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의 「얼음장판」 평론
이 시는 겨울을 나고 떠나는 청둥오리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 그리고 짧은 만남이 남기는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일상적인 풍경에서 출발하지만, 시선은 저수지에서 시베리아로, 다시 한반도 동남쪽 들녘을 살아가는 시적 화자 자신에게로 확장된다. 소박한 관찰 속에 생명의 이동과 인간의 존재를 겹쳐 놓은 점이 돋보인다.
1. ‘얼음장판’이라는 기발한 비유
겨우내 저수지에 세 들었던 청둥오리들이 날 풀리자 얼음 장판 걷어가지고 떠났습니다
이 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이자 핵심 이미지인 ‘얼음장판’이다.
청둥오리들이 겨울 동안 저수지의 얼음 위에서 지내다가 날이 풀리자 떠나는 모습을,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 이삿짐을 챙겨 나가듯 표현했다. 저수지는 셋집이 되고, 얼음은 장판이 되며, 철새들의 이동은 이삿날의 풍경으로 바뀐다. 자연의 현상에 인간의 생활 경험을 포개어 놓은 것이다.
특히 ‘세 들었던’과 ‘걷어가지고’라는 말은 구어적이고 친근하다. 철새의 이동이라는 생태적 현상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일상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저수지를 잠시 빌려 쓰고 떠나는 철새들의 처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다만 ‘얼음 장판’은 실제로 걷어 갈 수 없는 얼음을 이삿짐처럼 표현한 데서 생기는 의인화의 재미에 의존한다. 이 비유가 신선하게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재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철새들이 계절에 따라 머물다 떠나는 생태적 특성과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2. 인간과 철새의 서로 다른 생리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난 나와는 먼 생리의 시베리아 어디쯤 태생일 그들과는 겨울 석 달 날마다 먼발치로 지나친 게 인연의 전부인데
둘째 연에서는 시적 화자와 청둥오리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화자는 전기장판의 온기에 의지해 겨울을 나지만, 청둥오리들은 계절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생활과 철새의 생태가 ‘전기장판’과 ‘시베리아’라는 서로 다른 이미지로 대비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화자가 철새들을 가까이서 관찰하거나 교감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겨울 석 달 동안 매일 보았지만, 그 인연은 ‘먼발치로 지나친 게’ 전부다. 친밀함을 과장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자연을 대하는 화자의 진솔함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대목에는 한 가지 역설이 있다. 인연이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짧고 희미한 관계인데, 철새들이 떠난 뒤에는 그들의 행방을 상상하게 된다. 만남의 깊이가 반드시 함께한 시간이나 교감의 강도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무심히 지나친 풍경도 되돌아보면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다만 ‘먼 생리’는 독특한 표현인 동시에 다소 추상적이다. 인간과 철새의 생물학적 차이를 뜻하는 것인지, 생활 방식과 존재 조건의 차이를 뜻하는 것인지 여러 방향으로 읽힌다. 이 모호함은 시적 여백이 될 수도 있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의미가 선명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3. 저수지에서 시베리아로,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로
한반도 동남쪽 들녘의 조그만 저수지와 함께 아침마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촌부의 기억도 지금쯤 어느 눈 덮인 산맥을 넘고 있을까요
이 시의 문학적 성취는 마지막 연에서 뚜렷해진다.
앞부분에서는 철새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화자가 마지막에 이르러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한반도 동남쪽 들녘’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는 시베리아라는 먼 공간과 대비되며, ‘아침마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촌부’라는 표현은 화자를 일상의 한가운데 놓는다.
그런데 화자는 자신의 기억이 철새들처럼 눈 덮인 산맥을 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한다. 실제로 이동하는 것은 철새들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화자의 마음도 그들의 이동을 따라간다. 저수지에서 시작된 시선이 먼 타향으로 뻗어 나가고, 마침내 화자 자신의 내면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의 ‘넘고 있을까요’라는 의문형이 좋다. 단정하거나 교훈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에게 묻는 형식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철새들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질문이면서,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장소가 어디까지 기억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촌부’라는 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소박한 표현으로 읽히지만, 동시에 화자의 존재를 다소 전형적인 인물상으로 만들 위험도 있다. 다만 이 시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저수지를 지나던 구체적인 일상과 결합해, 자연을 관찰하는 생활인의 모습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형상화한다.
4. 이 시의 장점과 보완할 점
이 작품의 장점은 무엇보다 소재를 바라보는 시인의 독창적인 시선에 있다. 청둥오리의 계절 이동은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이지만, 그것을 ‘얼음 장판을 걷어 가는 세입자’의 모습으로 바꾼 발상이 참신하다. 또한 전기장판과 얼음장판의 대비는 인간과 철새의 생활 조건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시의 전개도 자연스럽다. 첫 연의 재치 있는 관찰에서 시작해, 둘째 연에서 인간과 철새의 차이를 생각하고, 마지막 연에서 자신의 기억과 존재를 돌아본다. 외부 풍경이 내면의 사유로 전환되는 구조가 안정적이다. 특히 마지막 연은 철새의 이동을 단순한 자연 현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기억의 이동이라는 내면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보완할 점은 둘째 연의 ‘먼 생리’와 마지막 연의 ‘기억도 … 산맥을 넘고 있을까요’ 사이의 연결을 조금 더 긴밀하게 다듬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의미의 흐름은 이해되지만, 철새의 생태와 화자의 기억이 어떤 정서적 고리로 이어지는지 독자가 스스로 보충해야 한다. 물론 이를 설명하는 문장을 덧붙이기보다는, 구체적인 감각이나 이미지 하나를 보태는 편이 시의 간결함을 살리는 데 유리할 것이다.
또한 ‘시베리아 어디쯤 태생일 그들’은 철새의 출신지를 상상하는 표현인데, 청둥오리의 실제 번식지는 개체와 집단에 따라 다양하므로 시적 상상과 생태적 사실을 엄격하게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다. 시의 정서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실성을 중시한다면 ‘시베리아 어디쯤에서 날아왔을 그들’처럼 출생지에 대한 단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방법도 있다.
5. 종합 평가
「얼음장판」은 거창한 주제나 강렬한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매일 지나치던 저수지와 그곳에서 겨울을 나던 청둥오리들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맺는 희미하지만 의미 있는 관계를 포착한다.
이 시에서 청둥오리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철새이면서, 인간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쳐 온 시간의 표상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들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는 그들의 행방을 상상한다. 그 상상 속에서 자신의 기억마저 눈 덮인 산맥을 넘는다.
이 작품의 핵심은 철새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철새의 떠남을 계기로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기억의 행방을 돌아본다는 데 있다. 자연을 관찰하던 시선이 어느새 자기 삶을 향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소박한 자연시인 동시에 잔잔한 성찰의 시다.
‘얼음장판’이라는 친근하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시작해 ‘눈 덮인 산맥’이라는 아득한 이미지로 끝나는 구성도 인상적이다. 가까운 저수지와 먼 시베리아, 전기장판과 얼음장판, 실제의 이동과 기억의 이동이 서로 호응하면서 시에 공간적·정서적 깊이를 부여한다.
결국 이 시가 조용히 일깨우는 것은 이런 사실일 것이다. 매일 스쳐 지나간 풍경도 어느 날 문득 우리 기억의 일부가 되며, 별다른 인연이 아니었던 존재도 떠난 뒤에는 마음속에서 먼 길을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