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분명 미래의 이야기를 그리는 장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색이 짙어질수록 현실과 밀접한 현재의 지점을 연상케 한다. 즉, 알 수 없는 미래를 묘사하는 근간엔 현시대의 고민이 녹아있고 사람들의 상상력은 보이는 세계가 아닌 그 세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런 sf의 욕구가 봉준호를 만나 나온 영화가 “미키 17”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늘 사회적 쟁점의 첨단에 서있었다. 서울에 잠입하는 하층민을 그린 “기생충”, 수직으로 된 계급사회를 수평으로 옮겼을 때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설국열차”, 검거되지 않는 범인을 통해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살인의 추억” 이렇듯 현안을 장르와 함께 그려내는데 특화되었다.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 “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넓은 세계관을 유영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대신 한정된 세계의 독재자와 수동적 노동자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영화 속 미키는 굉장히 불쌍한 청년이다. 사채업자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익스펜더블(소모품)이다. 몸은 물론이고 기억까지 프린팅이 되기에 온갖 극한 업무를 맡게 된다. 그의 죽음은 다시 재생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가치 없고 하찮은 행위로 여겨진다. 죽음마저도 노동의 수단으로 삼는 자본주의가 사람을 바라보는 민낯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식민지 행성 개척이라는 폐쇄된 사회 밑바닥엔 기계보다 저렴한 죽음을 담보로 하는 노동력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과거 독재국가에서 봤음직한 지도자 부부, 개척단 내부에 만연한 차별, 행성 원주민과의 갈등을 훑으며 서사를 쌓아간다. 미키 17과 18이 외형은 같으나 성격은 전혀 다른 상태로 프린트된 것처럼 미키 7은 봉준호라는 프린트를 통해 미키 17로 거듭났다.
사람들은 미키에게 죽음은 어떤 기분이냐고 묻는다. 17번의 죽음을 경험한 미키만이 가진 특권으로 보는 것 같다. 역겹고 무섭지만 으레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 미키에게 죽음이란 그런 거였다. 18번이 재생며 멀티플이 발생하고 크리퍼들에게 구해지며 그의 인식은 달라진다. 여러 번 죽고 다시 프린팅 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존재이며 죽음의 가치가 추락했어도 그것은 숭고하고도 무서운 것임을 알게 된다.
“미키 17”의 아이디어 핵심은 익스펜더블에 있다. 반복 재생되는 인간이라는 설정에 무난한 디스토피아를 펼쳐간다. 상상력의 기반은 암울하나 전개는 희망차고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대고 있다. 쉽게 말해 너무 착하다. 그렇다고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인간 예찬과는 또 다르다. 영웅의 거대 서사를 거부하는 봉준호식 삐딱선이라고 해두자. 하나만 존재해야 하는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에서 17과 18은 모두 납득할 만한 방법을 찾는다. 멀티플이 된 미키들처럼 이 영화 역시 주제와 경로를 깊게 파고들진 않는다. 영화의 본 목적이 캐릭터와 서사의 리얼리티보다 풍자와 우화라는 소동극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거대 서사를 셰익스피어풍의 난장극으로 만들고 그 난장극은 인류의 보편성을 관통한다. 그 통찰은 놀라운 예언이 되고(미 대선 전에 이걸 찍었으니), 그 풍자와 비유는 과연 봉준호의 상상력은 저 넘어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과감성은 잃은 느낌도 있다. 캐릭터들이 너무 직선에 가깝고, 기능적으로 소모된다. 로버트 패티슨을 제외하면 역량을 발휘하는 배우도 없고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장면의 몰입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능성은 거대한 서사와 화려한 미장센이 아닌 연극 같은 소동극으로 꾸며졌을 때 그 확장성이다. sf가 가진 전형성을 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제 디테일한 손끝으로 다듬을 차례다.
첫댓글 흐음~~ 기대에는 살짝 못 미쳤다는거 같은데..
그래도 전 착하고 인간적인 미키가 보구싶네요. 넘 팍팍하고 괴상스런 소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그른가요..?
[알수없는 미래를 묘사하는 근간에는 현시대의 고민이 녹아있고]라고 하신부분이 젤 와닿네요. 그래서 미래가 두려운 이유네요. ㅜㅜ
미키17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상상력의 기반은 암울하나 / 전개는 희망차고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대고 있다. / 는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너무 착하다보다 너무 쉽다라고 하고 싶어요.
익스펜더블의 윤리적 문제를 깊이 슬퍼하지 않듯 그 해결도 너무 쉬웠어요. 적절한 것도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자가 일류고 그러기 위해서 낙관적인 소동극이 최선인가 싶어요. 진지할 때 논리적 귀결은 암울 뿐이잖아요. 기생충의 기우가 아버지 저는... 하며 돈 벌어서 모아서 집을 사서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말 같이.
그래서 실은 정말 슬픕니다. 갈아끼워지는 노동자를 그릴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좋았다 로 봐도 될까요. 대부분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어는 사실은 뭐 다들 기대하고 보고나서도 평가도 좋고 했지만 보러가기전부터 크게 기대는 안했는데 기대를 안했음에도 재미있게 보질 안했? 못했? 는데... 일단 크리쳐물을 진짜 싫어하다보니까 크리퍼가 등장하는걸 본 순간부터 흥미가 확 떨어졌어요.
그래도 참고 끝까지 본 영화평은
"봉준호 이번엔 브래드 피트 돈으로 ㄸ잡았네" 로 하겠습니다.
빵머니?
sf 영화 안 좋아하는데..전 좀 가볍게 리뷰 남긴다면..간만에 잼나게 본 영화에요♡ 17번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이거 보고 설국열차를 봤는데..설국열차는 웃음코드가 없었는데... 미키17 저랑 웃음코드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어요. 한국사람들만 이해?하는 개그코드 봉감독님 최고🤭 가여운것들 전남편 여기서도 아주🙄 캐릭터 잘 잡은거 같아요ㅎ
크리퍼 등장 순간 춘식이 이모티콘생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