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게, 실크로드 37] 내 빼앗긴 자유- 이란 시라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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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송은 불행하게 끝났다
이란의 TV 방송은 의외로 개방적이었다. 처음 막 이란에 도착했을 때 이야기다. 화면 안에는 청바지에 가죽 베스트(vest)를 입은 이란 남자가 식스팩을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탱크톱 차림의 이란 여성이 풍성한 검은 머리를 흔들며 남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춤을 추고 있었다. 수위가 꽤 높다. 넋을 잃고 보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세상에, 이게 이란 방송이야?"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친구 가족들은 박장대소했다. 친구가 채널을 돌렸다.
"그럴 리가. 이게 진정한 이란 방송이지"
수염이 무성한 종교지도자가 무대 중앙에 있고,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연설을 듣고 있었다. 다른 채널을 돌려보니 이번엔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생방송으로 방송되고 있다. 친구는 웃으며 아까 보던 채널로 돌렸다. 이번엔 이란 여성이 시스루 드레스를 바람에 나부끼며 노래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채널. 히잡을 쓰지 않은 셔츠 차림의 여성 앵커가 현대적 스튜디오에서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분열된 자아를 목격하는 것 같다.
▲ 생활속 언제나 함께 하는 이란의 지도자 좌측부터 하산 나스날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이맘 호메이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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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공식채널은 모두 국영방송이다. 대부분 국정홍보나 종교에 관한 방송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방송이 있다. 바로 위성 안테나로 수신하는 채널이다. 이 위성채널은 외국으로 망명한 이란인들이 두바이, 미국, 영국에서 만들어져 전송된다. 보통 음악방송이나 정부반대 방송이라고 한다. 이란 사람들은 영국이나 미국 정부가 이 '반정부 방송'에 돈을 대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국가지도자였던 호메이니는 '음악은 마약과 같다'며 음악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그때 다수의 음악인들이 해외로 망명했다. 1997년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제한이 다소 완화되긴 했으나 서구화된 음악은 여전히 경계되고 있다.
또한 여성은 대중 앞에서 춤을 추거나 솔로로 노래할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여성의 노랫소리는 합창에서만 가능하단다. 혹은 여자들 앞에서만 노래할 수 있다고 한다. 여자 가수가 없는 나라라니. 충격이다. 친구 가족은 문화 충격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외국인을 보는 것이 즐거운 듯했다. 친구의 남동생이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 알아?"
유명한 노래다. 퍼렐 윌리엄스의 <해피>(happy). 바나나가 말을 하는 애니메이션 <슈퍼배드2>의 삽입곡이다.
"이 노래에 맞춰 춤 춘 애들이 잡혀 갔어"
젊은 이란 여성 3명과 남성 3명이 이 노래를 배경으로 춤을 추고, 그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종교 경찰에게 체포됐다는 거다. 이들의 공식 죄목은 영상물 불법 유포죄지만, 가장 큰 문제는 히잡을 쓰지 않고 남자 옆에서 춤을 춘 것이었다
▲ 문제의 유튜브 영상 세 명의 남성과 세 명의 여성이 노래에 맞춰 춤을 췄고,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았다 | |
ⓒ 유튜브 해당영상 캡쳐 |
'숨기지 말고 모두 말해줘, 미리 말해두지만 난 괜찮을 거야, 왜냐하면 난 행복하니까'라는 노랫말에도 불구하고, 이란 젊은이들의 '해피송'은 불행하게 끝났다. 그해 9월,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한 여성은 집행유예 3년에 징역 1년, 태형 91대가 선고됐고, 나머지 출연자 5명과 감독 1명에게는 집행유예 3년에 징역 6개월, 태형 91대가 선고됐다. 대체 히잡이 뭐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베일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시라즈에는 빛이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 나시르 알 몰크 모스크다. 19세기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이른 아침에 가면 오색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한 빛을 만들어낸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가면 기도실을 가득 채운 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건물 밖은 타일 모자이크로 되어있는데 분홍색 장미와 꽃병이 가득 그려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도 안하고 이곳 기도실에 앉아 깊숙이 들어온 빛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 나시르알몰크 모스크(Nasir al-Mulk Mosque) 빛의 모스크. 아침 일찍 가면 빛의 향연을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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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르 알 몰크 모스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샤에체라그 영묘가 나온다. 8대 이맘레자의 배 다른 형제들이 순교를 당해 묻힌 곳으로 시아파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다. 이곳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낮에 너무 더워서 이곳 기도실에 앉아 있곤 했다.
▲ 샤에체라그 영묘 가는 길 길에는 이렇게 가까운 사원을 표시하는 표시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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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 놓여진 기도실은 화려한 거울 모자이크로 돼 있고, 관을 중심으로 남자들의 공간과 여자들의 공간이 나뉘어 있다. 가끔 기도실에는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는 여성들이 있다. 사원에는 먼지떨이 같은 것을 들고 돌아다니는 규율 담당 직원이 있는데, 여성들의 울음이 심해지면 가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다가도 자신도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사연이 궁금했다. 옆의 젊은 이란 여성에게 말을 걸어봤다. 저 여성의 남편과 동생이 사고로 죽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란은 의외로 영어가 잘 통했다. 터키·우즈베키스탄은 상대적으로 영어가 안 통했고, 이란과 타지키스탄은 훨씬 나았다. 마침 영어가 유창한 친구를 만난 김에 물어봤다.
"대체 이 히잡은 왜 써야 하는 거야?"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 이란 젊은 여성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히잡은 남성 유혹을 방지해".... 뭐라고?
▲ 히잡과 이란 화장실 마크에도 히잡이 그려져있고, 그리고 시내곳곳에는 히잡을 쓰라는 안내문이 불어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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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프 가게의 마네킹들 스카프 가게 뿐 아니라 모든 이란의 마네킹 역시 히잡을 써야하고 팔, 다리에 노출이 있어선 안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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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이유야. 첫 번째는 신이 원하시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안전 때문이야"
이슬람 율법에 따른 이유는 알겠지만, 안전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녀는 다시 설명했다.
"우리가 히잡을 쓰지 않으면 남성이 유혹을 '당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여성의 잘못이야. 나는 히잡을 썼을 때 안전함을 느껴."
이런 대답을 그녀로부터만 들은 게 아니었다. 여행을 하며 꽤 많은 이란 여성에게 이 문제를 물어봤고, 그때마다 여성들은 판에 박힌 듯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신의 명령 그리고 안전이다.
▲ 이란의 여성들 -1 신심 깊은 경우, 이렇게 차도르로 온몸을 감고 다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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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머리에 베일을 씌우는 이슬람 율법은 사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문화적·지역적 관습에서 생겨났다. 중동 지역의 뜨거운 태양과 바람을 피하기 위한 생존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신분 높은 여인이나 결혼한 여인 중심으로 베일을 씀으로써 다른 남성의 접근을 막는 기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국교였던 비잔틴 제국에도 베일은 정숙한 여성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 차도르를 나눠 쓴 모녀 차도르를 이용해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어머니, 베일의 원래 용도는 이렇게 햇빛 가리개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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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목인들의 여성들은 남성의 습격을 받던 때였고 무하마드는 노예를 제외한 여성들에게 베일을 착용하게 함으로써 보호받도록 했다. 그렇게 쿠란에 베일 착용이 명시됐다.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디까지 가려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때문에 베일은 눈을 포함한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부터, 머리만 가리는 히잡, 얼굴까지 가리는 니캅, 망토형 차도르 등 종류가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베일 착용은 시대를 지나며 점점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억압의 수단이 됐다는 점이다. 여성은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유혹의 대상이기에 격리되고 차단돼야 하며,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은 순결하지 않기에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논리다.
한 예로 이란에서는 강간당한 여성에게 죄를 묻는다.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이 강간을 당한 누이를 명예살인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남성은 여성에게 '유혹당한' 존재일 뿐이다.
이란 여성들이 말하는 '안전'이라는 것은 그 이유였다. 이들은 베일을 쓰지 않음으로서 이뤄질 수 있는 폭력적 결과에 대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베일 안에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 이란의 여성들-2 멋 좀 부리는 언니들, 루싸리라 불리는 스카프를 머리뒤에만 살짝 걸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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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의 여성들- 3 젊은 여성들은 차도르 대신 망토라고 불리는 의복으로 팔과 다리를 가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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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파왔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돌아다니면 남성의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여성을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본다면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세상엔 일부지만, 여성은 담장밖을 넘어온 사과나 감처럼 '따 먹을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을 두고 '성적 충동을 제어 못하는 게 당연하다'며 "남성은 짐승"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성은 감이 아니고, 남성도 짐승이 아니다. 모두 존중받아야 할 같은 사람일 뿐이다.
▲ 9월 12일 발행된 기자의 기사에 달렸던 댓글 남성의 성욕은 통제가 불가능하며, 성폭행의 이유는 여성의 옷차림에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댓글에서 남성은 유혹당한 존재일 뿐이다. | |
ⓒ 네이버 기사 댓글 캡쳐 |
하지만 아직도 이런 당연한 소리가 어색한 사회가 있다. 특히나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는 정치적 변화로 여성 인권이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빼앗긴 자유, 히잡을 벗어 던진 여자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자유분방한 서구 문화를 받아들였던 이란. 하지만 이슬람 혁명 이후 베일 강제령이 내려졌다. 베일에 반대하는 것은 곧 국가 권력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베일을 쓰지 않는 여성은 서구 제국주의에 찬성하는 불순분자로 여겨져 국가로부터 격리당하거나 태형에 처해졌다.
한때 이란 내부에서도 여자들이 베일을 써야 한다면 남자들도 이슬람 전통 모자를 써야 하지 않느냐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이 남성인지라 그런 움직임은 묵살되고 말았다.
이란의 히잡은 이슬람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정체성은 히잡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강제로 히잡을 써야 하는 이란의 여름은 길고 숨 막힌다.
▲ 이란의 여성들- 4 앞머리에만 브릿지를 넣거나, 귀여운 팔토시로 팔을 가리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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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스카프 가게 외경 페르시아 후예들의 미적 감각은 남다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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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베일 착용을 무조건적인 인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 믿는 자에게 베일이란 지켜야할 종교적·사회적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놀러 왔었던 가수 '빅뱅'의 팬인 인도네시아 여자아이 두 명 중, 한 명은 언제나 히잡을 쓰고 다녔다. 굳이 안 써도 되지 않냐고 묻자, 그 친구는 벗으면 오히려 어색하다고 했다.
베일 착용이 당연한 사회에서 자라났고, 베일을 쓴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었다. 이 친구에게 무조건 히잡을 벗으라고 강요한다면 되레 그것이 인권침해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베일 착용 금지가, 과연 무슬림 여성의 인권을 위한 것인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 때문인지 다시 살펴봐야 할 이유다.
모든 베일이 억압은 아니다. 하지만 강제로 씌우는 베일은 억압이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벗기는 베일도 억압이다. 여성이 베일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중동에서도 서구 사회에서도 여성 자신이 아니라 남성이다. 여성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고, 가부장적 이유로 혹은 정치적 이유로 씌워지고 벗겨지는 베일은 모두 억압인 것이다.
▲ 이란의 여성들- 5 가린다고 쉽게 사라지는 미모가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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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의 히잡과 관련해 널리 알려진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 '나의 빼앗긴 자유'(My Stealthy Freedom)'가 바로 그것(바로 가기 클릭
▲ 히잡을 벗어버린 이란 여성 My Stealthy Freedom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이다 | |
ⓒ www.facebook.com/Stealthy |
여행을 마치고, 그 페이지에서 사진 한 장을 봤다. 한 외국인 여성 여행자가 이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고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내게 무엇을 입을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듯이 여러분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길 바란다.'
멋지다. 난 왜 이란에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늘 다른 사람이 한 멋진 행동을 보며 뒤늦게 질투를 하곤 한다. 이란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나도 공공장소에서 잠시 히잡을 벗고 사진을 찍어봐야겠다. 그리고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을 쓸 '자유' 혹은 쓰지 않을 '자유'를 지지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