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관성과 겸허함
[살며 사랑하며] 관성과 겸허함© Copyright@국민일보
요가에는 ‘머리서기’라는 자세가 있다. 정수리 쪽을 바닥에 대고 거꾸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작으로 일종의 물구나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오랜 시간 수련해야 가능한 고난도 자세로 분류될 만큼 동작을 완성하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나의 오전 루틴 중 하나는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한 뒤 머리서기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아침에 물구나무를 서, 그럼 머리가 맑아져”라고 제안하기에 속는 셈 치고 해보고 있다. 머리가 맑아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기에 하고 나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흔들리는 몸을 버티기 위해 균형을 잡다 보니 근력이 붙는 기분이 든다.
3년째 해오고 있기에 머리서기는 나에게 그리 어려운 자세가 아니다. 어디서든 땅에 팔과 머리를 댈 수 있는 곳이라면 훌쩍 거꾸로 몸을 일으킬 수 있다. 매일 하기에 자신감도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정수리 위치를 살짝 바꿔 머리서기를 해보았는데 금세 몸이 무너졌다. 팔꿈치를 조금만 이동하거나 머리 방향을 1㎝만 바꿔도 그랬다. 완벽히 원래 위치에 팔과 머리를 둬야만 몸은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졌다. 이 일은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그 정도 사소한 움직임의 변화가 자세 자체를 무너뜨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성 속에서 자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해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조금의 움직임에도 버티지 못할 만큼 나의 동작은 아직 부족했다.
견고하다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관성이란 같은 일을 힘들이지 않고 반복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 밖으로 벗어났을 때의 대응력을 잃게 한다. 위기와 시련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들이닥칠지 알 수 없지만 관성 속에서 자만하지 않는 겸허함, 모든 일에 있어 수련에 매진하듯 겸허하게 지속해 나가는 일만이 삶의 변칙적인 어려움들 앞에서 덜 당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