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Die Strichlisten sind von meiner Hand.
선을 그어 개수를 표시한 목록은 내 손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왕실 소유지 박탈에 대한 국민투표가 좌절된 해. 화자는 빌헬름 2세의 마부이다.)
* 귄터 그라스의 세기:
- 전쟁이라면 결단코 반대였지.....언제나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로 남고 싶었어....(중략)....그래도 행동했어야 했지...: 나는 되도록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고 잘 지내자 주의자이다. 그렇지만 중년이후 나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아닌 “행동하는 지식인”에 매료되고 있다.(현)
- 그러나 나무를 잘게 쪼개는 일은 오직 그분만의 일이었고, 그것은 물론 건강한 쪽 팔의 몫이었다.(희)
- 폐하가 네덜란드의 보호 아래 아메롱엔에 있는 동안 수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 넘어뜨렸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중략) 혼자서 오른손으로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베어 넘기는 분이라면, 또한 독일에도 질서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사회를 다스리는 일은 나무 베기와 달라 왕정이 다시 독일 제국을 통치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네덜란드로 망명한(쫒겨난)빌헬름 2세의 분노와 고립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숲)
- 여하간 황제 폐하는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독일 국민이 나를 부른다면, 짐은 곧장 그에 응하리라."(탱)
- 전쟁이라면 결단코 반대였지…… 언제나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로 남고 싶었어……그러나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태어날 때부터 왼쪽 팔이 15센티 짧은 장애를 갖고 태어났고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해 외롭고 불행했던 빌헬름 2세에 대한 연민이 생기네.(반)
- 감히 한마디 하자면 폐하는 이따금 너무 헤프게 훈장을 주셨다. 나무를 톱질하고 장작을 쪼개고 난 직후에 그를 찾아온 손님의 경우는 대개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아첨꾼이며 나중에 폐하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독일의 빌헬름 2세와 오스트리아 카를 황제는 1918년에 폐위 되었다. (촌)
- 자, 보시게,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네. 황제폐하는 지치지도 않으시는 것 같군. 하지만 최근에는 말없이 썰고 쪼개고 계실 뿐이네. (공)
- 폐하가 나중에 마차 차고에서 톱질을 하면서 욕을 하시던 것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놈, 루덴도르프 때문이야!": 이봐요, 그건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 때문이예요. 전쟁이라면 결단코 반대였던, 언제나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로 남고 싶었던, 그래도 행동해야 했다던, 바로 당신 말이죠.(알)
- 폐하는 이것을 조각조각 톱질하셨고, 각 조각마다 커다랗게 W자를 새겨넣어 찾아온 손님들에게 선물용으로 기꺼이 하사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명예로운 기념품을 하사받는 은총을 입지는 못했다.: 기분 좋을 때면 누구에게나 퍼주는 훈장도, 하다못해 장작 조가리 하나도, 하사받는 은총을 입지도 못한 채 충심으로 봉사하는 마부를 보고 있으려니 2025년 대한민국에 실재하는 어떤 자들 생각이 나네. (미)
- 자, 보시게,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네. 황제폐하는 지치지도 않으시는 것 같군. 하지만 최근에는 말없이 썰고 쪼개고 계실 뿐이네. 나에게는 더 이상 목록표를 작성할 의무도 없어. 그러나 도른 지역 근처의 벌채지에는 해마다 새로운 식물들, 즉 어느 정도 자라면 폐하가 베어버릴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어요.(영)
* 나의 세기:
-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공공도서관인 경성도서관이 조선총독부 경성부에 소유권을 넘겼다. 경성도서관은 현재 사직동에 있는 서울시립 종로도서관이다. 종로도서관은 길담서원과 함께 나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이다. (현)
- 1926년 11월4일 처음으로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 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와 신민사의 공동주체로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에서 열림.처음 명칭은 "가갸날"이라고 했고, 1928년에"한글날"이라 붙여졌다. 일제치하에 있었음에도 선조들은 우리한글 .말과 정신을 지켜려고 많은 애를 썼다. 한글을 더 사랑하자(희)
- 10월 9일 한글 학회의 주도로 한글날이 만들어졌다.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 가장 빨리 번성한 나라의 이면엔 한글의 우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독점되지 않은 사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도 한글의 우수성 덕분. 조상님들 만세! (숲)
- 6월 10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 황제의 장례식이 있었어. 영상을 찾아보니 원래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이 이랬나? 싶었어. 칼 찬 일본 순사도 보이고...1926년엔 국민이 부른대도 응할 수 있는 황제가 없어졌어. (탱)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발표. 내가 좋아했고 많이 불렀던 노래. (반)
- 순종홤제 장례식때 독립만세운동이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의 빌미를 제공했다. 의혈단원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회사와 동양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과 한용운의 임의 침묵을 출간해서 민중의 독립운동을 고취했다. (촌)
- <아리랑>은 나운규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아 제작된 최초의 한국 영화다. 개봉 첫날 경찰 기마대가 동원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일제에 억눌렸던 한민족의 잠재적인 민족애를 표방한 영화로 1928년까지 단성사에서 2년 넘게 상영되었으며, 1927년에는 일본에서도 상영되었다. 이후 아리랑은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되었으며 2003년에 이두용 감독이 리메이크하여 남북한에 동시 개봉한 첫 영화라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첫 개봉 때는 일제에 의해 변사가 부르지 못했다. 아리랑은 우리 마음을 흔드는 우리 노래다. (공)
- 192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에 훈민정음 반포 여덟 회갑(48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이라 했다. 1928년부터는 주시경이 제안했던 이름인 '한글날'로 명명했다.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혜례본> 서문 기록을 토대로 10월 9일로 변경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인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정했다고 한다.(알)
-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발간되었다. 제2의 만세운동이었던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나운규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흑백 35밀리 무성영화 <아리랑>이 개봉했다.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 480년을 기념해 '가갸날'을 제정하였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