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의 콘셉트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는 다소 식상하고 지나친 측면이 있다. 한물간 할리우드 여배우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다 실패 후, 폭주하고 엉덩이가 다 보이는 에어로빅복을 입고 흔들어 대는 몸을 전시하는 카메라는 사회의 보편적 요구에 독자적 사고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시대에 동떨어진 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극단적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영화의 성정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여기엔 1980년대를 짐작케 하는 미장센과 음악에서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바디호러의 호황이자, 주연 배우 데미 무어의 성형과 다이어트, 사생활 등을 광적으로 소비하던 시절을 재구성하는 메타드라마다. 이런 화려하고 과시적인 시대적 반영으로 확보한 약간의 시차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난다. ‘더 나은 나’를 목표로 하면서 여성의 숨을 옥죄는 사회적 약탈 구조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별 여성의 자기혐오 양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년의 여배우가 젊음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클리셰적인 스토리에 의학적 상식을 더해 만든 것이 “서브스턴스“다.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가르고 태어난 수 그녀는 완벽 하지만 일주일을 살아가려면 엘리자베스 척수에서 뽑은 활성제를 맞아야 한다. 적절한 회복을 고려해 두 존재는 삶을 격주로 이어 지간다. 이것은 두 사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지침이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하고 초능력을 얻으나 결국 소진하는 결말의 구조는 “파우스트”가 그 원형이다. 이때 인물들은 욕망의 주체로 자신의 행동에 의심이 없다. “ 서브스턴스”는 하나의 육신에 근거하는 두 개의 자아, 젊은 나와 나이 든 나에 해당하는 둘의 공존을 위태롭게 바라본다. 한마디로 ‘나’인 순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라는 타이포 그라피가 주는 경고를 엘리자베스와 수가 받아들인다면 관리할 대상이 더 이상 내 몸 아니라 ‘내 속에 나’가 된다. 그들은 이제 혐오의 주체가 된다.
수는 모체가 지겹고, 엘리자베스는 방만한 수가 밉다. 생명력을 앗아가는 수에 응수해 폭식과 나태함으로 싸우지만 서로 소모적일 뿐이다. 미적 집착이라는 주제 넘어 진짜 괴로움은 완벽주의와 자기혐오가 한집에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집을 개판으로 만들면 또 다른 내가 이를 악물고 치워야 한다. 반복되는전쟁은 미래를 대비 못한 과거의 나를 실망 시키며, 현재의 유효한 기능마저 잃을 노년은 두렵다. “서브스턴스”는 이를 응축하듯 현실적인 묘사로 바꾸어 표현한다. ‘너는 지금 그대로’라며 동경을 표한 고교 동창과 데이트를 앞둔 저녁, 엘리자베스는 거울 앞에서 나이든 자신의 모습에 불완전 하다고 느낀다. 화장을 아무리 덧칠해도 거울 속에는 그토록 미워하는 수와 그를 원망하는 엘리자베스가 있을 뿐이다.
“서브스턴스”는 종국에 세포분열을 거듭해 몬스트로 엘리자수로 변신한 이후 비극적 엔딩을 맞는다. 커다랗고 불균질한 형체에 분비물을 흘리는 모습은 어느 때보다 진솔해 보이고 살아있는 것 같다. 자신을 산화시키고 피와 살점을 뿌리던 곳은 여성 상품화에 정점이었던 쇼비지니스 무대다.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형상은 자신이 혐오한 얼굴들의 총합이었다. 우리 앞에 완전한 자신을 내보인 존재의 출연에 인상을 찌푸리며 괴물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죽일 만큼 매끈하게 관리된 가식적인 미소야 말로 괴물이 아닐까?
그리고 이 욕망을 자극한 실체는 결국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처럼 메마른 음성 뿐이다. 엘리자베스와 수의 꿈이 동일하게 남성적 미디어가 만든 자장 안에 머무르는 것도 아쉽다. 결국 그들은 하비 가 게걸스럽게 발라 먹던 새우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억해라. 당신은 하나 “remember you are one”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댓글 오래전 각인되어있는 데미 무어의 모습과 포스터의 그녀는 많이 다른데
그런 기억조차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쩌면 도움이 될수도 있겠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아쉬운 점을 포착한 점이 좋습니다! 데미 무어의 골든글로브의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틀에 맞춰서 자신을 메이컵해간 그녀가 뭔가 표리부동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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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하비가 발라먹던 새우에 불과했다니 하비라는 인간을 보여주는 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무릎을 탁치고 갑니다. 리뷰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