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스승님
나는 나와 다른 이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깊이 이해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느린 사람을 싫어했다. 생각하는 방식, 행동, 식습관, 내가 배운 방식대로 하면 모두가 배우는 줄 알았다. 습득능력이 느린 사람을 싫어하고 어리바리하며 효율 떨어지게 행동하는 사람이 싫었다.
이런 나에게 한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스스로 앞가림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많아 보였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사소한 것 하나조차도 몰랐다. 씻는 것 조차 누나들이 씻겨주고 혼자 잠 못 잔다고 소란 피우고 틈만 나면 엄마 찾으러 엉엉 울어대고 밥은 또 어찌나 더럽게 먹던지 동물을 보는듯했다. 거기다 말도 어눌하게 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못 알아들을 때도 많고 학교에서 걷는 상황이나 산을 가는 상황이 오면 그녀는 걷는 게 느려서 정말 많이 답답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남들 하루 만에 배울걸. 그녀는 한 달, 또는 반년이 지나도 처음 하는 것 처럼 습득능력이 정말 느렸다. 방금 주의하라고 했는데 또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수십 번을 말해도 다음날이면 까먹었다. 거기다 조금만 잘해주면 좋다고 계속 따라고 오고 질문은 왜 그렇게 많은지 사람을 정말 귀찮게 한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다니고 계속 기웃기웃 번거롭게 했다. 완전 아기 같았다.
정말이지 내가 싫어하는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그녀가 집착을 보이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으면 빼앗거나 멀리하게 했다. 그녀가 실수 할 때면 그때다 싶어 달려들어서 지적하고 화를 냈다. 그녀가 싫어하거나 무서워 하는 게 있으면 그 짓만 골라서 했다. 그녀가 정말 싫었다. 그중에서 그녀를 제일 싫게 만드는 건 다음날이면 까먹는다는 거다. 전날에 그렇게 나한테 혼나도 슬금슬금 다가와서 좋다고 엉겨붙는다는 거다. 아무리 우리 학교가 하루 인생을 추구한다지만 뇌가 하루 인생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게 정말 싫었다. 그렇게 미운 말, 모진 말, 다 갖다 붙여서 화를 내고 싫은 짓만 골라서 하는 나에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일 없이 지낸다. 이게 정말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적어도 날 싫어하면 명분이라도 생겨서 더 괴롭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날 좋다고 달려든다. 아이러니하면서 짜증 난다. 나한테는 정말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한번 싸우면 끝까지 말 안 하고 찐따짓 부리는 나를 푹 식게 한다. 정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싫어하자니 나를 좋아하고 반대로 좋아하자니 내가 싫은 모습만 골라서 하니깐 잘 지내보려고 해도 참 힘들었다. 그래서 괜히 더 미워하고 괴롭혔다.
검정고시 준비를 하던 오후 9시였다. 공부하러 올라가니 그녀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펼쳤다. 그녀가 말했다. "공부 몇 시 까지 해야 하는 거야?" 이 말을 듣자마자 골려주고 싶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해도 의심 없이 믿으니깐 골려 먹기 딱 좋았다. "너 아까 공부할 시간에 놀아서 논 만큼 공부해야 해 한 3시간 하면 되겠네" 그녀가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3시간?! 아 1시간만 하고 가면 안 돼? 채점만 하고 갈래!" 단호하게 얘기했다. "안돼 너 그러면 퇴출이야 나도 아까 놀아서 시간 채우러 온 거야" 의심하나 안 하고 믿는 눈치였다. "그럼 여기 문제집 하나 남았으니깐 이것만 풀 거야 1시간 안에 할 수 있어! 할 거야!"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니깐 별 신경 안 쓰고 내 할 일 하고 있었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문제집을 풀더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녀에게 10분 뒤에 가라고 하려고 했는데 깜빡 한 것이었다. 그녀를 쳐다봤는데 딴짓 안 하고 말없이 눈을 부릅뜨며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집중해서 무언가 하고 있는 걸 보는 게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한 거짓말에도 곧이곧대로 믿는 걸 보니 괜히 불편했다. "공부 더 안 해도 돼 9시까지만 공부하고 그 뒤로는 자율이야 거짓말이었어" 그러자 그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나 더 안 하고 가도 돼? 퇴출 안 당하는 거야?"
나한테 속았는데도 뭐가 좋다고 실실 웃는 것인지 바보 같았다, 그날 따라 그녀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뒤적거렸다. 그러곤 나에게 알게 되는 건네주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유통기한 지난 거 준거 아니야?" 나는 좋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아냐! 이거 이번에 산 거야" 하며 두 주먹을 쥐고 허벅지를 치며 웃으며 얘기했다. 알게 되는 뜯어서 입에 넣으려는 찰나 그녀에게 궁금했다. 그녀에겐 나는 무섭고 싫은 존재 일 텐데 왜 맨날 잘해줄까? 궁금했다. "너는 내가 맨날 혼내고 싫은 소리 하고 못살게 구는데 나 싫지 않아?" 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응 싫지 않아" 이 말을 듣고 순간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했다.
나는 항상 그녀에게 짜증 내고 화내며 몹쓸 짓만 골라서 하는데 그녀는 나를 무서워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나를 무서운 사람, OO 같은 사람 같이 수식어가 붙지 않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다는 걸 알았다. 전에 다퉜던, 속상한 짓을 했던, 상관 하지 않고 "이재혁" 그 자체로 날 바라봐 주고 있었다. 미운 점만 보는 게 아닌 그 사람에 숨겨진 장점을 봐주고 있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눈물이 나왔다. 그간 그녀에게 괴롭히고 화내고 짜증 냈던 일들이 정말 미안했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가 여태까지 짜증 내고 화내고 선생질해서 정말 미안해" 그녀는 웃으며 "아냐 괜찮아" 하고 꼭 꼈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나를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엄마에 품속에 안긴 것처럼, 성모 마리아가 껴안아준 것처럼 따뜻했다. 평생 미울 것만 같던 그녀가 더는 밉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경험을 안겨줘서 아주 고마웠다.
평생 남에 껍데기만 보고 살았던 내가 처음으로 껍데기를 넘어 알맹이를 보게 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에게 이런 경험을 안겨준 그녀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정말 사랑한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 좋은 일이구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학생의 경험이었다.
첫댓글
이제까지 내가 본 글 중에서 가장 감동이다.그녀가 네 스승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