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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 대학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자
은성: 아, 정말 좋은 말씀이야.
아버지: 은성아, 뭘 보면서 하는 이야기니?
은성: 오늘 설교 말씀에서 ‘자족’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디모데전서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를 생각 중인데 생각할수록 성경 말씀이 기가 막히네요.
아버지: 성경 말씀이 놀라워서 감격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지. 너도 그 말씀에 감탄하다니 네 믿음이 점점 자라는 것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구나.
은성: 하여간 오늘의 디모데전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6:6-14)
아버지: 은성아, 이 말씀 중에서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무엇을 생각해 보았니?
은성: 여기에 보면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잖아요? 이것은 말로 하기는 쉽지만,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마치 나그네처럼 먹고 입고 잠잘 정도만으로 만족하며 살고, 더 부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서 결국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돈을 사랑하다가 믿음까지 잃게 되는 비극을 피하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기독교인 중에서도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봤어요.
아버지: 네 말처럼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 슬픈 사실이지. 그러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은성: 저도 그것은 생각해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 백성을 남겨 두시고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아버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말씀이 있지.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은성: 아, 그 말씀이 있었네요. 마태복음 6장에서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고 들에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러니까 먹고 마시며 입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가르침을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디모데에게 가르친 말씀도 순종할 수 있겠네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결국 먹고 마시는 것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게 되지.
은성: 그러니까 히브리서를 읽던 기독교인들에게도 다음 약속을 주신 것이겠지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아버지: 이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돈(Gold)을 사랑하고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나님(God)을 사랑하고 의지하느냐에 의해 진정한 기독교인인가 아닌가가 드러난다. 그런데 돈은 우리와 항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은성: 최근에 데이비드 그레고리가 쓴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와 윌리엄 폴 영이라는 분이 쓴 『오두막』을 읽었는데, 이 두 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것을 눈에 보이듯이, 손에 잡히듯이 확실히 이야기해 주고 있더라고요. 교회로 모여서 예배할 때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정원을 가꾸고, 혹은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항상 함께 계시고 지켜주시는 것을 생생하게 배웠어요.
아버지: 아주 좋은 책들을 읽었구나.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마땅하지만, 또 이런 책들도 읽어서 성경을 읽고 배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잘 배우고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은성: 특히 어려움을 당할 때에 왜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혹은 왜 못 본 체하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심판하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말씀을 통하여 결국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게 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인정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것도 어떻게 보면 ‘자족’을 배우게 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아버지: 좋은 생각이다. 너도 잘 알다시피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씀하셨지?
은성: 아버지, 요셉은 그것을 잘 아니까 억울하게 형들에 의해 팔려가고, 종살이를 하고, 감옥에 갇혀 지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았다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버지: 그렇지. 요셉이 형들에게 했던 고백을 들어보면 그것이 분명하지 않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20-21)
은성: 이스라엘을 인도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 6:3-6)
아버지: 우리는 모든 현실에서, 특히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넉넉히 채우심을 인정하며, 영혼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안 사람의 자세이니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전한 다음의 말씀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7-18)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가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오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롭다 하시는 은혜를 깨닫고 영혼의 평안을 누리며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은성: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데도 많은 기독교인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재물을 취하려고 힘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버지: 항상 바른 것을 배우지 않으면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질식시키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알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는 말씀을 명심하여야 한다.
은성: 제 생각에는 ‘자족’을 잘 배우고 사셨던 바울 사도의 말씀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아버지: 그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바울 사도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자족하며 감사하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헬렌 켈러는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에서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 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은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 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것을 즐기고 살지만 그것에 감격하거나 감사를 드리지 않는 배은망덕(?)이 심한 자들이지만 헬렌 켈러는 지극히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을 감탄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을 잘 배워야 할 것이다.
은성: 달력에서 보니까 알렉산더는 자기가 전부라고 알던 세계를 정복한 날 밤에 막사에 돌아와 이제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는 글이 있던데, 헬렌 켈러는 참 다르군요.
아버지: 맞다. 다윗 왕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한 것과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자족을 몰랐던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왕상 21:1-16), 레위 지파 고라는 제사장이 되는 것을 원하고(민 16:8-10), 르우벤 지파 다단은 왕이 되는 것(민 16:13)을 원하며 모세를 대적했다가 땅바닥이 갈라지고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고, 그들과 동조한 250명은 불에 타 죽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은성: 자족하지 못하는 것이 대단히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몰랐네요. 이제부터는 제 주변에 많은 불평부터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날씨가 좋지 않으면 금방 불평하던 태도부터 고치고, 탁구 시합 때에 이기지 못하면 짜증을 내며 화를 내던 것도 고쳐야 하겠어요.
아버지: 우리 생활에서 고쳐 나갈 것들이 참 많지. 키가 작다고 늘 스트레스 받는 것, 얼굴에 점이 몇 개 있다고 짜증내는 것, 남편의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것,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 심지어 어머니가 해 준 식사가 맘에 안 든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불만족을 느끼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서 자신이 남에게 불만족을 느끼도록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기가 쉽다.
은성: 그렇다고 일부러 가난하게 사는 것이 자족하는 것은 아니지요?
아버지: 물론이다. 우리는 성경의 기도를 잘 배우면 좋을 것이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은성: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과 통하는 기도이네요.
아버지: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에서 혹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되었을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웠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은성: 정함이 없는 재물이 아니라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자기의 재산을 드려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는 자가 참으로 좋은 부자로군요.
아버지: 그런 부자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을 아는 자이니 이 세상 재물에만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떠났던 어리석은 부자들(마 19:16-22; 눅 12:13-21)과는 다르다.
은성: 그런데 아버지, 갑자기 ‘거룩한 불만(Holy Discontent)’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이것은 ‘자족’과는 어떻게 다르지요?
아버지: 아주 좋은 생각을 했구나. ‘자족’은 현상 유지를 말하거나 안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다거나 지금 상황에 안일하게 주저앉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참된 부요를 발견한 자에게는 열정이 있고, 헌신이 있다. 그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라는 말씀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온 힘을 다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온전히 이루고자 몸부림을 하는 사람이다.
은성: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더 잘 배우고 섬기는 일에서는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장성하고 온전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 사람은 무엇보다도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면 열정적으로 그 일을 행하겠네요.
아버지: 그렇지. 모세나 바울, 어거스틴이나 루터와 칼빈 등 신앙의 아버지들이 그렇게 살았지 않니?
은성: 적절한 말이 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도박에 빠진 어른들이나 인터넷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 자기에게는 그것이 중요하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몰두하는 것과 통할까요?
아버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경에서 보화나 진주를 발견한 자가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것을 산다고 한 것이 더 좋은 설명이 되지 않을까? 정말 귀중한 것을 발견하면 다른 것은 모두 상대화하고 오직 그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게 되어 있다. 회개한 후의 바울 사도의 삶이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은성: 잘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스펄전의 말씀 묵상에서 ‘자족’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너무 좋아서 그것을 함께 읽어보고 싶네요. 저도 이제 자족 대학의 좋은 학생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1]
오늘의 본문 말씀은 자족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이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잡초는 빨리 자랍니다.” 땅에 가시덤불이 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탐욕을 부리고 불만을 품으며 원망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엉겅퀴는 구태여 심지 않아도 저절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것은 으레 땅에서 나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불평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느새 불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소중한 것들은 반드시 심고 가꿔야 합니다. 밀이 갖고 싶으면 땅을 갈아 밀을 심어야 합니다. 꽃을 원하면 정원이 있어야 하고 정원사의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자족할 줄 아는 것은 천국의 꽃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자족하고 싶으면 우리 안에 자족을 심고 가꿔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오직 새로운 본성만이 그런 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새 본성이 심겨졌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으신 그 은혜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그가 전에는 자족하는 법을 몰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 위대한 진리의 신비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틀림없이 자신이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무너져 내린 적도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것을 배우고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죽을 날이 가까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네로에 의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도 어떻게 해서든 그처럼 자족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바울이 겪었던 결함들을 기꺼이 견디며 그와 함께 차가운 감옥에서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그저 학습(learning)만 한다든가 훈련은 하지 않고 배우기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절로 행사될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획득해야 할 하나의 기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 압니다. 성도 여러분, 원망하는 것이 비록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입을 꼭 다물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자족 대학의 부지런한 생도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