, 해서 율법과 제사와 성전을, 성막을 지은 거란 말에요. 그러면 그건 순수한 거예요. 그런데 왜 예수님이 그걸 굳이 천오백 년 후에 부수러 오시냔 말에요.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의 인본주의에 맞추어서 순수한 것을 똥으로 떡칠하게 돼 있어요. 하나님이 부수러 와야 할 만큼. 자기가 원형을 보여줬는데도 인간들이 그걸 보고서도 그렇게 인본주의로 떡칠을 하더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 천팔백 년이 지났어요. 초대교회가 생긴 이후에. 예수님이 다시 내려왔는데 작금의 기독교는 어떻겠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유대주의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자기들이 목숨을 걸고 수호할 만큼 옳은 건 줄 알았어요. 목숨을 걸고. 입을 꼬맸다니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인간이? 진짠 줄 알았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근데 예수님이 오늘날 한번 오셔보세요. 너희들이 행하는 그 착한 일 몇 개 너희들이 행하는 그 종교적 열심, 언제부터 또 이런 게 구원의 근거가 됐니? 언제 너희들이 또 다시 현대의 유대주의로 돌아갔어? 그게 아니라 나 좀 알으란 말야. 나를 배워야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누구야? 나는 연한 순으로 왔어.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을 도울 수 없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로 온 거예요. 네? 예수님의 그 옆에 달렸던 강도가 자기를 전혀 도와줄 수 없는 십자가에 못 박힌 발가벗은 예수에게 영혼을 부탁한 그게 성도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세상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강도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죽었단 말입니다, 현실은. 그러한 예수, 연약한 예수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그냥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냥 평생 강도질만 했으니까.
그 상태에서 하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면목 없지만 내 이름만 좀 기억해주세요. 내가 평생 나를 위해서, 그리고 명분을 위해서 독립운동하고 그렇게 이 세상의 다윗 왕국의 회복을 위해서 살았는데 거기 있는 강도들은 열심당원들이란 말입니다. 강도들은 절대 십자가에다 안 달아요. 로마의 반역자들만 달았단 말에요. 그러니까 바라바가 열심당원이었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그러잖아요. 나중에. 야, 저놈, 저것도 그 다른 우리 그 독립운동의 그 리더들이 있었잖아요? 바로 고런 놈이라고 얘기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명분을 위해서 독립운동도 하고 이게 강도짓인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그들이 강도라고 하는 거예요. 강도.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의 나의 부귀영화 이 세상에서의 나의 잘됨을 위해서 나를 우상숭배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게 강도짓이란 말입니다. 왜? 내가 중심이 되면 나에게, 그게 하나님이라도 나에게 해가 되면 죽여 버려야 되는 거거든요. 그게 강도에요. 남의 것을 항상 탈취하여 나를 채워야 되니까. 그래서 예수를 죽였잖아요, 하나님을 죽였잖아요? 그게 하나님이라도 안 돼, 못 참아요, 죄인은요.
그러니까 그런, 그러한 예수.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그냥 면목 없이 은혜로 들어오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그 예수가 와서 (?)에도 똑같이 추레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너희들이 아무리 집 팔아서 헌금하고 아무리 도에 지나게 봉사하고 구제하고 해도 그게 근거가 되는 게 아니라, 나는 그거 보는 거 아니라 나의 피를 의지하고 내 앞에 완전히 나는 죽은 흙입니다,를 고백하는 자만 내가 데려갈 거야. 그런다고 해보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몇 명이나, 맞습니다. 우리 교회는 뭐 맞겠지만 하도 들어서. 교회에서 몇 명이나 맞습니다. 주님 맞습니다. 십자가 지고 발가벗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병을 고쳐달라고 그래요. 무슨 재산을 늘려 달라 그래요.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는 그거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면목 없이 구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인정하고 그 초라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붙들 사람이 몇 사람 있겠어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래요. 교회는 복음을 희석시켜 부흥을 샀다, 이래요. 복음을 올바로 전하면 부흥이 절대 오지 않습니다. 백 프로 개런티 해드릴게요, 제가. 이제 자꾸 우리 교회 교인들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아니요. 그래서 제가 더 걸러내는 거예요. (?) 하고. 나가라! 너희들은 절대 못 견딘다는 걸 내가 보여주겠다. 절대 못 견딘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전해질 때 너희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한번 봐라. 보여주려고요. 절대 못 견뎌요.
여러분 올바른 신앙을 제대로 안 사람은 그게 소설가여도 그걸 정확하게 판단을 해요. 2백 년 전에도 어떤 이가 그 교회의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걸 세상 사람들에게 전했단 말입니다. 근데 사람들이 복음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은 것들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냥 그 나쁜 놈, 표도르, 그 아버지 있잖아요? 나쁜 놈. 알료사 (?)한 놈. 예수 믿으니까, 그걸로 끝. 선하고 착하게 살았으니까.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모르는 거예요. 거기에는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짜 영과 육의 행위가 무엇인지가 정확히 들어 있어요. 죄와 벌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톨스토이의 말년 작품들 있죠? 사람들이 굉장히 무시해요, 그걸 갖고. 야, 톨스토이가 뭐 이 따위, 완료도 맺지 않는 소설들을 이렇게 써놓고 그러고 갔냐? 그 안에 그가 (?)겪었던 그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많은 고민들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의 소설, 말년 작품들을 이해 못해요. 그래갖고 그게 제일 안 팔려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고런 단편들이 모여 있는 책들 있죠? 고런 거 한번 잘 읽어보세요. 여러분 인간은 그렇게 선할 수 있는 존재가 못 돼요. 그냥 자꾸 여러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그냥 이렇게 폭로당하시면 돼요.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참 좋은 동료들을 몇 만나서 전 신학교를 재밌게 보냈어요. 지난 수요일에도 우리 샌디에고에서 지금 공부를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는, 언제 마칠라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계속 공부하고 있는 그 전도사가 왔는데 저랑 꽤 오랜 친구에요. 제가 주례 섰는데 이혼했어요. 참, 씁쓸하더구만요. 전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가 만나는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가서 부잣집 어떤 여자 만났다고 해갖고 그냥 가서 샌디에고까지 가서 주례를 섰는데 알고 보니까 뭐 산호세에서 강 ㅇㅇ목사랑 도망갔던 그 여자가 강 ㅇㅇ를 차고 다시 이 놈을 택해갖고. ㅎㅎ, 또 차였어요. 근데 몰랐어요, 모르고 그냥 야, 너도 이제 팔자 폈다, 해줬더니 몇 개월 있으니까. 그렇죠, 아무리 목사가 강대상에 섰을 때나 멋지게 보이지 그거 (?) 집에서 맨날 집에서 놀아 봐요, 그게 뭐에요? 그게? 놈팽이지. 네? 그러니까 이놈도 그냥 교회에서 찬양인도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막 이러니까 또 그냥 먹잇감이 돼갖고 말이죠. 캐시로 몇 백만 불을 갖고 있다나, 뭐 이러면서 그냥 좋아가지고 결혼하더니 뭐 금방 차였죠, 뭐. 집에서 뭐 하는 일이 뭐가 있어. 여자 보기엔 이제 쪼다 같으니까 육개월 못 가서 차였는데.
근데 신앙의 이야기를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 저와 참 많이 하는데 요즘 우리 교회 설교도 많이 들어요. 많이 들으면서 많이 변해졌다고 하는데. 그런 몇 명의 동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이제 장로님 한 분이 계셨어요. 제가 초창기에 너무 그분한테 의지하고 했던 분이 한번은 저에게 사업을 크게 하시는 분이니까. 제가 예전에 정치를 하고 그랬으니까 아는 정치 거물들을 좀 소개시켜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유재정씨가, 유ㅇㅇ 의원이 LA에 와 있었을 땐데 만나게 해줬어요. 만나게 해줬는데 이야기하는 게 한국에다가 자기가 사업을 크게 시작했는데 거기에 인제 그 사업을 어떻게 하기 위해서 불법으로 어떤 사람을 데려다 쓰고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한테 오히려 당한 거예요. 이제 그 사람이 사업을 같이 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 사람의 모든 치부들을 다 아는 거죠. 탈세한 거 전혀 몰랐었죠. (?) 그냥 내 신앙의 아버지, 영적 동지. 근데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 도움을 받으려니까 솔직히 얘기를 다 할 거 아닙니까? 여기에서 계속 탈세한 거, 다른 사람들 속이고 이것저것 편법과 권모술수를 사용하여 그 사업을 늘려간 이야기를 이분에게 계속 해주면서 이걸 이놈이 다 알고 있는데 그걸로 나를 지금 고소를 해놨는데, 한국에서. 그걸 큰 어떤 정치인이 배후세력으로 있으면서 자기를 지키려고 하니까. 내가 당신에게 돈을 얼마든지 줄 테니까 그걸 당신이 위에서 다른 손을 써가지고 이 사람을 밟아달라는 거예요.
저는 깜짝, 너무 충격을 받아갖고 거기서 그러면 그동안에 내가 이 사람한테, 이 사람과 같이 나눈 신앙의 이야기와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줬던 그 수많은 조언들이 다 뭔가? 너무 이게 그래갖고 제가요 유 ㅇㅇ씨가 돌아가고 나서 전화를 했어요. 그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인간적인 어떤 것을 떠나서 당신이 돈을 얼마를 받기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또 전화해서 김성수 목사가 개입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ㅎㅎ. 그래갖고 그 사람이 그때부터 저를 그냥 (?)찾아다니고 만나면서 뭐 뭐라고, 뭐라고 하기 시작하는데. 아,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김성수 목사 사표 쓰라고 하겠다! 이런 얘기도 하고 뭐 별.
그러니까 보세요. 여러분 어떤 사람을 여러분이 저 사람은 참 훌륭한 신앙인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완벽해, 거룩해! 어떤 사람을 여러분이 그렇게 인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단 한 순간이라도 떠나면 나는, 보세요. 구약에도 성령이 임해서 하나님 손에 들려 쓰일 때는 올바로 쓰인 사람이 있어요. 심지어 사울도 그랬고요. 아니 당나귀도 쓰였다니까요. 하나님과 관계있을 때는 그 자체가 가치이고 그 자체가 선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금방 마귀새끼 되는 거예요. 그걸 내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늘 인정하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 꼭 붙들어요. 제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제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하고 제가 아무리 예배를, 주일성수를 한 번도 안 빠졌다할지라도 이게 하나님이 어떤 일을 위해 잠시 나를 쓰는 과정이고 언젠가 하나님이 나를 버린다할지라도. 그러면 나는 언제든지 마귀 새끼 될 텐데 그래도 저는 아무 할 말 없습니다. 라는 자리까지 내려가는 게 성도에요.
그래야 예수님이 여기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셔도 그래요, 하나님 나는 그 하나님 믿을 거라고, 그렇게 잡을 수 있는 거지. 내가 나를 의지하고 있고 나의 행위에 어떤 점수를 주고 있으면 안 돼요. 그래서 전 그 이후부터, 예전에는 모든 걸 다 참았거든요. 부부싸움을 해도 참아야 돼, 참아야 돼. 내가 죽어야지. 그냥 요즘은 그냥 말해요. ㅎㅎ. 왜냐하면 그건 벼르는 거거든요. 내가 참은 게 아니라 벼르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벼르고 벼르다 보니까 더 터져버려. 여러분 제가 굉장히 큰 사기를 한번 당했어요. 그것도 제 수제잔데, ㅎ. 제가 한국에 돕고 있는, 제가 만들었죠. 그 Fund manage 라는 그걸 만들어서 난곡에 있는 아이들 철거민촌 아이들을 모아서 그게 자연스럽게 고아원이 됐어요. 그게 너무 어려우니까 그동안 제가 계속 그걸 돕고 제 우리 가족들이나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그래도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계속 도와왔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재단으로 만들기 위해 저희 아버님이 상당한 돈을 주시고 해서 그거를 이제 어디다 위탁을 해놓고 제가 여기서 수시로 생활비를 안 보내도 될 만큼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이렇게 댈 수 있게끔. 그거를 맡아준다고 해서 제 제자한테 맡겼어요. 회계를 맡긴 거죠. 그럼 제자가 다 알아서 거기는 걱정 없이 해주겠다고 해서 다 맡겼는데 그걸 다 털어먹었어요. 그 아이들을 살린, 42명의 아이들을 살릴 돈인데 다 털어먹었어요.
여러분 그때 제가 참았습니다. 품어 안아주고 야, 이런 시련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허락하시는 거겠지. 근데 이 들려오는 이야기가 그놈이 나에게 이야기한 거와는 계속 달라요. 심지어 그 후 또 얼마 후에 저한테 또 십만 불을 어디서 좀 꿔달라고, 아는 사람한테 돈을 꿔달라고 또 찾아왔어요. 제 마음속으로는 이걸 때려죽일까? 라는 마음을 참고 있는 사람한테 또 찾아와서, 그러니까 제가 그렇게 대해주는 걸 이 사람은 얼마든지 내가 목사니까,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에 얼마든지 내가 이렇게 이용해먹어도 괜찮다, 라는 생각으로 또 찾아온 거겠죠, 그죠? 그런데 제가 그걸 참았습니다. 그리고 또 격려해주고 심지어 그놈 주례까지 서주고 신혼여행까지 돈 빌려서 다 보내주고 그랬어요. 저는 그것이 성도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이 물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그런 걸 통해서 진짜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배우는 건 참 좋아요. 참아보면서 그래 성도는 이렇게 밟히는 거겠지. 그런데 거기서 머물면, 머물러서 되는 게 아니라 근데 내 마음속에서 왜 이렇게 이게 진심으로 용서가 안 될까? 까지도 배우셔야 돼요. 우리는 그걸 내 마음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냥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언제든지 그런 놈 찾아가서 찔러죽일 수 있는 게 우리의 본전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붙드시는 것뿐이에요. 붙드시는 것일 뿐이에요.
근데 그런 상태에서 복음을, 은혜를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이겠어요? 나는 안 되는구나,를 배우는 거예요. 그때에 진짜 내가 나에 대해서 점수를 잃게 되고 내 안에 쌓아놓은 나의 마일리지를 왕창 무너트려버리는 거예요. 그동안에 어려서부터, 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빵집도 한 번도 안 갔어요. 대학교 때 진짜 미니스커트 입고 어떤 여자가 옆을 지나가면, 남자는 다 흘깃 쳐다보게 돼 있어요. ㅎ. 게이 빼놓고는 다. 그러면요 돌아서서 벽을 보고 삼십 분씩 기도를 했다니까요. 주여, 이 음욕을 어찌하면 좋으리까? 그게 근데요 제 마음속에 기특함으로 다 쌓여있었어요. 신학교 들어가서요? 진짜 아무리 배고파도 교인들이 돈 싸 짊어지고 와서 전도사님, 애들 밥을 굶고 있는데 이거 애들 밥값으로 돈을 갖고 몇 백 불씩 주면요 그걸 그 집에 도로 찾아가서 우체통에 넣어놓고 왔었어요. 미쳤지. ㅎㅎ. 그리고는 쌀을 물에 끓여서 쌀 물을 먹였다니까요, 애들을. 근데 그런 것들이 무엇이, 어디서 근거한 것이었느냐 하면은 나는 이렇게 잘나고 바르다, 라는 걸 놓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렇잖아요? 어떤 걸 새 걸사면 고 새 거에 먼지 묻으면 얼릉 털고 그냥 (?)닦고 이러잖아요? 고런 마음인 거예요. (?)봤으니까 그러다가 차에 누가 못을 한번 찍 긋고 가면 어떻게 돼요? 아무데나 막 세워놓고 ㅎㅎ. 그 전에는 주차장에 세워놓고 이 껍데기도 꼭 씌워놓다가. ㅎㅎ. 제가 22살에 그랜저를 탔어요. 차를. 집 앞에 놓고 하루에 한 번씩 왁스로 닦는 그 기분 아시죠? 근데 쓰레기차가 지나가다가 이만큼을 찌그려 놓고 간 거예요, 네? ㅎ. 아 그 쓰레기차 폭파시킬라고 하다가 정말. 그 다음부터는 그냥 아무데나 세워놓고 누가 발로 차고 가도 그냥 용서가 되더라고요. 어차피 그런 거.
여러분 신앙은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걸 (?)는 안 돼요. 내가 처음자리, 나의 처음자리가 어디였는가를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납작 엎드려 순종하는 게 신앙의 목적지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처음자리가 어디였냐고요 처음자리? 무였잖아요, 흙. 그러니까 그 흙은 토기장이가 뭘 만들든 아무런 어떤 주장을 내세울 수가 없는, 그의 삶 전체를 압류당한 인생이라는 걸 여기서 배워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마귀가 자기의 세간으로 나를 써서 나를 마귀의 소유로 마귀처럼 써도 그리로 끌려가고 마귀의 세간을, 마귀를 묶어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늑탈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써도 그대로 끌려가고 하다가, 이건 뭐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네?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거예요, 나를. 왜 나를 하나님께만 맡겨야 되는지를 배우고 가는 게 신앙인의 인생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렇게 뭐를 내가 얼마만큼 참았고 뭐를 얼마만큼 선한 일을 했고, 가, 아니라,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악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내 삶을 놨을 때 나는 어떻게 될 수밖에 없는가만 배우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 현실들 일들은 하나님 나라 들어갈 때 불로 태워지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공력이에요. 태워지고 예수만 남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3장.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인 거예요. 주어진(?)구원. 왜? 나는 죽어라고 뭘 했는데 하나님에 의해 하나도 인정되지가 않아.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그리고 내가 한 모든 일이 다 손해가 되는 거예요. 왜? 나에게 이익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걸 하나님이 하나도 인정 안 해주니까 손해. 고린도전서 3장은 그렇게 명확한 거예요. 대연각 호텔에서 팬티만 입고 나온 그 여자 예로 들어갖고 뭐 그런 부끄러운 구원. 어떻게 그런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열심히 일을 해서 멋진 옷을 입고 가자. 그 옷 입고 가면 쫓겨난다니까요. 그게 혼인잔치의 비유 아닙니까? 아, 이렇게 답답해요, 세상에. 그러니 누가 알아들어요? 설교도 하지 싫어요, 이제는. 그리고 뭐 사람들한테 야, 교회에 꼭 가야 돼. 이런 말도 안 해요, 인제는요. 우리 일가친척들한테도 주변에 있는 아무 교회라도 꼭 가세요. 거기 가서 뭐라도 들으세요. 뭐 들으면 뭐 해요? ㅎ. 그런 말도 안 해요. 그냥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면 당신들이 언젠가 복음 앞으로 나오게 될 거예요. 아니라도 나는 어떻게 거기에다가 내가 도울 능력이 없네요. 가만 놔두는 거예요.
요즘 저의 아버님이 계속 야, 목사가 그렇게 헛소리들을 하는데 이걸 어떻게 내가 거기 가서 앉아 있냐? 아, 싸우다, 싸우다 지쳐갖고 목사님이 설교하면은 아, 우리 아들은 그렇게 얘기 안 하는데 당신 왜 그런 식으로 얘기 하냐고.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계속 그러면서 얘기는 똑같이 변하지도 않고 하면서 저의 아버님 눈치만 살살 보면서 연세가 많으니까 이제. ㅎㅎ. 목사님이 계속 그러니까 아이, 내가 뭐 거기 계속 가서 앉아 있어야 되겠냐? 지난번에 오셔서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집에서 그냥 우리 씨디 가면 그거나 들으세요. 그러고 말아요. 거기 가서 앉아 있으면 뭐 해요?
여러분의 종교행위나 여러분의 선한 삶, 선한 행위는 절대 하나님 앞에 점수로 매겨지지 않아요. 그 속에서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만 배우면 돼요. 잘 배우시고 여러분이 악한 존재로 폭로 될 때는 마음껏 그냥 폭로당해 버리세요. 그리고 거기서 오는 고통을 그냥 당하세요. 왜? 여러분 안에 성령이 있기 때문에 그게 고통스럽거든요. 고통스러워요. 내 맘대로 하면 기쁠 거 같은데 고통스러워요. 고통당하세요. 당하시면서 야, 이런 고통 하나님이 나중에 새 몸 주셔서 이 고통 없애주신다고 하니까 그날을 기다리며 살자, 그리고 그렇게 사시면 되는 거예요. 뭐 그렇게 대단하게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나의 인격을 연마하며 그건 그냥 국민교육헌장에나 나오는 거니까.
신앙은 그런 거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께 여러분의 (?)죄를 부탁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하나님 앞에 무력한 존잽니다.
하나님이 들어서 쓰실 때는 하나님의 백성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놓아 우리를 죽은 흙으로 만들어 버린다할지라도 우린 아무 할 말 없는 존잽니다.
원래 우리의 처음 자리가 죽은 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죽은 흙들이 호흡이 붙어 있다고 해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하늘을 날며 자기를 차 올린 축구선수를,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스스로 이렇게 날아오른 공이라고, 아니,
나는 새라고 우기며 살고 있는 그런 엉터리 같은 죄인들, 자칭 죄인들.
아버지 하나님,
어찌 그들의 삶 속에서 그를 차 올린 하나님이 증거 되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공이 공다우려면
자기를 차 올린 어떤 존재를 증거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처럼
추락을 해야 된다는 걸 잊지 말게 하시고
그 추락이 나에게 올 때에 그때 예수의 은혜가 더욱 더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는 걸 잊지 말게 하시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만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대의 눈과 귀를 열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