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스 스탈링은 FBI 수습요원이다. 홀로 훈련을 하며 자신을 다잡지만 주위의 시선은 핏덩이 여자일 뿐이다. 카메라는 초반부터 차별받는 점을 노골적으로 부각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덩치 큰 사내들 사이에 홀로 선 모습, 사건 현장을 설명하다 여자라서 소외되고 남성 보안관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을 때 클로즈업되는 남자들의 시선은 그녀를 소수이자, 연약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젊은 여성인 그녀는 성적 대상화가 되기도 한다. 홀로인 클라리스와 남성 집단이라는 대조를 통해 여성이 가지는 핸디캡을 깔고 영화는 시작된다.
클라리스는 상사 잭 크로포드의 명령으로 식인 살인마이자, 천재 정신 분석 학자인 한니발 렉터 박사를 만난다.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버팔로 빌의 심리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던전 같은 길을 한참 따라가 마침내 렉터와 마주한 클라리스 침착함을 유지하고 그에게 범인의 심리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알아내려 하지만 오히려 렉터에게 말려들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여기서 카메라는 오버 더 숄더로 번갈아 가며 두 사람을 담고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담아낸다.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이 시퀀스는 단서를 얻기 위해 용을 만나는 클라리스의 여정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는 시작점 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버팔로 빌로 불리는 살인마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성을 납치해 굶기고 살가죽이 늘어지면 잔인하게 살해 후 도려내 옷을 만든다. 여성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여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광인이다. 성전환 수술에 실패하고 여성이 되지 못한 한을 그렇게 푸는 것이다. 성은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이고 성을 바꾸려는 욕망은 일종에 신에 대한 도전이다. 신의 진정한 권능은 창조와 파괴에 있다. 그는 여자들을 죽임으로써 파괴하고 그 가죽으로 자신은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또한, 그는 나방을 애지중지 키우는데 번데기에서 탈피해 나방이 되는 과정에 매료 되어있다. 거기에 죽은 여성의 목구멍에 애벌레를 넣음으로 부활이라는 전능을 행사하려 했다.
연쇄살인마와 신이라는 이상한 접점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중 하나다. 먼저, 클라리스가 렉터에게 털어놓는 속내 중에 악몽 이야기를 한다. 10살 무렵 부모님을 여의고 목장에서 살았는데 친척인 목장주가 어린양을 해치는 모습을 본다. 끔찍한 광경에 놀라 밤에 몰래 양들을 풀어주고 새끼 양을 안고 도망 가지만 붙잡히고 양은 도축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양의 비명 소리를 악몽으로 안고 산다고 고백한다. 영화에서 신은 양을 도살한다. 양은 곧 여성이고 클라리스가 듣는 양의 비명은 피해자들의 외침이다.
여기서 이상한 지점은 모순된 버팔로 빌의 살인 행위다. 여성이 되고 싶은데 여성을 죽인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그가 사이코패스라는 지점이다. 그에게 여성이란 목적이지만 동시에 수단인 것이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도려내 사용하는 방식과 그에 몸에 새겨진 갈비뼈 문신에서 알 수 있듯 신 혹은 살인마는 남성이 여성을 도구화하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호응한다. 이는 영화의 전체와도 맥을 같이 하는 걸로 보인다. 목적을 알려주지 않고 렉터를 만나게 하는 크로포드, 우수한 성적임에도 똑똑한 동물로 취급하는 남성들, 정액을 투척하는 믹스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시선을 공유한다. 클라리스의 악몽이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성은 비명을 지르고 문을 열어줘도 탈출 못하는 양인 것이다.
클라리스가 만난 렉터 박사는 수많은 방어 기제를 뚫고 만난 무의식 속 자아였다. 그가 힌트로 줬던 ‘your self’ 창고의 의미를 후반에 가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 창고는 렉터의 리비도의 저장소였고,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크로포드는 초자아였다. 셋은 각각의 욕망으로 움직이나 하나의 목표를 쫓는 인격체인 샘이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클라리스와 크로포드는 각자의 위치에서 현장을 덮친다. 이때 교차편집으로 누가 근접한 건가를 긴장감 넘치게 보여준다. 자아와 초자아가 분리된 상태에서 미지의 존재와 접촉하는 불안이 느껴진다. 이때 버팔로 빌의 야간 투시경 시점숏은 불안에 휩싸인 클라리스를 가지고 노는 듯 하지만 결국 제압당한다. 그 장면은 그녀를 속박하고 짓눌러 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범인을 잡고 FBI의 인정을 받은 클라리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버팔로 빌이 죽고 나방 날아가는 그림이 클로즈업 되는 건 그녀가 드디어 성장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에 렉터는 전화를 걸어 묻는다. 양의 비명은 멈추었냐고, 버팔로 빌이 죽었으니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클라리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양은 새로운 목자에게 인도되었을 뿐이니까. 카메라는 달리 아웃을 통해 우리가 사건을 잊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첫댓글 일뜽^^ 리뷰잘읽고갑니다😆
언제 돌아오십니까?
@D Kim 늘 가까이 있습니다.
항상 챙겨주십시요😆
오래전 책으로 읽고 온갖 상상이 동원되어 그 야간 투시경 부분에선 심장이 쫄아든듯한 공포를 느꼈어요.
그리곤 밤새 악몽에 경기를 하며 깼던 그 밤이 기억나네요.
ㅜㅜ
한참 후 영화를 보고선
역시 이미지로 담기엔 인간의 상상력이 더 크단걸 알았네요.
오래전 영화도 꺼내주시는 소대가리 걸작선 같은 리뷰
잘 읽었습니당~~~~
재개봉 했습니다.
여주와 렉터의 교감이 보여서 이상하고 불쾌해 보였는데 클라리스를 일종의 해방을 준 존재군요. 그러나 그 해방을 주는 존재가 다시 남성임을 생각하면 유쾌하진 않습니다. 요즘 읽는 '괴물들'의 맥락과도 닿아있네요. 인간의 지식과 문화가 주로 남성에 의해 축적되어 왔고 그 자장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그 자장에 대한 매혹 사이에 흔들리는 기분이 혼란스럽습니다.
역시 소대님글은 마스터피스야 ㅋ
마지막이 그런 의미였군요. 이런 장르에 빠지게 만든 시초의 영화였는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