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에서 들려오는 문장 소리
유당 이정경
혼자 책 속에 몰입한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문밖의 노래처럼 크게 들린다. 또렷하고 선명하다.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견뎌내어야 할 고독의 무게, 깊이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심연의 진리를 체득하게 한다.
지난 을사년 가을, 단풍잎이 지상에 휘날릴 때 나는 『영미문학 향연』이라는 책을 생산하려고 온 정열을 쏟아야만 했다. 내 지식 한계 밖의 학문과 능력에 머리를 곤두세워 가로로 휘젓기도 하고 가끔은 세로로 생각의 줄기를 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을사년 마지막 한 해의 결실에 나의 온 열정과 에너지를 끌어모아서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미숙한 것이 아니다. 출판사 측 편집과 책 내용의 영어 오류는 내 마음에 흔들거리는 폭풍의 갈림길과 혼돈을 불러일으켰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머릿속 그림의 설계가 엉뚱한 곳으로 아니면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릴까 봐, 매 순간 아찔한 마음을 가다듬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눈이 되고 길이 되어 내 책의 안내자인 영문학 박사 사부님이 안 계셨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문맹의 늪에 빠질 기로에 설쯤에, 그 분이 최선을 다 해서 자기 책처럼 도와주셔서 끝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 처음부터 밝혀내지 못했던 부실한 해독(解讀)이 막바지에 가서 몇 배의 고충으로 헉헉거리게 하는 초긴장을 유발했다.
나 홀로 오롯이 설 수 없는 불완전한 직립 인생에, 양 날개처럼 누군가가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있었기에 기분 좋은 결실을 맺지 않았을까. 밥 끼니를 수시로 거르고, 에너지 충전의 보약인 잠을 가벼운 날개처럼 쉽게 날려 뜬눈으로 하얗게 불태울 수 있었던 용기와 집념은,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이미 놓쳐버린 과거에 대한 통곡의 안타까운 허송세월이 오늘의 나를 억척스럽게 매달리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는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늦게 설치는 나의 독특한 삶에 걱정해 주시기도 하고 이해를 못 하기도 하지만, 결코 나는 안일하게 놀고 쉬어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절정이고 열정이었을 때 나는 베짱이 노래만 불러대며 놀고먹기만 했으니까. 많이 늦었지만, 하루의 선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소중한 여정이 시작되어서다.
책 편집을 위해서 인터넷 접속이 필요하고 노트북을 반듯하게 제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책상이 있고 의자가 가지런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높은 음악 소리는 고성의 목소리로 한 공간을 지배하며 대중의 의식은 무시한 채 자유분방하게 공중회전 하며 유유자적 흐느끼고 있다. 그렇게 여유를 즐길 준비가 못 되는 나는, 사부님과 같이 도망치듯이 빠져나와서 잔물결의 파도타기 선율이 흐르는 공간을 찾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무겁게 쌓인 여러 장르의 학문과 감성이 간간이 섞인 문학 글들의 보따리를 들고서, 한적한 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일 분이 일 초의 가파른 속도로 다가와 서둘러 찾은 고요한 공간에 책 작업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머리를 맞대고 몰입하여 한 길의 글을 찾고 한 문장으로 호흡을 맞추어 가는 순간은, 몰아일여(沒我一如)의 시간이었다. 가끔 옆을 돌아보며 상대의 존재는 물론, 심호흡조차 편하고 쉽게 들이마시고 내쉴 여유가 없었다. 몇 시간을 오직 글 속에 파묻혀, 문장 속의 주제와 의미에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밥 먹을 시간이 코앞에 다가와 후다닥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가 끼니를 챙기는 긴박한 시간이 서너 달 되었다. 때로는 영업 종료 시간을 맞추지 못해, 놓친 기회를 안타까워할 겨를도 없이 다른 곳에 눈길을 돌려 허기를 채우기도 했던, 그때의 장면들.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고심한 『영미문학 향연』 책 탄생의 비화(秘話)다. 나처럼 뒤늦게 학문에 전념하는 이에게 길동무가 되어서, 살아있는 생명의 언어로 홀로 불 밝혀 지새우는 그(그녀)에게 착한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유익한 문장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이정경(유당) 프로필
방송대 국문과 · 영문과 졸업
2011년 수필시대, 2017년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
수필집 : 『길 따라 꿈 피어나고』 한·영 수필집 출간
인문학 책 : 『 영미문학 향연』 출간
kyung6378@hanmail.net
첫댓글 애쓰셨습니다.선생님^^
회장님 감사합니다!
마감을 지나 올려서 죄송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