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이 지나가는 방식이었다. 인물이 무엇을 했는가 보다 그 일이 지나간 뒤 남은 표정과 침묵, 사물과 공간의 시간이 인물을 드러냈다. 감정은 대사로 설명되지 않고 생활의 작은 움직임 속에 스며들었다.
그런 점에서 초기 허진호의 영화는 쉼보르스카의 시 형식과 닮아 있다. 감정을 직접 말하기보다 사물과 우연한 장면을 건드리면서 그 뒤에 놓인 감정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시선의 거리다. 한 발 물러나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의 표면에 머물면서 감정에 도달하게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죽음은 사진관의 일상과 아버지의 방, 주차단속원의 모습, 사진을 고르는 사람들 사이에 조용히 들어와 있다. 〈봄날은 간다〉 역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해설하지 않는다. 녹음된 소리와 바람, 기차와 집이 관계의 시간을 대신 말한다. 감정은 사건보다 늦게 도착한다. 허진호의 시적인 순간은 특별한 대사보다 아무렇지 않은 장면이 뒤늦게 다른 의미를 띠는 데서 생겼다.
〈암살자(들)〉은 이 방향을 뒤집는다. 사건 주변에 머물기보다 사건 한가운데 인물을 세우고, 총격과 수사, 추적과 취재, 폭로를 빠른 편집으로 밀어붙인다. 카메라는 머뭇거림보다 행동을 붙잡고, 음악은 긴장을 먼저 만들며, 배우들은 각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낸다. 허진호가 인물을 시간 속에 놓아두었다면 이 영화는 인물을 사건 위에 세운다.
문제는 이 새로운 형식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사는 사건을 설명하고 인물의 입장을 확인하며, 캐릭터의 선은 일찍부터 분명해진다. 배우의 강한 존재감은 인물을 선명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모호함을 지운다. 음악과 카메라, 빠른 편집은 장면의 긴장을 스스로 발생시키기보다 먼저 지정한다. 영화가 관객보다 한 발 앞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타자기와 발소리가 교차하는 장면은 그래서 아쉽다. 타자기는 기록의 시간이고 발소리는 다가오는 사건의 시간이다. 둘이 한 리듬 안에서 겹치는 순간 기록과 폭력이 포개지고, 사건보다 그 주변의 시간을 바라보던 허진호의 감각이 잠깐 되살아난다. 그러나 영화는 그 가능성을 붙들지 못한 채 다시 추적의 서사로 돌아간다. 시적인 순간이 서사의 긴장을 위한 장치로 회수되는 것이다.
자유언론실천을 둘러싼 장면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관심을 두는 곳은 암살 사건의 배후만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다. 기자들의 추적은 진실을 밝히는 미스터리이면서 기록의 권리를 둘러싼 싸움이 된다. 다만 언론의 독립이라는 의미 역시 인물의 행동과 공간 속에서 오래 숙성되기보다 대사와 사건을 통해 빠르게 확인된다. 영화가 발견하게 하기보다 말해주는 방식은 이 지점에서도 반복된다.
〈JFK〉와의 비교가 어긋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역사적 암살 사건의 빈틈에서 의혹을 만들어내지만 형식의 방향은 다르다. 〈JFK〉는 빠른 몽타주와 음악, 기록영상과 재연, 서로 다른 시간과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의심 자체를 영화의 운동으로 만든다. 과잉이 곧 스타일이다.
〈암살자(들)〉의 과잉은 다르다. 음악과 카메라와 편집이 서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보다 장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JFK〉의 과잉이 영화의 언어라면 〈암살자(들)〉의 과잉은 연출의 힘으로 느껴진다. 화면이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는 순간, 매끈함은 결핍으로 바뀐다. 모든 사건이 다음 사건으로 정확하게 연결되면서 우연과 침묵, 설명되지 않은 표정이 들어올 틈이 사라진다.
허진호의 이전 영화에서 사물은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인물의 감정이 새어 나왔다. 반면 〈암살자(들)〉에서는 타자기는 기록을, 발소리는 위협을, 연설은 언론의 자유를 환기한다. 의미가 너무 빨리 정리된다. 상징은 선명해졌지만 사물의 낯섦은 사라진다.
쉼보르스카의 시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낯섦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사물과 장면을 오래 바라본 뒤에야 감정이 모습을 드러나는 것. 허진호가 쉼보르스카와 닮았던 것도 어떤 거대한 역사적 시선을 공유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 형식, 사물과 순간에 감정을 맡기는 태도, 시간을 늦추는 감각 때문이었다.
〈암살자(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감정을 늦게 도착시키던 감독이 감정을 먼저 보낸다. 사건이 지나간 뒤 남은 시간을 바라보던 카메라가 사건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이 영화의 한계는 허진호가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이 새로운 방식이 아직 그의 고유한 영화적 언어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