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게 편?, 학연 지연 혈연 편만 들면 ‘반편이’(오강남)
유유상종(類類相從). 사정이 비슷한 사람끼리 자연히 가까이 모이게 되는 것은 과부 사정 과부가 아는 것처럼 서로 이해소통이 그만큼 잘 되는 까닭이리라. 따라서 같은 고향 사람, 같은 학교 졸업생 등 지연, 학연 등에 따라서 서로 편을 짜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두 사람이 논쟁을 하고 있다. 처음 사람은 나하고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요즘도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의견을 나누는 처지다. 그의 생각하는 방법이나 논법이 나와 비슷한 데가 많다. 따라서 두 사람의 논쟁에서 처음 사람의 논점이 내게 더 친숙하고 더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그의 편을 들게 된다. 자연스런 일이다. 두 모임이 회원을 모집한다. 처음 모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거기 가면 서로 대화가 통할 것 같고 공동의 이상을 서로 나누며 뭔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위해 힘을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임에 가입하고 그 모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힘쓰기로 한다. 당연한 일이다.
두 경우 모두 공동의 관심사, 공동의 이상, 공동의 목적, 공동의 의미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일에 뜻이 맞아 한 편이 되는 경우다. 통계적으로 보아 비슷한 환경, 비슷한 교육,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공통성이 많이 발견되고, 이런 사람들끼리 공동의 관심사를 위해 한 편이 되는 경우가 성공률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편을 짜는 유일한 기준을 지연, 학연 같은 외부적, 외형적 조건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이 논쟁을 하는데, 쟁점이나 내용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한쪽이 내 동창이니까 그편을 들어야 한다든가, 두 모임이 회원을 모집할 때 그 모임의 목적이나 그 목적을 수행하는 방법 같은 데는 관심이 없이 그 모임이 내 고향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까 덮어놓고 거기 가담해야 한다든가 하는 경우다.
심한 경우 우리 주위에는 인류 사회의 정의, 평등, 사랑, 평화, 신뢰, 조화 등의 아름다운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지연, 학연 등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 나와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라 간주하는 한편, 비록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류와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동향 사람이나 동창이면 눈을 감아주거나 심지어 그들과 합세하는 일까지 있음을 본다.
“가제는 게 편이다.” 우리가 어디에 속해야 할까?,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보다 높은 차원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지연, 학연 등의 외부적 조건만 같으면 절대적으로 그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재나 게 같은 하등동물의 본능적 발상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팔은 안으로 굽어진다. 그러나 그 팔도 사랑과 정의의 깃발을 들기 위해 밖으로도 위로도 펴질 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안으로만 굽어 있는 팔은 곰배팔이다.
※이 글은 ‘종교 너머 아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