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6 주일 072025 강론창세 18,1-10a; Col 1,24-28; Lk 10,38-42
마르타가 경험한 것은 우리 대부분의 영적 성장 과정의 패턴 또는 모델이다
우리는 성취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을 미화 하는 행동 지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움직이고 뒤흔드는 사람’ 또는 “정말 일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들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으면 “자, 이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저 해야 할 일이나 하라.” 라는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문화는 생각하고 성찰하고 경청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의심쩍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는 무언가를 ‘단순히 학문적 (탁상공론)’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 말의 참 뜻은 소위 말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교수 같은 유형의 사람을 두고 ‘지성인 혹은 인텔리 Egghead’라고 말하는데, - 이런 경우의 그런 표현은 결코 존경이나 칭찬의 표현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듯 우리는 행동과 성취 지향적인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뒤흔드는 사람을 나무라고, 조용히 앉아서 듣고 묵상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오늘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서 알아들어야 할까요?
우선 이야기를 앞뒤에 흐르는 문맥으로 연결 지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지난 주일에 들었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그 이야기의 요점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도록 해라,” 즉 “너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야기를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 다음에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아마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라는 그 충고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심과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묵상하는 사람을 칭찬하시고 행동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수많은 복음 말씀의 이야기에는 각 이야기 마다 하나의 근본적인 깊이가 있는데, 바로 오늘의 이야기가 그러한 깊이에 대한 하나의 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사색적인 태도와 행동적인 태도를 비교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의 해설자와 설교자들은 마리아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이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마르타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아주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르타가 경험한 것은 사실 우리 대부분의 영적 성장 과정의 패턴이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길은 분명 더 나은 방법이지만 마리아는 사색 속에서 주님 앞에 머물러야 한다는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 즉 묵상을 하면서 주님 앞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마리아의 역할이 “더 나은” 부분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마르타의 방식도 좋다는 방식임을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타를 마리아와 함께 자신의 발 앞에 앉아 있으면서 모두를 배고프게 내버려두라고 초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마르타는 일상 생활에서 활동하는 우리 대부분에게 모법이 되며, 어쩌면 어떤 행태로든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하는 봉사활동의 모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내면에는 한 사람의 마르티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마르타를 쉽게 인식할 수가 있으며, 마르타가 느끼는 느낌과 쉽게 공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마르타가 주님의 부정적인 응답을 듣고 부엌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 부엌에는 어두움이 잔뜩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마르타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부엌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부엌에서의 수고에 대한 언급을 듣는 대신에 비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두고 생각을 해본다면, 마르타의 최선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둠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낯선 경험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 드리자면, 교회에 서든 다른 어떤 곳에 서든 그 어떤 방식으로 든 가치 있는 프로젝트에 열심히 몸을 바쳐서 봉사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거부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때때로 마음이 좁아 터지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이거나 우리 눈에는 명확하게 잘 보이는 필요성에 대하여 맹목적인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비판이나 거부는 우리의 삶에 어두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방해하는 좋은 일을 생각하며 울컥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일에 간섭까지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께로 더 가까이 끌어당기시기 위하여 그러한 좌절과 거부가 우리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다는 가정을 해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실제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일이 잘 풀릴 때 주님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현실적이 되시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으실 수 있고, 일종의 ‘실패’나 거부가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깝게 이끌어 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실패를 통한 승리 중 하나라는 것을 반복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실패 중에, 혹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거부 중에 발견되는 것은 진정한 영신적인 빈곤으로의 초대입니다.
즉 우리가 바라는 바를 내려놓은 다음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에 대한 더 깊은 개방감에 대한 초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의 그 날, 마르타가 주방에서 배워야 했던 교훈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고, 그러한 교훈은 우리도 배워 익혀야 할 그런 교훈입니다.
첫댓글 찬미예수님!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셔요~♡
말씀 고맙습니다
신부님
폭염에 건강하세요♡
신부님
늘 좋은 말씀감사합니다.
자기가 할 일만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껏을 칭찬 듣고 싶은 맘 때문에~^^
오히려 화근이 되었습니다.
각자 알아서 해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제일 예뻐유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번 폭우에 피해는 없으신자요~??
감사합니다
공감과 이해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아멘.아멘! 강론 말씀
묵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신부님건강 하십시요
신부님,
항상 이해하긴 쉽지않은
말씀 오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부님 한국에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문경엠마오 기쁨 피정의 집 에는 아무 손상이
없는지요??
신부님 영육간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비 피해들은 없으신지요??^^
어젯밤 잠속에
들려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노래처럼
자장가 처럼 행복
했는디 한편
비 피해로 아픔이 있는
이웃을 생각하니
감정의 사치 같아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축복 가득한주말
이어가세요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