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많은 연애들을 해왔다. 나는 연애가 사랑을 경험하는 데에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삼무곡에 들어오기 전에도 여러 번의 연애를 했지만, 진정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첫사랑이 이루어졌다. 유치원 때 좋아했던 친구다. 초등학교 때 다른 학교로 가서 멀어졌다가 중학교 때 다시 만났다.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였다. 야한 이야기를 하다 그 친구가 나의 몸이 궁금하다고 했다. 사진을 보내주었고 곧 후회에 빠지게 되었다. 그만두려 했지만, 그 친구는 멈출 생각이 없었고 그 사진으로 나를 협박했다. 원하는 대로 안 해주면 사진 뿌려버린다고... 그래서 불려 가기도 했고 계속 협박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원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랑은 무참히 짓밟혔다. 내가 그리는 사랑을 갈망했다. 그 뒤로 여러 번의 연애를 했지만 어떤 사랑이든 채워지지 않았다.
삼무곡에 들어와서 첫 번째 연애를 했다. A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채우진 못했고 몇 달을 사귀다가 헤어지게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다른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친구를 잃기 싫었고 다른 사람(B)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처음은 거짓이었지만 B에게 조금씩 말을 걸고 지내다 보니 진심으로 B를 좋아하게 되었다. B는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이 너무 좋았다.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두 번째 연애가 시작되었다. 신기하게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매일 봐도 질리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계속 같이 있고 싶었고 떨어지기 싫었다. 하지만 B는 성인식 반이었다. 결국 성인식 날은 왔고 삼무곡을 나가게 되었다. 나는 상대방이 옆에 있지 않으면 마음이 식고 눈이 다른 데로 돌아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몇 달은 잘 지냈다. 방학이면 서로의 집에 놀러 갔고 학기가 시작하면 하루 종일 문자와 전화를 하였다. 하지만 나는 보이는 사랑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두 번째 연애가 끝이 났다.
또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C를 좋아하게 되었다. 금방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일과가 끝나고 만나면서 잘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C는 나를 좋아하기 전에 좋아하던 사람을 다시 좋아하게 된듯 했다. 하지만 C는 솔직하지 않았다. 나를 계속해서 피하기만 했다. 몇 번의 이야기 끝에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달랐다. 나는 그저 내 옆에서 나를 사랑해 주길 원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자, 내 사랑은 집착이 되어있었다. C가 좋아하던 친구와는 서먹해졌고 그 애 잘못이 아닌 걸 알아도 그 애가 미웠다. 그렇게 C와는 정리되지 않은 채 끝났다.
그러다 D를 좋아하게 되었고 금방 가까워졌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D가 나를 부르더니 말을 했다.
“효연아. 그만하자. 계속 너 몸만 보여. 내 문제여서 그래. 미안해.”
그렇게 D와 끝이 났다.
B와 헤어지고 나서 제대로 무언가 시작하기 전부터 끝나는 일들이 반복되자 내 마음에는 미움만 찼다. 싸운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갑작스레 그런 일들이 생기니 처음에는 대상들을 미워하다가도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자존감은 내려갔고 내가 매력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싹 튼 생각은 무슨 일을 해봐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로 사랑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어봤다. 나는 예뻐 보이지 않았다. 자존감은 올라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사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나의 겉모습과 상관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라는 메시지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흔들렸다.
그 후로 E를 만났다. E와도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별 보러 갈래?”
별 정원에 가서 앉았다. E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실 나 다른 사람들 눈치가 많이 보여. 그리고 너는 성인식 반이잖아. 너한테 영향 가는 거 싫어.”
사실 성인식 반은 연애 금지다. 연애 금지령이 내려진 것은 연애 때문에 내 배움을 보지 못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에 흔들리는 이유는 사랑을 통해, 그 사람을 통해 배울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식을 잠시 내려놓더라도 사랑을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E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 후로 서먹하게 지나다가 또다시 서로에게 다가갔다. 닿을 듯 말 듯 한 사이로 만나다가 결국 E가 나를 불렀다.
“그만하자. 이제는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지 않아.”
이야기가 끝나고 안아주며 말했다.
“잘했어.”
내 사랑이 거절당하는 일을 많이 겪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처음엔 괜찮았다. 자신의 배움을 향해 떠나는 E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응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억울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원했다. 내 옆에서 나를 사랑해 주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랑을 했지만 나는 계속 나를 잃었다.
나는 내가 했던 사랑을 상처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상처받으면서도 반복하던 사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사랑에 금방 빠지는 이유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사람을 믿고 힘들 때 기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은 모두 당연하지 않았다. 사랑은 자기중심을 잡은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의지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맡기는 것이다. 합주로 예를 들어보자면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소리가 나는 것이다. 반면 의지란 합주를 할 때 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다른 소리에 묻혀 가는 것과 같다.
이때까지 내가 해왔던 연애는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연애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상처받았다고 했지만, 그들은 또 다른 나의 스승들이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아주 큰 걸 요구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하나인 존재로 더 큰 사랑을 하고 싶다. 더 나아가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고 싶다.
나는 여전히 사랑에 쉽게 빠진다. 사랑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찾고 싶다.
더 이상 남에게 묻히는 것이 아니라 내 소리를 내고 싶다.
나는 [하나뿐인 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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