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부터 아빠와 떨어져 살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아빠를 보는게 내 유일한 낙이었다. 아빠가 온다는 소리만 들으면 방방 뛰었다. 머리가 크기 전까지는 떨어져 사는 게 이상한 줄 몰랐다. 모두가 나처럼 아빠랑 떨어져 사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부모님 참관수업 뒤를, 돌아보니 우리 엄마만 혼자 있었다. 한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재혁아 너희 아빠는 왜 안 와?"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 아빠랑 떨어져 사는데?" 그 아이들은 놀랐다. 나에게 질문 사례가 쏟아졌다. 왜 아빠랑 떨어져 사냐, 언제 보는 거냐, 그때 알았다. 나는 남들과 다른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는걸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설렘은 집착이 되고 다른 이와 점점 비교하기 시작하다 보니 남들이 부러웠다. 나에게 없는 게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러웠다. 이른 나이에 사춘기가 왔다. 스스로 물었다. "왜 나는 아빠랑 같이 못살아?" 누가 아빠를 내 곁에서 떨어트려 놨는지 찾았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하니깐 엄마가 내 아빠를 떨어트려 놓았다고 생각했다. 미워할 대상을 찾은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게 엄마 탓이라는 이유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걸 약점으로 사용했다. 엄마와 싸울 때마다 불리할 때면 항상 아빠 얘기를 꺼냄으로써 엄마에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 갖고 싶은 걸 가지고 싶을 때 가지지 못하면 "아빠도 없는데 이것도 못 가져?" 라며 엄마에게 눈치를 주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에게는 없는 아빠가 친구들은 있으니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나에게 없는 것이니 그들에 것을 뺏고 싶었고 상처 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보다 덜떨어진 아이들을 싫어했다. 그때에 내 마음은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 정도 밖에 못해?" 였다. 그렇게 사용할 거면 나한테 줘버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 잘난척하고 다녔다. 아빠와 떨어져 살아도 너희 보다 잘살고 있다는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괜찮은 척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나 엄마랑 아빠 이혼했는데?" 라며 태연한척했다. 야생동물이 자신에 상처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상처가 아닌 척 괜찮은 척 더 숨기고 다녔다.
강자가 되면 누군가를 괴롭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못난 놈이 행패 부리면 보기 싫지만 잘난 놈이 행패 부리면 참교육이 된다. 어려서 부터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더 쿨 한척하고 센척하고 그들 안에서 항상 우위를 가리고 싶어했다. 그들이 없는 걸 찾았고 그들보다 높은 걸 찾았다. 이때부터 내 울타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색안경은 더욱 짙어졌다.
뭐든 잘하고 싶었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항상 눈에 띄는 변화를 좋아하고 어딘가에 머무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도태 된 것 같았다. 외적인 걸 꾸미고 내적인 부분을 나보다 잘난 사람을 베끼며 연습하고 따라 했다. 못난 내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고 상처는 잊혀 갔다.
지금 삼무곡을 다니면서도 상처를 잊고 잘나지고 싶어서 업적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부지런해져서 게으른 애들을 욕하고 깨끗해져서 더러운 애들을 멸시하고 근육을 단련해서 뚱뚱한 애들을 흉보고 그런데 눈 떠보니 졸업을 앞에 두고 있었다. 졸업 글을 써야 했다. 하지만 주제는 "상처를 통한 길 찾기" 였다. 앞길이 막막했다. 내 상처를 알고 있었음에도 깊은 곳 저 멀리 꼭꼭 숨겨 놓았다. 모르는 척하고 내 뒤로 쓴 2편에 글도 거짓말은 하지 않되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이번 글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놨던 잘난 내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거 같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가슴이 턱 막히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무언갈 배워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냥 이번 기회에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은 쓴다. 그 자리에 멈춰서 도태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상처로부터 마주한다.
이젠 인정하겠다. 나는 고슴도치다. 수많은 가시로부터 약한 부위를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겉으로 괜찮은척하고 센척한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굉장히 여리다.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도 일주일 동안 눈물을 흘리고 개미 한 마리 죽이지도 못하는 쫄보다.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하면 금방 미안해지고 재혁아 약한 모습으로 정직하게 한 사람을 마주하지도 못하는 쫄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후회한다. 죽어라 모르는척하고 졸업하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에게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며 졸업하는 게 더 후회스러울 거 같아 큰 맘 먹고 이 글을 쓴다.
나는 학생이다. 배우기 위해 삼무곡에 있으며 현곡처럼 살고 싶어서 아직 남아있는다. 이 글을 쓰고도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고 금방 까먹을지 모른다. 하지만 용기 있게 스스로 고백한 것 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 정도면 멋진 짓을 한 거 같다. 나는 아직 까지도 겁많은 겁쟁이다. 하지만 이제는 용기 있는 멋쟁이가 되고 싶다. 이런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나에게 많은 응원 바란다. 고맙다.
첫댓글 멋지다👍👍
드러냄으로 사라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참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