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아내 - 안유환
밤새 한잠도 못잔 것 같았다.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카디건을 걸쳤다. 거실 공기는 썰렁했다. 아내의 방문은 꼭 닫힌 채로 조용하다. 주방과 식탁의 불을 켰다. 양은대야의 쌀뜨물에 담가둔 도라지는 말갛게 가라앉은 물속에 얌전히 잠겨 있다. 도라지 일곱 뿌리를 건져내어 다시 맑은 물에 흔들어 씻었다. 독기가 많다는 꼭지부분을 잘라내고 비스듬히 토막으로 썰었다. 도라지를 담은 유리볼에 1.8리터 물 한 병을 다 붓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파란 불꽃이 내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퍼져나갔다. 열기를 받은 물이 도라지 사이를 비집고 아래위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창밖은 휘―, 겨울바람이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윽고 물이 끓기 시작했다. 끓는 물은 도라지 토막들을 아래에서 위로 자꾸 밀어 올리며 거품을 내뿜고 있다. 뚜껑을 옆으로 조금 밀쳐두고 가스 불을 절반으로 낮췄다. 결혼 초창기에는 아내가 그의 탕약을 달였으나 지금은 무엇이나 손수 할 때가 많다.
온천시장에서 도라지를 사온 것은 어제 오후였다. 오자마자 도라지를 물에 담가 놓았다. 두 시간쯤 지나고 건져내어 뿌리에 붙어있던 흙을 씻어냈다. 바깥은 어두워졌다. 아내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주말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아내의 손길을 기다리려면 언제가 될지 모른다. 오랜 기침 때문에 아내를 성가시게 한 것이 미안해 도라지를 직접 손질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쓰다만 칫솔을 가져와 뿌리부분을 속속들이 문질렀다. 뿌리사이에 끼어있던 흙이 다 떨어져 나가고 시커멓던 껍질 부분도 대부분 허옇게 벗겨졌다.
“여보, 쌀뜨물이 있어야겠는데−.”
TV에 빠져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만들어야지.”
아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어렵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은 밥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쌀뜨물을 만들어?”
그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쌀 한 컵과 물을 부어 도깨비방망이로 곱게 갈았다. 순식간에 쌀뜨물이 만들어졌다. 도라지의 독기를 제거하려면 쌀뜨물에 담가 하룻밤을 재워야 한다고 고모가 일러주었다. 그는 밤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이상하게도 낮에는 기침이 덜하지만 밤에는 발작하듯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보던 TV를 끄고 잘 준비를 했다. 한 뼘쯤 열어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서 추위가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크리스마스트리 불이 반짝이고 있을 뿐, 밤11시가 지난 집안은 고요하다. 남편은 싱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콜록 콜록 콜록 –, 콜록 콜록 –, 콜록 콜록 콜록 콜록 –, 콜록 콜록 콜록 –, ······.”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다 윗몸을 일으켜 책상위에 놓인 종이컵에 가래를 뱉어냈다. 앉아 있을 때 나오지 않던 기침이 자리에 누우면 쉼 없이 계속된다. 눕지 않고 잠을 잘 수는 없을까?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오른편 침대 쪽으로 끌어당겨 두 발은 침대위에 올려놓았다. 이불을 가슴팍까지 그러 덮었다. 의자에 기대어 잠잘 준비를 완료한 것이다. 자리에 눕기만 하면 심한 기침이 나오고 가래가 목구멍을 가로막기 때문에 부득이 생각해낸 취침수단이다.
거실을 사이에 둔 건넌방에서 아내는 잠을 잘 잘 것이다. 기침소리도 듣지 않고. 아내는 여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자상하지 못한 성격이지만 건강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아내와 딴방 거처를 하게 된 것은 정년퇴직을 하면서부터 아내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잠들면 그가 몹시 코를 골았기 때문이다. 그는 침대를 서재로 옮겨 서제와 침실을 겸했다. 언젠가 밤중에 아내가 감기로 심한 기침을 하는 소리가 이쪽 방까지 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내도 그가 기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심한 기침을 할 때 건너가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가 기침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지가 3주가 되어도 두 사람은 이튿날 아침 거실에서 얼굴을 대할 뿐이다.
“여보, 생강 대추를 푹 고와서 먹는다는 한방약 있잖아?”
그는 며칠 전 구원병을 청하듯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모부가 기침으로 고생한다고 말했더니 명희가 한방약을 카톡으로 알려주었어요. 내가 어제 그 말 할 때 자기는 들은 체 만 체 하더니−.”
아내는 나름대로 남편의 기침감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후에 아내는 목욕탕으로 가고 그는 홀로 집에 남았다. 동지가 내일 모레이니 해는 한껏 짧아졌다. 성탄절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보이다. 어떤 이는 감기 때문에 입원을 했다는 말도 들린다. 또 어떤 이는 다 나아 퇴원했다가 기침이 재발해서 다시 입원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고모님은 잘 계실까?’
매월 초순에는 홀로 사는 고모를 방문하던 일을 이번 달에는 기침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고모는 처녀 때 외아들인 그를 업어 키워주었다. 장난감이 없던 시절에 종이접기로 새나 배를 만들어주고, 부모님이 들에 나가고 나면 그를 데리고 땅따먹기를 하며 같이 놀아주었다. 저녁때가 되면 어린조카를 발가벗겨 씻겨 주고 속옷을 갈아입혀주었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고모는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으나 일찍이 남편을 여이고 자식도 없이 홀로 살고 있다. 찾아뵙지는 못해도 전화로라도 문안을 드리려고 버턴을 눌렀다.
“콜록, 콜록, 콜록−.”
인사도 드리기 전에 기침이 먼저 터져 나왔다.
“여보세요−. 조카가? 왜 그래 기침이?”
고모는 빠른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
“예, 평안하시지요. 콜록, 콜록. 감기 때문에 찾아뵙지도 못 하고, 콜록, 콜록, 콜록.”
“아이고 기침이 심하구나. 조리나 잘 해라. 전화 끊어야겠다.”
그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고모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손에든 비닐주머니에는 대파가 삐죽이 나와 있고 생강·대추·배 까지 한보따리 한방 약제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달여 준 생강차를 아무리 마셔도 그의 기침은 여전했다.
그가 기침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하순께부터였다. 그날은 새로 산 승용차 엔진오일을 처음으로 교환하는 날이었다. 그의 옷차림은 가을철 등산셔츠와 그 위에 얇은 점퍼를 걸쳤다. 차를 운전할 때나 산책길 운동을 할 때 알맞은 복장이었다. 정비소의 승용차 거치대가 있는 곳은 그늘진 북향으로 맞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마당 건너 맞은편 남향인 담벼락에는 저녁햇살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그가 서있는 곳은 유달리 바람이 차가왔다. 정비기사의 두툼한 방한복 스타일에 비하면 그의 복장은 보기만 해도 추워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등이 서늘해지고 추위를 느꼈지만 정비사의 새 차 사용설명을 듣다말고 사무실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해 그림자가 담벼락을 넘어갈 때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목안이 까칠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환절기에 감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 정도 추위로 감기가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식사 전에 뜨거운 물로 오래 동안 샤워를 하여 몸을 녹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약간씩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기증세가 나타나면 비타민C 몇 알씩을 아침저녁으로 며칠간 복용하는 것으로 거뜬히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기침은 조금씩 심해지고 가래는 끊임없이 생겨났다. 부득불 K의원을 찾아갔다. 먼저 와서 대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30분이 넘게 순번을 기다렸다. 진료카드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오랜만입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이번 감기는 열도 나지 않고 몸살기도 없이 기침만 나왔다. 코와 인후를 치익–, 치익–, 살충제를 뿌리듯 간단히 치료하고 4일분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을 복용하는 며칠 동안 낮에는 별로 기침이 심하지 않아 견딜 만했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우면 기침은 더욱 잦아지고 가래가 계속 끓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덕분에 한밤중에 일어나 며칠 째 밀린 성경을 읽고 기도드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기침은 더욱 심해졌다. 약을 다 먹기까지 나흘을 기다려 두 번째 K의원을 찾았다.
“가래만 안 나오면 기침도 멎을 것 같은데요.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간곡히 고통을 호소했다.
“기침 가래, 세게 처방을 해봅시다.”
두 번째 약을 받아왔지만 차도는 없었다. 종이 컵 가래 통을 밤낮으로 갈아내야 할 만큼 가래기침은 극성을 부렸다. 겨울문턱의 첫추위에 잘 대비하지 못한 사소한 일이 병을 불러온 것이다. 기침을 하기 시작한지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오후에는 이틀에 한번 씩 산책을 하던 것도 하지 못하고 방에만 틀어박혀있다.
그저께 목요일의 일이다. 점심 식사 후에 세 번째 K의원을 찾았다. 혼자 갈 수도 있지만 아내와 동행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퇴직한 남편들이 아내가 외출할 때면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고 할 수 있으면 아내가 가는 곳에 따라가고 싶어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남편의 잦은 짜증 때문인지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K의원의 대기실은 항상 환자가 가득 차있다. 주차를 하고서 조금 늦게 들어가면 4~5명 쯤 접수순서가 뒤로 밀려난다. 함께 갈 때면 그가 골목길에 주차공간을 찾을 동안 아내가 먼저 들어가 접수를 하는 것이었다. 대기실 TV모니터 오른쪽에는 환자들의 순번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 언제나 대기실에는 앉을 자리가 모자란다. 그날은 웬일인지 접수를 하러 먼저 병원에 들어간 아내가 곧바로 그가 주차하고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알고 보니 진료시간을 잘 못 알았던 것이다.
“1시30분부터 진료하는데 대기실엔 불이 없이 컴컴하고, 의자엔 환자들이 빈틈없이 앉아있고−.”
어깨를 잔뜩 웅크린 아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진료를 받으려면 지금부터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차의 시동을 걸어 다시 히터를 켜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FM라디오를 틀었다. 음악을 들으며 기침을 하며 30분쯤 시간이 지났다. 그가 아내대신 대기실 상황을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먼저 집에 가도 되겠네.”
아내는 찬바람이 몸에 좋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집에까지 태워다주고 다시 올까?”
“택시 타고 가면 되지 뭐.”
“그게 좋겠어! 내가 기다렸다 치료받고 갈께. 당신은 먼저 집에 가서 쉬어요.”
아내는 차에서 내렸다. 코트 포켓에 양손을 집어넣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룸미러에 비쳤다. 그는 차 안에서 좀 더 기다렸다가 K의원으로 들어갔다. 대기자들은 빼곡했고 세 사람씩 호명되어 진료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TV모니터에는 27번째로 그의 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었다. 그리고 돌아와 앉을 데가 없어 접수대 옆에 비치된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녹차를 탔다. 목을 따뜻하게 할 요량이었다. 환자들은 잇달아 진료실로 불려 들어갔다. 그는 대기실 맨 뒤쪽에 나온 빈자리로 얼른 가서 앉았다. 잠시 후 다시 가래를 뱉으러 화장실에 갔다 나올 때 TV모니터 오른쪽에 앉은 빨간 코트에 눈길이 갔다. 그는 흠칫 놀랐다. 집에 먼저 간다던 아내가 대기자 틈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나봐.’
그는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마침내 진료를 받고 나와 아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보, 갑시다.”
아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먼저 집에 간다더니?”
계단을 내려오며 아내에게 말을 던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안 잡혀서, 춥기도 하고, 나도 감기가 들까 싶어 따뜻한 병원대기실로 들어왔지.”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이 서운했다.
그는 지난밤도 의자에 앉아 견딜 때가지 견디다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침대에 몸을 눕혔다. 의술이 이렇게 발달했는데도 기침하나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원을 옮겨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요즘 감기는 병원에 가면 2주, 참고 견디면 보름이면 낫는다는 말이 있지만 벌써 3주가 가까웠다. 이번에는 낫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한 번 더, 네 번째로 K의원을 찾았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아무래도 S병원으로 가봐야겠네. 주치의처럼 잘 봐주니까.”
보다 못해 아내가 한 말이다.
S병원은 선교를 위해 세워진 병원이며 해외 선교사들의 질병은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었다. 신앙이 좋은 아버지가 10여 년 전 병원을 세웠고 아들은 원장 겸 내과 과장이다. L과장은 장로인 그를 자상하게 진료해주고 성탄절까지 5일분 약을 처방해주었다. S병원을 다녀온 금요일 날 밤에도 기침은 멎지 않고 가래가 끓어 이틀 후에는 병원 약 먹기를 포기했다.
그다음 날은 한의원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30여 년 전 초량에 살 때 효험을 보았던 Y한의원을 찾았다. 이제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기대와는 달리 기침가래는 여전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틀이 지나도 차도는 전혀 없었다.
이튿날 토요일 오후에는 뜻밖에 고모가 찾아 왔다. 지난 주간 전화로 문안을 할 때 심한 기침을 하던 조카를 문병하기 위해. 그는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고모를 맞아들였다.
“아직도 그렇게 기침을 하다니. 질부는 어데 갔나? 쯧쯧”
고모는 어쩌다 한 번씩 찾아 올 때는 전화도 없이 불쑥 나타난다.
“조금 전에 목욕하러 갔습니다.”
아내는 성격이 까다로운 시 고모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모는 생강과 배를 저며 꿀에 쟁인 것을 한통 들고 왔다.
“이것을 먹으면 좀 나으려나?”
“우리도 배를 갈아서 먹고 있는데 별로 효력이 없어요.”
“기침에는 도라지가 좋아. 오랜 기침가래에는 도라지 이상 약이 없지, 아암!”
고모는 도라지를 달여 먹는 법을 자세하게 일러주고 일어섰다. 저녁 식사나 하고 가시라는 그의 말을 뒤로 흘리며 고모는 바삐 돌아갔다.
일요일 아침, 평소에는 아내가 식사준비를 할 때 FM음악을 듣지만 주일아침에는 남편의 휴대폰으로 찬송가를 듣는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남편이 식탁으로 나오지 않자 아내가 방문을 열고 말했다.
“좀 어떠세요?”
아내의 말은 인사나 위로의 말로 들리지 않고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마치 결과를 확인하러 온 것 같았다. 메데 나라 다리오왕은 신하들의 음모로 인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는데 동의하게 되었다. 이튿날 왕은 새벽 일찍 일어나 사자굴로 달려가서 다니엘을 부른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다리오 왕의 이 말은 다니엘이 살아있기를 바라기 보다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 말을 들으면서 다리오 왕이 생각났다.
“나 안 죽고 살아 있소!”
그렇게 밤새도록 기침을 해도 기척을 하지 않던 아내가 이제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러 왔느냐는 어투였다. 그는 식탁에 마주 앉아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면서 고모가 일러준 도라지 처방을 이야기 했다.
“오랜 기침에는 도라지가 좋은 가봐. 어제 고모님이 다녀가셨어.”
“왜 내게는 고모님 오셨다는 말을 안했어요?”
“당신 목욕탕에 갔을 때였어. 미리 전화도 하지 않고 갑자기 오셨다가 기침약만 일러주고 바로 가셨어. 당신, 고모님 좋아하지도 않는데 잘되었지 뭐. 콜록 콜록.”
“······! 도라지를 어떻게 해먹는데?”
그는 고모가 일러준 대로 도라지 달여 먹는 법을 아내에게 일러주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온천시장 약초방에 들러 도라지 1kg을 사왔다. 그리고 고모의 말 대로 그가 손수 도라지를 다듬어 하룻밤 쌀뜨물에 담가놓았던 것이다.
고통의 밤이 또 하루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면서 뒷동 아파트의 옥상 공동 안테나에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도라지가 끓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다 주방의 FM라디오를 켰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 이른 아침부터 경쾌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 아침을 먹을 시간인데 아내의 방은 조용하다. 그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올렸다. 이것은 평소에도 늦잠 자는 아내를 깨우는 방법이다. 팻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감미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팻분을 들으면 비로소 크리스마스가 온 것 같아!”
노래 소리를 듣고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콜록, 콜록, 콜록,······.”
그는 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화장실로 가서 가래를 뱉어냈다.
“도라지가 잘 달여지고 있네. 혼자서도 잘하네요! 기침은 좀 어때요?”
아내의 어감은 흡사 담 너머 이웃집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입맛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조간신문을 가져다 왼쪽으로 식탁위에 펼쳤다. 아내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신문을 보는 것을 나무란다. 오늘도 그의 시선은 신문지면을 훑고 있다. 신문 건강섹션에는 ‘기침감기에 도라지 엑기스’ 등 한방 약제를 소개하고 있었다. 광고 면에도 도라지 약제가 눈에 띠었다. 도라지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보이는 것이 모두 도라지뿐이다. 식사를 마칠 동안 끓는 도라지 물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가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달인 물을 다른 유리그릇으로 옮겼다. 맥주 색깔보다 더 진한 약물은 세 컵 정도 되었다. 볼에는 다시 물을 부어 재탕으로 올렸다.
아내는 식탁을 그대로 미뤄둔 채 늦은 밤 녹화해두었던 연속극을 꺼내 보고 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지만 몸이 아프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너그러운 마음은 졸아들고 화를 내는 일도 잦아졌다.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면 그의 까다로운 성격을 알고 있기에 아내가 한 발짝 물러선다. 어떤 때는 그가 먼저 불만을 거둬들인다. 그러나 심한 기침으로 3주간 넘게 고통을 당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주 짜증을 낸다.
아내가 마트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건너편 동에 사는 아내의 친구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스스럼없는 친구이고 그녀의 남편도 아내를 알고 있는 사이이다.
“으-ㅇ, 응, 잘 있지. 웬일이야?”
아내가 전화를 받고 있다.
“오늘 저녁에 음악회−? 좋지! 어덴데?”
아내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무턱대고 동의하는 품이 거슬렸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통화를 이어갔다. 그는 “콜록, 콜록······.” 계속되는 기침 때문에 방으로 들어갔다. 전화를 끝낸 아내가 그의 방으로 들어와서 통화내용을 알려줬다. 창원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남편의 친구 딸이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송년음악회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유명 성악가들도 출연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공연 시작시간은 7시30분이고 친구네 차로 동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처럼 오래도록 기침으로 고통당하고 있는데 혼자서 음악회라니?’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삼켰다. 친구와 약속까지 해놓았다는 것을 취소하라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았다. 고집스런 아내도 말을 듣지 않을 것이었다. 그날 저녁 6시쯤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앗사−!”라고 좋아하며 아내는 저녁도 먹지 않고 집을 빠져나갔다. 남편의 기침소리를 끊임없이 듣는 것보다 감미로운 음악회가 더 나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철이 들기를 기다려야 할까? 너무 젊은 아내를 선택한 자기를 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랍장에서 꺼낸 먼저간 아내의 빛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참이나 넋두리를 했다.
그는 혼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전혀 맛을 느끼지 못했다. 밥은 혓바닥에 이물질을 올려놓은 것 같고 고기를 먹어도 스펀지를 씹는 것처럼 질겅거렸다. 요즘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아내를 쳐다볼 때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그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동안 체중은 3kg이나 빠졌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눈이 퀭하다.
식사를 하고나서 도라지 약물을 한 컵 마셨다. 아침부터 두 차례 달인 물을 마신 것 때문인지 기침은 약간 덜 한 것 같았다. “콜록 콜록 콜록–.” 그는 누웠다 앉았다하며 기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잠시 9시 TV뉴스를 보았으나 책을 읽기도 어려웠다. 김해까지 1시간 거리이지만 밤10시가 넘어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볼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생각을 접었다. 가래기침이 차오르는 것처럼 아내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밤11시가 넘어서 현관문을 여는 삐, 삐, 삐, 소리가 났다.
“다녀왔습니다−!”
“콜록, 콜록.” 남편의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내는 다른 말이 없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음악회에 다녀온 것을 두고 구태여 트집 잡고 싶지는 않았다. 불만을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참지 못하고 가래를 뱉어내듯 꿈틀거리던 분을 쏟아놓았다.
“자기 남편은 기침으로 초죽음인데 남의 남편을 따라 밤늦도록 합창공연을 보러간 것이, 그게 그림이 제대로 된 거냐!”
그는 억지소리를 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친구와 함께 모처럼 음악회에 갔는데 무슨 그림이 잘못되었다고?”
아내는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그의 짜증을 맞받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렇지! 부부간에 음악회에 가는데 이웃집 여자가 함께 따라가다니, 그게 말이나 되느냐?”
음악회가 뜻하지 않게 한바탕 부부싸움을 불러왔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나, 참, 이해가 안 되네! 이럴 때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
요즘은 화나면 아내가 최후통첩처럼 한 번씩 내뱉는 말이다.
“혼자 살아! 나도 이젠 혼자서 뭐든지 잘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할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가 딴 사람 같았다. 아내는 남편이 퇴직을 하고부터 어쩌다 언쟁이 심해지면 ‘홀로 서기’를 한차례씩 입에 올리곤 했다. 남편도 큰소리로 맞서지만 홀로서기에는 기가 죽는 편이다. 아무리 마음이 맞지 않아도 두 번씩이나 아내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
아내도 자기가 한 일이 잘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신이 늘 수고가 많지만 오늘 일은 이해가 안 되네.”
그는 언쟁을 멈추고 싶어 엉뚱하게 ‘아내의 수고’를 들먹이며 출구전략을 짰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이다. 남편이 톤은 낮추고 말이 부드러워지자 험악하던(?) 분위기는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분통을 터뜨릴 심각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아내는 제방으로 가고 그는 도라지 약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설픈 화해로 언쟁을 끝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중년에 부부가 새롭게 호흡을 맞춘다는 것은 깨어진 사기그릇을 붙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언제나 자기주장을 결론으로 남기려고 서로가 얼마나 많은 애를 썼던가? 두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지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지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지치지 않았다. 지친 것은 남편 쪽이었다. 그는 소리치고 화를 내다 제풀에 지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설득 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영복의 『담론』에서 읽은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무려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는 남편의 기침 때문에 아내가 집에 꼭 붙어있어야 하랴? 음악회에 다녀온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함께 가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새삼 그는 중년에 유방암으로 먼저 떠나간 아내가 한없이 그리웠다. 언제부터인가 출가한 딸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명절에도 찾아오지 않는다. 아내의 생전에 잘해주지 못한 일들이 후회의 밀물이 되고 있었다. 그는 지난날 잘하지 못했던 일들을 지금의 아내에게 해주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는 벽시계가 아침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단잠을 자본지는 까마득한 기억인 것 같았다. 자리에 눕지도 못하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는데 기침한번 하지 않고 가래도 뱉지 않고 숙면을 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도라지 약물이 묘약이었다. 백약이 무효인줄 알았는데 약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잃어버린 내일을 되찾은 것 같았다. 주방에서는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른하던 몸에 시장기를 느끼며 기운이 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있게 밥을 먹고 싶었다.
*다니엘 6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