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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으로 내세운 ‘워킹푸어(Working Poor)’는 노동력을 제공하며 돈을 벌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며, 이를 ‘노동빈곤’이라 번역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일단 취직을 하면 정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이른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장을 선택하여 이직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누군가는 더 좋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다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노동 강도가 더 세지고 심지어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하겠다.
‘3대 가족의 노동 이야기’를 표방한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부모로부터 형제들 그리고 조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5명의 직업과 그에 다른 노동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한때 언론사에 근무한 적이 있던 저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자신의 집안 3대에 걸친 이들의 노동의 역사와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1960년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노동자로 활동하면서, 한때는 가방 공장과 가방 자재 도매상 사장으로 자리를 잡았던 저자의 아버지는 1997년 닥친 IMF로 인해서 부도를 겪고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20년 동안 다시 일어서길 바라며 퀵 서비스 기사로 활동을 했으나, 끝내 ‘퀵 서비스 가게 사장’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70대의 나이로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의 노력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던 그 시절과 이후의 노동 조건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저자의 자매들인 두 언니 중 하나는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대학입시에 실패를 하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KT 전화 안내원으로 일했으며, 때마침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결혼과 함께 퇴사를 하여 전업 주부로 살고 있는 그 노동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의 언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중소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다가, 29살의 나이에 두 아들을 키우는 ‘여성 가구주’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소형 밴을 사서 이른바 ‘다마스 퀵 서비스 기사’로 활동하면서, 그 수익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내용의 노동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어서 중3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조카와 중1의 나이로 가출을 하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다른 조카의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청소 노동을 하다가 산재를 당해서 거동이 어렵고 말을 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연과 저자 자신의 노동의 이력이 간단히 언급되기도 한다. 한 가족의 3대에 걸친 노동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노동 이력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 혹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으나, 이제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표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자 가족의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은 가난으로 훼손당했다’고 고백한다. 아울러 ‘일하는 자의 가난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직장에 다닐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준의 급여’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자의 이러한 바람은 제대로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노동은 인간의 의무이자 권이’이며, ‘노동자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며 존경과 애정’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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