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박완서)
[줄거리]
나는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세 번째 남자와 결혼하면서 지방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서울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피난 시절 눈발 속에 웅장하게 서 있던 남대문의 '비장미의 영상'을 향수로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 서울은 급격한 근대화의 도정 위에 놓여 있는 분주한 일상의 공간으로 비쳐진다. 더구나 물질주의에 전도된 그 속물적 공간은 남편과 동창들이 펼쳐 보이는 위장과 가식으로 점철된 환멸의 무대이다. 학창 시절 유난히 부끄러움을 타던 나 또한 이와 같은 세태를 살아가면서 변모를 겪어 간다. 그리고 이렇게 화자의 삶의 방식이 변모한 데는 전쟁 이후의 피폐한 삶과 그로 말미암은 윤리적 파탄의 상황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밑그림으로 놓여 있다.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1970년대 초반의 서울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제 ⇒ 형식적 근대화에 대한 비판과 삶의 진정성 회복에 대한 소망
■ 출전 : <신동아>(1974. 8)에 발표
인물의 성격
나 → 작품의 화자. 유난히 부끄러움을 타던 소녀였으나 가난한 기지촌 생활과 세 번의 결혼 등의 편력을 통해 현실적 감각을 갖게 된 중년 여인
남편들 → 첫 번째 남편은 교만한 중농, 두 번째 남편은 위선적인 지방대 강사, 세 번째 남편은 철저한 배금주의자로 각각 설정되어 있다.
동창들 → 고생고생하다 한 밑천 잡은 희숙, 직업 여성 영미, 고위층 남편을 가진 경희 등 모두 세속적인 중년여성들로 그려져 있다.
구성 단계
발단 : 분주한 서울 생활에서 화자는 마음의 피로를 느낀다.
전개 : 동창들과의 만남. 어린 시절 각박한 삶에 대한 고백적 서술, 세 번에 걸친 결혼 생활의 내력이 소개된다.
위기 : 동창의 집을 찾은 화자는 화려한 살림살이와 세련된 동창의 포즈에 담겨 있는 가식과 속물성을 발견한다.
절정 : 우연히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관광객 안애인의 말을 듣고 화자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되찾는다.
결말 : 화자는 모처럼 돌아온 부끄러움의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해와 감상
◈ 중년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물질적 가치에 전도된 형식적 근대화의 부정적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고, 그 과정 속에서 삶의 진정성이 상실되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가족사의 내력 및 결혼 생활에 대한 고백적 서술과 동창들의 피상적 삶에 대한 관찰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던 작품의 전개, 화자가 우연히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던 여자의 속삭임을 듣는 것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을 맞기에 이른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그 여자의 말로 인해 화자는 부끄러움의 감각을 불현 듯 느끼게 되는 바, 그것은 물질적인 가치에 경도된 채 형식적인 근대화에 치중하는 현실적 상황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공백에 대한 뼈저린 자각을 의미한다. 마지막 장면은 세속적인 출세욕을 상징하는 각종 학원 간판의 밀림 속에서 돌연 부끄러움을 가르치자고 외치는 화자의 반어적 태도가 나타난다. 형식적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상실된 삶의 진정성을 환기하고자 하는 계몽적 의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한편 '굳이 깃발이 아니더라도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날려야 할 것 같다'는 표현에서는 그 절실함이 느껴진다.
◈ 이 작품의 제목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이다. 여기에서 '부끄러움'의 감정은 화자가 속물적인 세태 속에서 현실적으로 변모하기 이전에 지니고 있었던 순수한 감정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긴장감의 표현이며, 주체와 상황에 대한 반성적 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반면 전후의 폐허적 상황 속에서 출발한 급격한 근대화의 흐름은 정신적 가치를 외면한 채, 물질적인 개발에 치우치는 과도기적 불균형 상태를 드러낸다. 그와 같은 피상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삶의 진정성은 상실되고, 물질적 가치만이 유일한 삶의 지표로 작용하는 전도된 가치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세계는 외면적으로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지만, '부끄러움'도 없이 추구되는 세속적 출세의 욕망과 금전적 가치 위에 구축된 허구적 삶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부끄러움'의 감정을 회복하는 것은 곧 이와 같은 추악한 현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일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은 '전도된 가치의 질서 속에서 삶에 대한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환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