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본래 강령술에 그 기원을 둔다. 제를 지내던 제주는 보조하는 이들에게 주문해 나무통에 가죽을 씌워 두드리고, 줄을 엮어 울림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 위에 사람의 목소리를 더해 영혼과 소통하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다가서려 했다. 시간이 흘러 무속의 힘이 인간에게 넘어가면서 음악 역시 그 형태를 달리 한다. 귀족과 서민의 것으로 나눠지며 권력의 상징이자 동시에 민중의 애환을 대변하는 길을 간다. 영혼을 부르는 소리에서 계층과 집단의 위상 혹은 처지를 노래한다. 서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무역으로 아메리카에 상륙하고 음악은 새로운 변모를 한다. 외면의 고통은 울림통이 되어 그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위로로 탄생한다. ‘블루스’는 그들에게 한 맺힌 울부짖음이자 지구 반대편 자신들의 뿌리에 들리도록 외치는 아우성이었다.
남부 흑인 노동자들의 피로와 한탄 미래에 대한 열망 을 담은 블루스는 라이언 쿠글러의 영감에 원천이 되었다. <블랙팬서>, <크리드> 같은 작품을 통해 영웅적인 면모의 흑인과 극복의 역사를 담아 온 그는 <씨너스: 죄인들>을 통해 흑인의 정체성을 넘어 미국이라는 욕망이 가진 서글픈 소리를 예술적으로 담았다. 영화는 금주법과 짐 크로우법이 행 휑하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미시시피 델타로 돌아온 쌍둥이 스모크와 스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참전 용사이자, 시카고 갱이었던 그들은 고향인 미시시피 델타로 돌아온다. 갈 때까지 가 본 그들은 맞아도 아는 놈들에게 맞겠다는 심정으로 돌아온 소회를 밝힌다.
형제는 백인 호크우드에게 건물을 사고 클럽을 연다.‘주크 포인트’ 흑인을 위한 커뮤니티와 파티를 제공하는 곳을 열기 위해 중국인 상점으로 가서 그레이스와 보 부부에게 식료품과 간판을 맡기고 스모크의 전 부인이자 부두교 마술사인 애니에게 카운터를 부탁한다. 가장 중요한 음악은 사촌 동생 새미와 실력자 슬림을 섭외한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갱들에게서 훔친 이탈리아 와인과 아일랜드 맥주를 팔 계획을 한다.
전반부는 돌아온 탕자의 신고식이다.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있던 그들은 두려움에 대상이다. 자신의 트럭을 털려는 이들이 과거의 친구 일지언정 망설이지 않고 총을 쏜다. 그러곤 치료비를 지불해 주지만 용서는 없다. 스택과 스모크는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만 누구든 자신들의 것을 건드리면 참지 않는다. 전쟁과 갱의 세계에서, 백인의 틈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생존 방식이다.
한편, 석양을 등지고 한 남자가 불안한 걸음으로 외딴집에 문을 두드린다. 인디언들에게 쫓기고 있다며 구해줄 것을 요청한 남자는 레믹, 문을 열고 총을 겨눈 채 꺼지라는 부부의 집 안에는 흰 두건과 옷이 있는 것으로 봐선 인종차별주의자 단체인 KKK단으로 보인다. 금을 내밀고 간신히 들어간 그는 몸을 숨기고 뒤에 나타난 인디언들은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기고 떠나지만, 레믹의 정체는 뱀파이어였고 부부는 그에게 물려 동료가 된다.
밤이 무르익고 파티는 흥겨움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법의 순간을 맞이한다. 새미의 블루스 음악이 과거와 미래,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르며 단순한 음악이 아닌 문화의 전승 자체를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음악에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레믹의 무리다. 뱀파이어 레믹은 벤조와 바이올린으로 아일랜드 민요를 연주하며 파티에 끼워 줄 것을 요구한다. 거절당한 그들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물어 자기편으로 만들며 주크 포인트를 공포로 몰아간다.
뱀파이어 레믹은 아일랜드 이민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과거의 침략자들에 의해 성경 구절을 강제로 주입받고 차별을 당하던 피해자였을 것이다.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어 혐오와 차별의 역사를 이어간다. 뱀파이어는 KKK단과 손잡고 흑인을 죽이려 하며, 그들은 영혼인 블루스마저 취하려 하며 흑인들의 정신 말살과 헤게모니를 가져가려 한다.
여기서 제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씨너스(sinner)’는 말 그대로 죄인들을 의미한다. 사실 주크 포인트에 모인 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죄를 범한 죄인들이다. 스택과 스모커는 1차 대전에 참전하고 갱 생활을 거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같고, 클럽 안은 배우자가 있는 남녀가 서로를 탐한다. 카드를 치다가 수가 틀리니 폭력을 쓴다. 그 모든 것을 그저 방관하는 이들까지 죄 없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맞닥들인 이들은 아일랜드 민요를 노래하고 KKK단과 손 잡은 뱀파이어 무리들이다. 그야말로 죄인대 죄인의 결투다. 그들이 차지하려는 블루스는 이민자인 그들에게 음악 장르 그 이상 고통, 저항, 희망, 정체성을 담은 모든 것이자, 목화밭의 눈물을 담은 노동가다.
라이언 쿠글러는 단순히 흑인의 애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죄가 없는 이들은 인디언으로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뿐이다. 미국은 죄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블루스라는 예술은 죄의식의 발현이고 영혼의 위로다. 새미의 데뷔무대는 목사인 아버지를 향한 애증을 담은 노래다. 클럽은 새미의 연주와 노래에 열광하고 마침내 하나 되고 시공이 열리는 환상을 보여준다. 디제잉과 브레이크 댄스, 경극에 쿵후와 더불어 원주민의 가면춤까지 블루스 안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한계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연출은 영화가 추구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레믹과 일당들은 뱀파이어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반드시 초대에 의해서만 입장 가능하며 마늘과 은에 취약하다. 그들은 생각을 공유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인다. 뱀파이어의 기원은 드라큘라다. 그들은 동유럽의 이민자가 서유럽으로 넘어오는 것 두려워해 탄생한 설화다. 레믹은 차별받던 아일랜드인이었고 대립하는 흑인들 역시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지니 그들의 싸움은 단순히 헤게모니의 장악을 넘어 현재의 트럼프 정권을 향한 우려까지도 담고 있다.
하룻밤의 전투 끝에 살아남은 스모크와 새미는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스모크는 부서진 기타를 손에 쥔 새미를 보낸다. 너만은 살기를 바란다는 스모크의 마지막 바람은 원죄에 대한 대속처럼 느껴진다. 이제 KKK단원이 정체인 호크 우드의 습격에 스모크는 전쟁 때 사용하던 무기로 호크 우드일당과 전투 후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는 이름처럼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문 순간 환상을 본다 어제 죽었던 처와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이가 보인다. 아내는 그에게 담배를 끄면 아이를 안아보게 해주겠다 한다. 스모크는 담배를 버린다. 자신을 버린 후 그는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
시간은 흘러 1992년 이제는 늙고 노쇠한 새미는 블루스의 거장이 되었다. 완고하던 아버지는 그에게 사탄을 불러들이는 음악 말고 영가를 부르도록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한 그의 블루스는 그의 인생 전체를 지배했다. 끔찍했던 순간들이 매일 꿈으로 나타나지만 그는 살아냈다. 그리고 그날 살아남은 뱀파이어로 변한 스택과 메리와 조우하지만 두렵지 않다. 삶의 끝에서 영생을 원하냐는 스택의 질문에 그는 묵직한 연주로 답을 대신한다.
<씨너스: 죄인들>은 라이언 쿠글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피해자였던 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 역사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위로하는 가. 현의 떨림이 당신의 리듬을 만든다. 삶은 결국 블루스다.
첫댓글 제가 본 리뷰가 다 다른 논조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특이한 점 같습니다. 소대가리님의 생각도 또 다르게 읽힙니다. 모두가 죄인이지만 그들도 모두 혐오의 대상자였다는 점과 유일하게 죄 없는 아메리칸 인디언만이 정체를 알고 피했다는 의견에 무릎을 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곤 이런 내용일줄 전혀 짐작도 못했어요. 아주 흥미로운 스토리 와 멋진 분석,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를 좀 전에 보고 왔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겁먹어서 볼 수 있을 까 싶었는데, 생각보단 무섭지 않아서 볼 만 했네요. ㅎㅎ
레믹이 새미의 기도문을 따라 읇으며 하던 말의 의미를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차별받던 그들이 찾은 자유..
뱀파이어야 말로 자유라고 형을 종용하던 스택도 세상을 누리고 잘 사는 듯 하지만,
마지막 새미의 질문에 사건 전 잠깐의 순간이 자유로웠다는 말이 씁쓸하게 느껴졌네요.
잘 읽었습니다 :)
나는 못볼영화라 생각했었는데, 소대님글을 읽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깊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고마운 소대님.
충분히 공감가는 리뷰네요
새미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음악으로 인한 성장과 구원의 완성으로 볼수있고
제목의 지칭으로 본다면 악에 노출된 인간 자체일수
도 있고
뱀파이어를 중심으로 본다면 거대한 공동체일수도
있겠지요
근데 영화는 교묘하게 이입을 방해하더군요
그 의도가 저는...음...(썩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 음악상 예측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