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0일 금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하늘을 우러러 눈물로 기도를 바치며
내가 어려서 많이 아플 때에 늘 내 곁에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무서워하는 할머니셨지만 내게는 언제나 가장 든든한 어른이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매일 할머니를 가운데 모시고 양쪽에서 잠을 청하곤 하였는데 예순 일곱의 할머니는 우리 곁에서 이불을 펴고 겨우 잠이 들면 걱정과 사랑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 곁에는 제일 어린 여동생이 붙어 있었고 동생들이 유난히 많아서 아픈 나를 안아줄 차례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엄마 품에 안겨 잠 못 들어 뒤척이고 숨을 할딱거리며 아파하는 나를 어머니는 가녀린 무릎에 가만히 뉘이시고 등잔불에 의지해서 바느질을 하시다가 진땀을 줄줄 흘리면 치마폭으로 조심스레 닦아 주시며 한숨과 눈물로 헤아리시던 길고 긴 많은 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인가 겨우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어머니와 할머니 두 분이 보이지 않아서 사방을 더듬적거리며 일어나려는데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뒤란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얼른 뒤뜰로 나갔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등불을 들고 쭉 늘어 서 있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독대 앞에 촛불을 켜고 대접에 맑은 물을 떠놓고 두 손 모아 빌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나는 자세히 모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을 대면서 그 장손자요 장자인 이 집의 아무개를 이 아픈 병에서 낫게 하여 달라고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앙천축수(仰天祝手)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손을 모아 비는’ 것을 우리는 앙천축수(仰天祝手)라고 하는데 나는 그날 밤 그렇게 하얀 소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자식들이 잠을 깰까봐 작은 소리로 간절히 차가운 장독대 돌바닥에 의지하여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하신 두 분의 손끝을 늘 생각하면서 남몰래 눈물짓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합니다.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기적을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시며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습니다. 모든 기적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의 말문을 틔우고, 귀를 열리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다하시는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주님께서 앙천축수하시면서 말문을 열어주시고, 귀를 열어주시는 기적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답답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기 위해서 열어 주실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그 진리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매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매체를 통해서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들으려하지 않으며 또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었으면 그 말씀을 잘 전하고 다시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혀를 풀리게 하시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창조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시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말문을 열어주신 것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일입니다. '천지개벽'(天地開闢)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그 일을 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에파타”라고 당신의 권능으로 우리의 혀를 열어 주십니다. 지금 천지개벽과 같이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자 주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데 아주 귀하게 사용하도록 우리를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어려서 에덴동산에 심어진 ‘생명의 나무’를 ‘지선악수’(知善惡樹)라고 하였습니다. 곧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나무’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안다.’는 말은 지식으로 아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모든 것을 근원부터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권능과 권한을 의미합니다. 악마의 간교한 유혹과 인간의 교만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1-8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축일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Scholastica)
신분 : 수녀원장
활동 연도 : 480?-555/560년?
같은 이름 : 스꼴라스띠까, 스콜라스띠까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으로 살아왔으나 아마도 부모의 집에서 기거한 듯 보인다. 그 후 그녀는 오빠인 성 베네딕투스가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서 은수자로 생활할 때 오빠처럼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결심을 하고 여러 귀족 청년들의 청혼도 모두 거절하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자기 몫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후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멀지 않은 곳에 초막을 짓고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혼자 생활했는지 아니면 공동생활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점차 그녀와 같이 생활하려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 당시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오빠인 성 베네딕투스를 만나 기도 생활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제33장에 의하면,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에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Piumarola)에 베네딕토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그래서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제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져 온다.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마지막으로 성 베네딕투스를 방문했을 때 성녀는 예년과 같이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성 베네딕투스가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오빠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성 베네딕투스는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그래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서 성 베네딕투스와 수도승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성 베네딕투스는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오빠는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 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선종하였다. 이날 성 베네딕투스는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창밖으로 동생이 있는 수녀원에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동생이 하느님께로 돌아갔음을 알게 되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누이동생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했다고 한다.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이 붕괴된 후 8세기경에 성 베네딕투스와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유해는 프랑스 중부 플뢰리(Fleury)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지역 밖에서도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8세기 말에는 베네딕토회의 시간 전례(성무일도)에 성녀의 축일이 수록되었고, 9세기경에는 전 세계 수도원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 예절이 전 세계의 교회로 확산하게 된 것은 11-13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로마 전례력에 정식으로 축일이 수록된 것은 18세기경이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 성녀로 공경받고 있고, 비둘기는 그녀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스콜라스티카 (Scholastic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