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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오너 리스크의 교과서, 10년 전쟁의 종결
2000년 LG유통(現 GS리테일)에서 분사하여 대한민국 단체급식과 식자재 유통시장의 강자로 성장한 아워홈(OURHOME)
이 기업의 이름 앞에는 지난 10여 년간 ‘성장’이나 ‘혁신’이 아닌 ‘경영권 분쟁’이라는 참담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창업주인 故구자학 회장의 1남3녀가 벌인 골육상쟁은 단순한 가족 간의 다툼을 넘어, 한 기업의 미래를 통째로 뒤흔들고 결국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비극적 결말을 낳았다.
장남의 독단 경영과 사법 리스크에서 촉발된 ‘1차 남매의 난’, 경영 성과에도 불구하고 배당금 문제로 동맹이 와해되며 벌어진 ‘2차 남매의 난’에 이르기까지, 아워홈의 분쟁사는 불안정한 지배구조가 어떻게 기업을 좀먹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과서가 되었다.
특히,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며 경영 능력을 입증한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이 오빠와 언니의 연합 공격에 의해 이사회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경영의 승리’가 ‘지배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한국형 오너 리스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이 자기 파괴적 전쟁의 끝에서, 오너 일가는 스스로 ‘우리 집’의 문패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25년, 유통 및 서비스 사업의 재편을 노리던 한화그룹이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길고 길었던 분쟁의 막이 내렸다.
경영권 분쟁 초기부터 자료를 수집하였던 <김영진M&A연구소>에서는 아워홈 분쟁의 씨앗이 된 지분구조의 태생적 한계부터, 구체적인 수치와 사건을 통해 각 분쟁의 국면을 세밀하게 복기하고, 한화그룹이 아워홈을 인수하게 된 전략적 배경과 그 이후의 과제까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 분쟁의 씨앗 - ‘절묘한 균형’이 낳은 ‘시한폭탄’
1. 창업주 구자학, 범LG가와 범삼성가의 결합
아워홈의 창업주 구자학 회장은 한국 재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진 인물이다.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3남이자,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차녀 이숙희氏와 결혼해 양대 창업가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을 가졌던 그는 삼성에서는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現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사장, 제일제당 사장 등을 역임하며 경영 능력을 떨쳤고, LG로 복귀해서는 그룹의 핵심인 LG화학, LG반도체, LG건설 등의 회장을 맡았다.
‘퉁퉁 부은 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현장을 중시했던 그의 리더십 아래 아워홈은 2000년 분사 이후 단숨에 연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 4남매, 그리고 운명의 지분 구조
구 회장은 슬하에 장남 구본성, 장녀 구미현, 차녀 구명진, 막내 구지은 등 4남매를 두었다.
경영권 분쟁의 씨앗은 이들 4남매에게 거의 균등하게 상속된 아워홈의 지분구조에서 잉태되었다.
▶장남 구본성 : 38.56%
▶장녀 구미현 : 19.28%
▶차녀 구명진 : 19.60%
▶막내 구지은 : 20.67%
4남매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98.11%로, 사실상 가족이 100% 소유한 폐쇄적인 구조였다.
구 회장이 왜 이런 ‘황금 분할’에 가까운 구조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4남매의 화합을 통해 회사를 이끌어가라는 깊은 뜻이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누구도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반드시 연합 세력을 구축해야만 하는 ‘상시적 분쟁구조’를 잉태한 시한폭탄이 되었다.
특히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주주(구미현, 구명진)의 표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캐스팅보트’ 구조는 향후 분쟁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되었다.
초기에는 재계의 오랜 관행인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별다른 경영 수업 없이 주로 해외에 머물던 장남 구본성 씨가 2016년 부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권을 잡았다.
반면, 막내 구지은 부회장은 2004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구매, 외식, 글로벌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치며 10년 이상 실무 경험을 쌓은 ‘준비된 후계자’였으나, 오빠와의 갈등 끝에 2015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는 이미 이때부터 경영권 갈등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1차 남매의 난 - ‘장자’의 추락과 ‘막내’의 화려한 복귀
1. 구본성 체제의 균열 : 보복운전과 70억원대 급여 논란
구본성 전 부회장의 경영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2019년, 그는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자신의 차량 앞으로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상대 차량을 들이받고 운전자를 폭행한 이른바 ‘보복운전’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면서 CEO로서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내부적으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매년 수십억원의 보수를 챙겼는데, 특히 2020년에는 회사 실적이 적자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급여와 상여금 명목으로 70억원이 넘는 거액을 수령해 비판을 받았다.
또한, 상품권을 대량 매입후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 수법으로 2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횡령·배임 혐의로 2021년 경찰 수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법 리스크와 도덕성 논란은 세 자매가 연합하여 ‘장자 승계’의 고리를 끊어내는 결정적인 명분이 되었다.
2. 2021년 주주총회 : 세 자매의 ‘쿠데타’
2021년 6월 4일, 아워홈 정기 주주총회는 운명의 날이었다. 이날 주총의 핵심 안건은 구본성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 이었다.
이전까지는 오빠의 편에 섰던 장녀 구미현氏가 막내 구지은 부회장, 차녀 구명진氏와 손을 잡았다. 이들 ‘세 자매 연합’의 지분 합계는 59.55%로, 구본성 전 부회장(38.56%)을 압도했다.
결국 재선임 안건은 부결되었고, 구본성 前부회장은 대표이사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해임되었다.
이후 열린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6년간 야인으로 지냈던 구지은 부회장이 마침내 아워홈의 대표이사로 선임되었다.
그녀는 취임사에서 "회사 발전을 위해 오빠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주주들과 화합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며 경영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 2차 남매의 난 - 배당금 263억이 가른 자매의 의(義)
1. 경영의 승리, 그러나 드러나는 동맹의 균열
구지은 부회장 체제하에서 아워홈은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2020년 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회사는 구 부회장 취임 첫해인 2021년 257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성장세는 이어져 2023년에는 매출 1조9,835억원, 영업이익 943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구 부회장이 공격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미국, 폴란드 등), 마곡 R&D 센터 건립을 통한 푸드테크 강화, B2C 브랜드 ‘구氏반가’ 론칭 등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구 부회장은 회사의 체질 개선과 미래 투자를 위해 ‘저배당’ 정책을 고수했다. 2022년과 2023년 주주총회에서 회사 측이 제안한 배당금 총액은 각각 30억원 수준이었다.
이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지분에 따른 배당 수익이 주수입원이었던 장녀 구미현氏에게는 불만스러운 수준이었다.
구미현氏 측은 2023년 주총에서 배당금 총액으로 회사 제안의 약10배에 달하는 293억원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했으나, 구지은-구명진 자매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 자매 연합’에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2. 2024년 주총 :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다
2024년 4월 17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배당금 문제로 돌아선 장녀 구미현氏가 이번에는 자신을 축출했던 오빠 구본성 前부회장과 손을 잡은 것이다.
구본성-구미현 연합의 지분은 57.84%에 달했다. 이들은 연합전선을 구축해 임기가 만료된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CEO가 주주총회에서 이사직을 박탈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구본성-구미현 연합의 ‘경영권 탈취’는 미완에 그쳤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천한 두 명의 사내이사를 선임하려 했으나,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상법상의 ‘3% 룰’에 발목이 잡혔다.
구지은-구명진 연합(40.27%)의 반대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서 모든 이사 선임 안건이 부결되었다.
그 결과, 아워홈은 사내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초유의 ‘식물기업’ 상태에 빠지며 경영 공백의 위기를 맞았다.
이후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구미현氏와 그녀의 남편이 이사로 선임되었고, 구미현氏가 회장직에 올랐다.
그러나 이는 경영 정상화가 아닌, 회사 매각을 위한 수순이었다. 그녀는 "전문기업에 경영권을 이양해 분쟁을 끝내겠다"며 매각 의사를 공식화했고, 이로써 10년간의 가족 분쟁은 ‘회사 매각’이라는 출구로 향하게 되었다.
■ 새로운 주인, 한화그룹의 등판과 그 배경
아워홈이 매물로 나오자 여러 기업이 관심을 보였지만, 가장 적극적인 인수자는 한화그룹이었다. 한화의 아워홈 인수는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그룹의 유통·서비스 부문 재편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1. 전략적 시너지 : 호텔, 리조트, 유통의 마지막 퍼즐
한화그룹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호텔·레저), 한화갤러리아(백화점)를 보유하고 있다. 아워홈의 강력한 식자재 구매력과 물류망, 단체급식 운영 노하우는 기존 사업과 즉각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호텔/리조트 : 더 플라자 호텔 등 최고급 호텔과 리조트의 F&B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고, 식자재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백화점 : 갤러리아 백화점의 프리미엄 식품관(고메이 494) 운영과 VIP 고객 서비스를 고급화할 수 있다.
▶신사업 : 김동선 부사장이 주도하는 푸드테크 및 로봇 사업과 연계해 급식·외식 사업의 자동화와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2. 김동선 부사장의 승계 발판 마련
이번 M&A는 김동선 부사장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경영 능력과 그룹 내 입지를 다지는 중요한 시험대였다.
미국의 유명 버거 브랜드 ‘파이브 가이즈’를 성공적으로 국내에 들여오는 등 F&B 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온 그는, 아워홈이라는 조 단위 기업 인수를 성공시킴으로써 그룹의 차세대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3. M&A 협상 과정과 최종 인수
한화는 구본성-구미현 측 지분 58.62%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매각 측은 한때 2조원에 육박하는 기업가치를 원했으나, 한화는 실사를 통해 아워홈의 기업가치를 약1조5,000억원 수준으로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약8,700억원에 해당 지분을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구지은 부회장 측의 ‘우선매수청구권’ 행사가 마지막 변수였으나, 막대한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 권리를 포기하면서 한화의 인수는 최종 확정되었다.
■ ‘우리 집(Ourhome)’의 간판은 남고, ‘가족’은 떠났다
아워홈의 사례는 한국 기업, 특히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어설픈 지분 상속은 경영권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누구도 확실한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지분 구조는 언제든 파벌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둘째, 경영 능력과 소유권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구지은 부회장은 회사를 사상 최대 실적으로 이끌며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했지만, 지분 싸움에서는 패배했다.
이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 단기적인 주주 이익(배당금)을 우선시하는 소유주와 전문 경영인 간의 갈등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셋째, 끝없는 ‘오너 리스크’는 결국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고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교훈이다.
아워홈은 결국 가족의 손을 떠나 새로운 주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갈등을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너 일가에게도, 회사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 씁쓸한 결말이다.
지난 10년의 분쟁은 대한민국 재계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겠지만, 동시에 지배구조 개선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2025년, 모든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 아워홈은 공식적으로 한화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10년간 회사를 뒤흔들었던 오너 리스크는 마침내 종식되었고, 회사는 전문경영인 체제하에서 새로운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한화는 ‘2030년 매출 5조원’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며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아워홈의 사례는 한국의 가족경영 기업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긴다.
명확한 후계 구도와 승계 원칙 없이 이뤄진 안일한 지분 상속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 경영 성과와 무관하게 사적 이익 다툼이 어떻게 건실한 기업을 무너뜨리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제 ‘Ourhome’이라는 간판은 남았지만, 그곳을 세우고 흔들었던 ‘가족’은 떠났다.
골육상쟁의 상처를 딛고 한화의 품에 안긴 아워홈이 과연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글로벌 푸드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그 새로운 여정에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감사합니다.
김영진M&A연구소(SINCE 2000) 대표 김영진(이메일 : yjk21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