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바람
/ 김별
겨울이 오기도 전부터
이미 봄을 기다리는 오랜 습성이 생겨버린 사람을 두고
당신은 얼음처럼 차고 시리고 눈부신
11월의 날들이 좋다 하셨지요
그런 당신을 미처 알지 못해
따듯한 장갑과 목도리를 마련했던
부끄러움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홍시 빛이 되었지만
벌써 갈대처럼 야위어진 뺨을 할퀴고 지나는
바람이 오히려 자유롭고 뜨겁습니다
지난밤 비가 지나더니
바람이 채 여미지 못한 옷깃을
낚시 바늘처럼 낚아챕니다
바짓가랑이며 등에는 도깨비바늘이 달라붙어 찌르고
그렇게 피하지 못하고 허둥거리다 자빠진 자리
빗물 웅덩이엔 낙엽이 쌓여
봄날의 꽃잎처럼 기어이 시간을 정체시킵니다
점점 야위어 가는 사람을 두고
당신은 벌써
눈사람처럼 튼실해진 11월의 바람을
눈썰매처럼 타고 가을 길을 달립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세월이었건만
온전히 박혀 세월을 견딘 가시를 빼내다 아파하다
절규가 되어버린 그리움을
울컥 호명하는데
눈 시린 창공에 박힌 선혈이 낭자한 열매보다
더 붉고 눈부시건만 이루지 못한 사랑이
축포로 터져 꽃벼락으로 뿌려질 날까지
아직은 더 뜨겁게 더 시리게
긴 겨울의 강을 건너
아득한 설산을 넘어야 하는 줄 아는 까닭에
단풍보다 뜨겁게 타오르다
도가니가 되어버린 11월의 열기를
다 태우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질곡의 절정을 끝내 견뎌내야 합니다
11월의 바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운명보다 더 절실한 항명이었음을
비겁하지 않게
기어이 증명해 내야 할 날들이 오고 있음을
가슴으로 아는 까닭입니다
가혹한 냉기를 막아서며 진군하는 11월의 바람이여
사막이 되어버린 가슴과 도시를 차고 넘치는 순결한 파도여
아름다운 시련의 꿈을 담아
더 뜨거운 겨울을 위해 타올라야 할
나의 연인 나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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