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는 노출된 자재와 콘크리트, 과감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건축물로 모더니즘의 시대를 열었다. 시멘트라는 값싼 재료와 극단의 효율성을 강조한 건물들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브루탈리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킨다. 실용적이지만 단조롭고 삭막한 느낌은 미화나 정제를 거치지 않은 인물을 표현하는 이 영화의 질감과 닮아있다. 거기에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자라는 설정은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내면에 존재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육중하고도 단순한 외형은 허영과 거품으로 가득한 밴 뷰런의 이상과도 통한다. ‘브루탈리스트’는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외형만 남아 피폐해진 인간과 규모와 기능만을 가진 텅 비어버린 미국이라는 초상을 그리고 있다. 오래된 건물의 세월과 격어낸 침식을 영화의 느낌으로 담아내기 위해 감독인 브래디 코베는 비스타비젼과 70mm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마치 현대에 클래식을 재현하려한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천재 건축가 라즐로는 헝가리에서 추방된다. 어쩔 수 없이 미국행을 택한다. 사촌의 집에 머물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밴 뷰런이라는 갑부를 만나며 극적으로 변한다.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일생일대의 건축을 부탁한다. 문화센터 건립을 수주받은 라즐로는 자유의 나라에서 예술혼을 불태우지만 명예와 돈이 전부인 밴 뷰런과의 마찰은 그에게 힘든 시간을 보내게 한다. 폭력과 무단으로 이뤄지는 설계 변경을 견디지만 결국 제단에 아무것도 놓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가 되어 갈 뿐이다. 결국 그가 손을 뻗어 닿으려 했던 것은 자신의 꿈이라 믿었던 타인의
꿈일 뿐이고, 전쟁의 상흔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유령같은 이방인이다.
천재성을 알아 봐주고 재능에 물꼬를 터준 밴 뷰런은 어떨까?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창하며 호감으로 라즐로에게 다가 갔지만 실상은 자신의 빛나는 면만 보이려는 속물이었다. 마치 미국의 역사처럼 허영과 시기로 가득찬 그의 인생은 왜곡된 자만심으로 뭉쳐지고 라즐로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친다.
라즐로의 아내 에르제벳 유일하게 어둠을 극복하려 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수용소에서 얻은 골다공증에의해 휠체어 신세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고 남편과 조카를 보살피는 강한 여인이다.
영화는 인물들에 명과 암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빛과 어둠을 나누듯 인터미션을 기준을 극명하게 나뉜다. 1장이 라즐로가 겪은 멸시와 냉대를 버티는 고난기라면 인터미션 후 2장은 에르제벳과 조카인 조피아가 합류하고 본격적인 문화센터 건립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극적인 생존, 낯선 땅에서 성공하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슬픔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건물이 올라 갈수록 수용소의 고통은 선명 해지고, 유럽의 정수와 깊이를 탐내는 미국의 욕망 역시 공허해질 뿐이다. 자신을 둘러싼 고통을 이기고자 선택한 건축조차 환멸과 차별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럴수록 마약과 향락은 그를 수렁으로 밀어넣고, 일 중독 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생존이라는 안도감엔 늘 불안이라는 붙어 다녔고 마음은 거기에 잠식 되었다.
육중하지만 차갑고 심플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유대인 이민자를 닮았다. 아마도 전후 재건 사업으로 시작된 점이 갈곳을 잃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들의 모습과 비슷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혼신을 다한 건축물은 예술의 정수다. 건축가가 남긴 견고함과 아름다움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지닌다. 그것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라즐로와 벤 뷰런의 역학 또한 끝임없이 대조 되며 반복된다. 곤돌라 뱃머리가 앞으로 나아간들 라즐로는 여전히 자신의 건축물에 사로잡혀 있고 자유로 얻은 횃불을 든 여신상은 거꾸로 보인다. 21세기에도 아메리칸드림은 허상으로 보인다.
첫댓글 오랜만에 영화리뷰를 보니
영화관 간 지 넘 오래 되었구나 싶네요. ㅜㅜ
잊지않고 리뷰 올려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려요~~
근데 리뷰보니 먹물영화네~
ㅋㅋㅋㅋㅋㅋ
간만에 소대가리님 리뷰글 보니
너무 좋네요😁
"유럽의 정수와 깊이를 탐내는 미국의 욕망 역시 공허해질 뿐이다" 👍 크~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리뷰만 봐도 어려운 영화인건 틀림없군요 ㅋㅋ
잘 읽었습니다요
어려운 영화아니예요
유대인출신 건축가이민자이야기예요
재밌어요
소갈님 리뷰가 깊이 있어서 그래요
느와르 필름질감의 어둡지만 우아한 분위기
웅장하게 울리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관악기베이스의 메인 테마가
유대인출신 건축가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함께한다
서막에서는 자유여신상의 뒤집힘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에필로그에서는 조카의 연설로 뒤틀린 시오니즘을
냉소한다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
브루탈리스트는 불필요함없이 그저 존재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사물의 본성을 건축적으로 남겼을뿐이다
어딘가에 남긴 코멘트로 댓글을 대신하는 게으름을 너그럽게 넘어가주시길ㅎㅎ
수작이지만 호들갑 떨 영화는 아니어서 조금 실망했어요
오랜만에 후기 읽으니 좋네요...
저도 동감 합니다. 잘 만들었으나, 그 정도까지?? 싶었던.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 저는 그냥 좋았다 이정도 였는데 소대님의 식견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