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앙망하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1. 은성아,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하시고, 광야를 지난 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하시면서 날마다 필요한 것을 충분하게 공급하셨는데도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라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벌하시니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던 것을 배웠지? 그리고 그들이 모세에게 잘못을 고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구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게 하시고 그것을 바라보면 살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생명의 길이었다. 그 말씀을 믿고 놋뱀을 바라본 자는 누구든지 다 살 수 있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9)
2.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 이야기하실 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15)고 말씀하셨다. 인자가 들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겠지?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직접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2-33) 갈라디아서 3:13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모세 시대에 나무에 높이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뱀의 독이 사라지고 살게 한 것은,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저주의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면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그림처럼 보여주신 것이다.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더 확실히 하신 말씀이 유명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말씀이다.
3. 그런데 이 십자가에 들리심은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의 임하심과 재림까지 함께 포함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들리심으로 자기의 백성을 이끌어내시는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리우신다. 즉 십자가에 들리심은 부활과 승천, 하늘로 들리심과 하나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하늘로 들리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지금도 자기의 백성을 자기에게로 끌고 계시는데 에베소서 4:8-10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위로 올라가시는데 이것은 내려오셨기에 올라가시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하늘에서 내려오심!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나무에 들리시다니 이것보다 더 큰 사건은 생각할 수 없다. 내려오신 그분이 올라가시면서 하신 일은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내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고, 세상의 임금에게 붙잡혀 있고, 죄의 권세 아래 사로잡혀 있는데 그 사로잡은 자를 사로잡고, 자기 백성을 이끌어내시는 두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함께 부활시키시고 하늘에 들어올려 앉히신 것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온 은혜가 참으로 크고 놀랍다.
4. 은성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들어야 할 말씀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말씀이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28-31) BC 586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70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이렇게 탄식하며 울부짖었다. “우리는 야곱의 후손들 아닌가? 우리가 온갖 고난을 다 당하고 있는데 왜 우리 길은 여호와께 숨겨져 있고, 우리 송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단 말인가?”(사 40:27)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위의 답변을 주신 것이다. 핵심은 ‘여호와를 앙망하라’이다.
5. 은성아,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할 때에 하늘을 우러러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행 7:57-58).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핍박의 상황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신자들에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히 12:2)라고 말하였다. 물론 우리는 가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4)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눈을 우리나 환경에 향하지 말고 주님을 향해야 한다는 진리다.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던 베드로가 바람과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을 잊지 말자.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약의 성도들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거기에 높이 들리신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들려서 죽으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장차 다시 오실 날을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영광스러운 분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