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 김별
꽃들이 지고
꽃의 향기와 같은 나비도 사라지고
맥없이 키만 큰 사람처럼
그리움만 웃자라는 계절
까치발로도 모자라
목이 빠져 꺾여버린 듯
해바라기 형상을 하고 섰다
썰물이 비워 놓은 갯벌 어디
바람이 짓밟고 간 벌판 어디
솟대처럼 섰다 어스름 노을에 걸린
남루한 바람 몇 올 어둠 속에는
둥지로 돌아가지 못한 검은 새들
누구도 말을 하거나 울지 않는다
침묵의 감염 간혹 입을 막는 잔기침 소리
그렇게 어둠만 계속 이어지고
감옥보다 더 깊은 고립은 몇 겹
철책보다 무겁게 모든 것을 격리시키는데
변온동물처럼 간헐적 맥박뿐이다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목숨
실낱 같던 희망마저 촛불처럼 꺼졌건만
계속된 덧칠로 더하는 어둠
소스라치게 깨우는 호출소리
대답이 목구멍에 막힌다
잠시 소리의 파장이 잠잠해지고 적요
관속처럼 어둡고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리움을 부르는 게 아니었다
아직 내게 죽을 자유는 없다
적어야 할 삶이 몇 장이나 더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백지
그 무게 앞에 절망을 느끼지는 말자
성운 사이로 검은 새들 빨려 들어가고
새 빛 쏟아진다
운명 대신 항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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