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 집에서는
기일이라도 음식 차리는거 아니라고
이모나 목사님이 그렇게 강조를 해도
내겐 다 필요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기도가 절실하냐,
누나인 내 마음이 애틋하냐?
누가 또 한마디 거들면
내게선 좋지않은 소리가 나올 것이다.
무슨 좋은날이라고 떡을 하나 싶지만,
좋은 날인지 아닌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영도에겐 아픔이 끝났으니 좋은 날이고
남은 우리들에겐 여전히 눈물이 난다.
나는 다빈이를 학교에 보내고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영도 밥부터 소복히 퍼놓고
탕을 놔주고
산적.과일.전.나물.떡.원두커피까지 가득 내려서 상에 놓았다.
전통적인 제사상도 아니기에
내 맘대로 가지런히 놓기만 한다.
그러고나서 안방 장롱에 보자기로 싸여있는 영정사진을 꺼내왔다.
새벽 일찍부터 기일을 위한
기도문을 쓰고 예배순서를 찾아놨기에 엄마와 둘이 예배를 봐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렇게 추모예배를 끝내고나니
엄마는 안심이 되셨는가
넉넉히 아침을 드셨다.
석모도로 가는 길에
엄마는 벼 벤 논을,
시들어가는 콩대를,
주렁주렁한 납작감을 감상하셨다.
차라리 그렇게 둘러보며
중얼중얼 가벼운 소리를 하는 게 좋다.
영도의 갯벌에 소주와 커피, 안주 한 접시를 놔주고는
내친 김에
민머루 해수욕장까지 들러보았다.
버스도 아닌데 멀미 난다는 엄마에게
시원한 쥬스를 드리고
나는 말없이 운전을 했다.
멀미라는 게,
속 뒤집히는 멀미가 어디
차를 타서만이 그랬겠는가 싶어서.
저 늙은 손으로
먼저 간 아들 젯상을 차리고 싶었을 것이며,
하늘을 향해서
영도야, 잘 있냐?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지내라!
우스갯소리를 전하는 엄마 속이
그게 속인가 싶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