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은 본래 자웅동체였다.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의 생명이 그 두 개를 동시에 갖고 태어났다. 박테리아의 탄생이었다. 바다에 소금기를 안고 그들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깨닫고 그 대상의 죽음을 목도했다. 나인 동시에 나 아닌 너를 인식하는 ‘감정’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생기면서 생물은 급속도로 다양해졌다. 그 끝에 다다른 인간은 파도와 포말의 불균형한 반복에서 자신들의 기원을 찾으려 했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이자, 바다를 향한 욕망이었다. 역사는 서사로 직선으로 서술되지만 감정은 비정형 파동으로 일렁인다. <너는 나를 불태워>는 글자와 이미지를 이용해 시간과 감정을 유영하는 총체적 영화다. ‘사포’의 시를 영상으로 구현한 듯 조각난 이미지의 파편들과 다이얼로그를 이용해 유기적인 현상을 만들려 한다. 해변에 버려진 유리 조각이 마모되어 주변의 돌들과 진배 없어질 때 결핍은 갈망하지 않아도 그 자체의 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한다.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가 쓴 체세레 파베세의 자살과 그가 책에 남긴 메모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레우코와의 대화“라는 책에서 <바다 거품>은 영화화가 가능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바다 거품>을 영상화하기 전, ‘사람은 박테리아 군집’이라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의 주고받는 대화로 영화가 이루어진다. ‘나는 원한다, 너는 나를 불태워.‘라는 음성과 개수대에 수도에서 흐르는 물을 클로즈업하여 반복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이때부터 반복되는 이미지와 푸티지 화면으로 진행할 것임을 암시한다. 물처럼 밀려들고 거품처럼 흩어지는 사랑과 죽음에 대한 예고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면 두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은 각각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가 되어 이제는 흔적만 남은 시에 대한 대화를 한다.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서정 시인이다. 사모하던 이에게 실연을 당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방대한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은 건 <아프로디테 송가>를 제외하면 모두 짧은 귀결만 남은 파편들만 남았다.
브리토마르티스는 미노스의 구애를 피해 달아나다 절벽으로 몸을 던진 님프다. 실연에 투신한 시인과 남성에게 쫓기다 바다에 몸을 던진 님프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시가 되어 노래로 불린다. “당신은 오래 바다를 원했어요? “ “바다에선 모든 것이 태어나고 죽어.”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화면은 빈 종이에 남근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사포는 들끓는 욕망과 반복되는 번민이 자신이 인간임을 괴로워하며 생을 포기하고 브리토마르티스는 파괴적으로 다가오는 ’ 남성성‘에 대한 도주인 것이다.
목적과 방향성을 다르지만 같은 형태인 죽음은 바다로부터 새롭게 시작됨을 알리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화면은 파도의 포말과 박테리아가 군집하는 장면을 이분할로 보여준다.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이미지의 나열로 나타나는 건 거세된 핏방울이 바다에 떨어지며 거품과 만나 탄생한 아프로디테, ‘사람’은 마모를 통해 ‘사랑’을 낳고 인간은 오래된 기억을 혐오하지만 그들 모두의 시작은 박테리아였다. 결국 어떤 사랑도 죽음으로 귀결되고 다시 돌아오는 파도처럼 사랑은 반복된다. 고로, 욕망이란 사랑과 죽음의 아이러니한 연속인 것이다. 이야기는 잠시 님프 칼립소의 사연으로 흐른다. 인간을 사랑하고 몇 년을 동굴 속에서 보냈다.
님프에게 가장 힘든 일은 무언가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이기는 힘은 사랑이었고 자유롭던 님프는 속박을 견딘다. 하지만 칼립소의 외침은 버림받는다. 그만 바라보던 대상은 떠나고 홀로 모두의 멸시를 견디던 그녀는 자신을 태워 없는 존재로 만든다. “하나의 형태로 태어나 다른 모습으로 죽는다. 운명은 행복, 아름다운 노래를 하리라. “ 파베세가 느끼는 고뇌와 사포의 시, 태어나 만나고 헤어짐은 운명처럼 엇갈림으로 노래된다. 이는 아프로디테(사랑)를 향한 기도처럼 느껴진다. 바다의 감정은 박테리아를 잉태하고 그것은 시간이라는 물리적 인과를 거쳐 열매라는 형태를 갖는다.
높은 곳에 매달린 사과와 그 아래에서 사과를 먹는 시퀀스가 반복된다. 욕망은 햇살을 받아 빨갛게 무르익었고 우리는 닿지 않는 곳에 그것을 뒀을 뿐 잊지 않았다. 먹을 땐 달콤하지만 남겨진 감정의 아픔은 저기 높은 곳에 매달아 둔 채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져버린 여인들, 사랑을 피해 달아나던 님프들 그리고 평온함을 누리는 인간들과 거리가 먼 존재들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를 입고 현대의 바다 거품을 현현하는 주인공들 헬레네의 사후 평온이 대명사처럼 읊조려지지만 이제는 부럽지 않다. 아프로디테는 바다 거품 속에서 태어나 박테리아처럼 진화한다. 양수는 바다와 닮았다.
시는 그 바다에서 길어진 하얀 거품 긴 시간 암송될 것만 같다. 영화는 사포의 새로운 시가 발견됐다는 말과 마지막을 “너는 나를 불태워”라는 문장 위에 “너는 나를 애태워”라는 글씨를 쓰며 마무리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박테리아의 집결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복잡한 진화를 거쳐 개별적 형태를 지닌 생명이 되었지만 사랑과 열망, 고통과 번민은 스스로 파편을 만드는 존재가 되었다. 파편은 결핍이 아닌 가능성의 근원이 되었다. 2500년 전 사포는 아릿한 말들로 사랑을 노래했다. 그 불확실함은 인간을 살게 한다. 사랑은 불태우는 것이 아닌 애태움이다. 그것은 영원히 암송될 파도의 노래다.
첫댓글 여러 이유로 영화관에 가는 횟수가 인생 역대급으로 줄어든 요즘
영화 소식, 영화를 보고싶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게 만들어주심에 진심 감사드립니다..
박테리아의 집결체의 현실 등 전체적으론 이해하지 못하고 대강 주억거리며 넘어갈 정도로 어렵지만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사랑은 불태우는것이 아니라 애태움이다 마지막 문장에 무릎을 탁 칩니다.
도전하지못하는 영화들 리뷰써주셔서 늘 흥미롭게 잘 읽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