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월당 신공 묘갈명 서문을 아울러 붙이다雪月堂申公墓碣銘 幷序
선조 대왕 시대에 동해 가에 설월당(雪月堂) 신공(申公) 휘 준민(俊民)이 있으니, 효행으로 알려져 승사랑(承仕郞)에 제수되고 인하여 복호(復戶)를 명받았다.
대개 공의 가문은 선대로부터 대대로 지극한 행실이 있어, 잇달아 지방관의 천거를 받아 혹 포상과 증직을 받았고, 공의 아들과 손자에 이르러서는 모두 문학(文學)과 행의(行誼)로 세상에 드러났으니, 아름답도다! 진실로 하나의 아름다운 법도가 뚜렷하게 그 후손에 끼친 것이 있지 아니하면 능히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내가 일찍이 그 풍성(風聲)를 듣고 흠모한 것이 오래되었는데, 이 해 여름에 공의 주손 세형(世亨) 씨가 대구의 우거(寓居)로 나를 방문하여 공의 유사(遺事) 초략(抄略)을 보이며 근심스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 선조의 사행(事行)이 반드시 전할 것이 많았으나 불행히도 중년에 여러 차례 화재를 겪어서 문고 10여 권이 모두 잿더미 속에 들어갔습니다. 세대가 멀어지고 자취가 점점 인멸되어 점점 희미해지니 불초자 삼가 애통하고 한스럽습니다. 지금 비석을 새겨 묘소를 표시하려 함에 찬술이 갖추어지지 못했으니, 원컨대 은혜를 내려 비문을 지어 주시기 바랍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이 일은 매우 중하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닌지라 누차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사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공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이 있어 가정에서 부형의 가르침을 잘 익히고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살아계실 때에는 그 즐거움을 지극히 하였고, 상례와 제례에는 슬픔과 엄숙함을 다하여 사람들이 미치기 어려운 점이 많으니, 고을에서 모두 기뻐하고 감복하였다. 경서와 사서에 두루 통달하고 예로써 몸을 단속하였다. 유일재(惟一齋) 김선생(金先生) 문하에서 배워, 의심스럽고 어려운 것을 질문하여 자주 장려와 칭찬을 받았다. 임진왜란을 만나 아들 활(活)을 데리고 화왕산성의 곽망우당(忘憂堂) 의병 진영에 달려갔으니 《회맹록(會盟錄)》에 있다.
가승(家乘)에 실린 것은 다만 이 몇 조목만 있고 세세한 행적과 소략한 절도는 그 상세함을 말미암아 얻을 길이 없다. 그러나 평소 기거하면서는 부모를 섬기는 일에 직분을 다하였고, 난을 당해서는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니 충효가 모두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큰 근본이 이미 섰으니 나머지는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데, 어찌 살필 수 없음을 한탄하겠는가?
공의 자는 사수(士秀)이고, 설월(雪月)은 그 호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니, 고려 장절공(壯節公) 휘 숭겸(崇謙)이 상조이다. 불훤재(不諠齋) 선생 휘 현(賢)에 이르러 도학(道學)과 명절(名節)이 천하에 알려지고 영해군(寧海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이분이 휘 용희(用羲)를 낳으니 호는 간재(簡齋), 시호는 문훤(文暄)이다. 이분이 휘 득청(得淸)을 낳으니 호는 이유헌(理猷軒)이고 평산 부원군(平山府院君)인데 고려가 망함에 망국의 신하로서 절의를 지켰다. 이 분들이 공의 5대 이상이다. 고조의 휘는 자악(自嶽)이니 전리령(典理令)이다. 증조의 휘는 수손(遂孫)이니 후릉(厚陵) 참봉이다. 조부의 휘는 숙행(淑行)이니 현릉(顯陵) 참봉이다. 부친의 휘는 명화(命和)이니 증 병조참의이다. 3대가 모두 효행으로 임금의 은명(恩命)이 있었다. 모친은 숙부인 수안 김씨(遂安金氏)이니 광평 권관(廣坪權管) 한문(漢文)의 따님이다.
공은 가정(嘉靖) 무신년(1548 명종3)에 태어나고, 인조 을축년(1625) 1월 29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78세였다. 묘소는 영해부(寧海府)의 서쪽 사천동(絲川洞) 선조 무덤 아래 간좌(艮坐)이다.
배위는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니 부사직 은좌(殷佐)의 따님이다.
1남 활(活)을 낳았으니 호는 죽로(竹老)이고 미산서원(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활의 아들은 진사 유헌(幽軒) 길휘(吉暉)·길원(吉元)·길우(吉祐)이고, 딸은 백동현(白東賢)·오섭(吳涉)·조욱(趙頊)·류장(柳璋)의 처이다. 길휘의 아들은 성귀(聖龜)·성린(聖麟)이고, 딸은 남금일(南金一)의 처이다. 길원의 아들은 성규(聖虬)이다. 길우의 아들은 석한(碩翰)이다.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명(銘)으로 잇는다.
어진 선조 이미 물길 파고 賢祖旣濬
어진 후손 또 물길 트니 肖孫又瀹
이 감미로운 샘물 是其醴泉
원류(原流)가 마르지 않았네 源流不渴
위로 계승하고 아래로 끼쳐 上承下貽
정맥을 일관했네 一貫午脉
모든 사람들이여 凡百有家
마땅히 본보기로 삼을지어다 宜以柯則
유일재(惟一齋) 김선생(金先生) : 김언기(金彦璣, 1520∼1588)를 말한다. 자는 중온(仲溫), 호는 유일재(惟一齋)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남치리(南致利), 정사성(鄭士城), 권위(權暐) 등 이름난 제자를 배출하여 당시 안동 지역 학문 진흥의 창도자로 알려졌다. 저서로는 《유일재집》이 있다.
회맹록(會盟錄) : 임진왜란에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22∼1671)와 함께 창녕의 화왕산성을 방어했던 경상도 의사들의 명단이 들어있는 《화왕산성동고록(火旺山城同苦錄)》을 말한다.
白渚文集(下), 배동환 저, 김홍영, 남계순 역, 학민문화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