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카메라는 피사체를 담는 그릇을 넘어 등장인물과 같이 자아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려 한다. 연출자의 의도가 배우의 연기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닌 카메라의 무빙이 자기 의지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이하 (그 자연)에서 그 사실을 명확히 한다. <강원도의 힘>에서 처럼 고정된 카메라를 사용하지만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는 인물을 애써 쫓지 않고 한 박자 느린 움직임으로 그들을 놓친다. 마치 심리적 제약에 걸린 동화의 어딘가 불편한 느낌과 같다. 주춤거리는 망설임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포착한 것은 무엇일까? <물안에서>의 흐릿하고 불투명한 시선은 영화를 만드는 젊은 불안이 그려지고, <탑>에서 그 속에 갇혀버린 병수의 혼돈도 담고 있다. <그 자연>은 거기에 우연이라는 요소를 넣어 현실 직시를 못하는 예술과 표면에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는 한계를 오롯이 관찰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우연으로부터 파생된 사건의 연속이다. 뜻하지 않게 여자 친구인 준희의 집에 방문하는 젊은 시인 동화는 그녀의 아버지와 조우를 한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낯선 만남이 있고 차 한잔이 막걸리로 다시 점심식사로 이어지다 결국 백숙에 술을 먹는 저녁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산세가 드리워진 주택, 어딘가 껄끄러운 언니와 그녀의 가족들을 겪는다. 우연으로 연결된 인과 속에 갇힌 남자의 이상한 정체성 찾기를 그리고 있다.
우연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발생하지만 인물을 그 안에 던져 놓은 순간 진실을 요하는 창구가 된다. 유명 변호사 아버지라는 배경이 있으나 낡은 중고차를 타고 결혼식장 비디오 촬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동화는 시를 쓴다. 겉보기에 소탈하고 여유로워 보이던 동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쓰는 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예술가임이 점차 드러난다. 동화는 이름처럼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준희의 언니 능희에 의해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함께 찾은 절에서도 미학적 의견 차이를 보이고 시작(詩作)을 하려 메모지를 펼치나 항상 불발에 그친다. 거기에 능희는 동화에게 끊임없이 아버지 배경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남자가 꿈꾸고 추구하는 이상이 허세고 위선임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인물은 능희뿐인 것이다.
<도망친 여자>에서 감희는 자신의 삶에서 패턴을 바꿔 새로운 공간에서 주체적인 존재가 되지만 동화는 좁은 공간에서 우연이라는 덫에 걸려 빙빙 맴돈다. 카메라 역시 고정된 상태로 특정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심리적 불안을 그대로 담아낸다. 준희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시야에 닿는 것을 볼뿐이다. 동화의 수염이나 차에 대한 호기심이 전부다. 자신도 시를 쓴다는 준희의 엄마는 동화의 짧게 읊조린 시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결국 술자리에서 감정은 격해지고 박약한 재능들은 울분만 남긴다.
시라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동화의 처지는 <그 자연>의 공간적 구성과도 맞닿아 있다. 준희의 집은 크다. 그 큰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와 산의 풍경이 좀처럼 맞지 않다. 집의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미궁을 헤매는 동화는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그 자연> 대체로 편안하고 긴장감 없는 영화다. 복잡한 사건 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풍요로운 자연과 거대한 우연에 떨궈진 인간을 한없이 초라하고 옹졸하게 만든다. 술자리에서 한바탕 소리를 지른 동화는 밤에 홀로 깨어 산책을 한다. 조명을 비춰 꽃을 관찰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결국 허무하게 담배만 태운다. 동 틀 무렵 준희와 작별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그 집을 나서지만 얼마 안 가 차가 고장이 난다.
우리는 항상 예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뭔가 거창한 기대를 발견하려 한다.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있을까? 하성국 배우는 홍상수 영화 속에서 예술의 자장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미완은 즐겁지만 마음은 저릿한 존재로 남는다. <그 자연>은 이상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는 관객에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 주인공의 궁색함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궁색함을 짖궂게 끄집어내어 관객도 자신의 자조스러운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데 천재인 작가같아요. 카메라 워킹 등을 잘 생각안하고 보는데 조금 늦게 따라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만 보지 그것이 감독의 의도로 짜여진 시선임을 잘 잊는데 항상 짚어주시는 덕에 더 잘 보게 됩니다. 리뷰 감사해요. 홍상수도 집안이 좋다죠. 개인사를 연상시키면서도 별개의 이야기를 길어내는 홍상수씨는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첫댓글 홍상수 감독도 대단한 분 같아요. 본인의 색을 끊임없는 변주로 펼쳐 그려내는 열정이 존경스럽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 주인공의 궁색함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궁색함을 짖궂게 끄집어내어 관객도 자신의 자조스러운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데 천재인 작가같아요.
카메라 워킹 등을 잘 생각안하고 보는데 조금 늦게 따라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만 보지 그것이 감독의 의도로 짜여진 시선임을 잘 잊는데 항상 짚어주시는 덕에 더 잘 보게 됩니다. 리뷰 감사해요.
홍상수도 집안이 좋다죠. 개인사를 연상시키면서도 별개의 이야기를 길어내는 홍상수씨는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더이상 홍상수 영화는 안보고 싶은데도 소대가리님 글 읽어내려오면서는 다시 궁금해집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홍상수감독님 영화 한번도 안봤는데..소대가리님 리뷰보니 진짜 보고싶네요.
그때맞고지금은틀리다. 이거 지금 상영중인데..
애무시네마😅 에무시네마 여기서 상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