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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시는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특히 이번 시들은 전체적으로 호흡은 짧아졌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시들에서는 긴 호흡의 시행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체로 간결한 시행을 통해서 시인의 감성을 정리하고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이는 ‘언어를 고르고 골라 빚어낸 한 편의 시를 읽다 보면 공들임의 언어를 넘어 공들임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고 풀어내고 있다. 그렇게 ‘공들임의 마음’으로 빚어낸 시인의 작품은 길이는 짧지만,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서일까. 시인의 시선은 가족들과의 추억이나 자연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 바로 ‘꽃’이며.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누나의 작은 등에 업혀 / 빈 마당을 돌고돌고 있었’던 ‘첫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에는 / 물드는 잎사귀마다 음색’을 찾아내고, 자신의 거처에까지 들려오는 종소리를 소재로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그의 작품에는 사람보다 자연이나 주변 사물이 더 자주 등장하며, 간혹 시인의 추억을 채워준 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산에 사는 사람의 집에 찾아갔더니
뒷마당에 덩굴뿐이네
산이 한해에 한번 뒷마당까지 굼틀굼틀 내려왔다 간 듯이
뒷마당에 엉클어진 덩굴뿐이네
잎도 꽃도 없는
덩굴뿐이네
산의
촐촐 마른
끝자락.
<‘산가(山家)’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의 발걸음은 산속에 자리 잡은 외딴 집으로 향하고, 화자는 그곳에서 사람보다 먼저 ‘뒷마당에 엉클어진 덩굴’을 발견한다. 시인은 ‘산의 / 끝자락’에 위치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세에 녹아든 ‘산가(山家)’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비록 길이는 길지 않지만,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도록 만들고 있다.
<아침은 생각한다>라는 시집의 제목도 특이하다고 할 터인데, 여기에서 ‘생각’의 주체는 화자가 아닌 ‘아침’이기 때문이다. 매일 밤을 지나 새벽을 깨치며 시작되는 ‘아침’의 입장에서 새삼 생각해보니, 시인은 ‘세상에, 놀라워라!’라는 탄성을 토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 밤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룬 사람의 깊은 골짜기’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삽을 메고 농로로 나서는 사람의 어둑어둑한 새벽길’이나 ‘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장으로 가는 행상의 어머니’를 소환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둠을 헤치고 시작되는 아침은 시인에게 ‘광부처럼 밤의 갱도로부터 걸어나오는’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비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의 익숙한 얼굴을 떠올려보고, 더욱 깊어진 작품세계를 더듬어볼 수 잇는 시간이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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