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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저명한 상을 받아 이제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 잡은 한강의 첫 소설집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소외받는 이들이 주로 등장한다는 것이 한강의 소설에 주요 소재가 될 터인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역시 그러한 면이 두드러진다고 생각된다.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단편들로 엮어진, 이 책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함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평론가 김병익은 책의 뒷부분에 쓴 ‘해설’에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희망 없는 세상을, 고아처럼’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족 혹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인물들이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그들의 삶에 있어 좀처럼 희망을 찾기 힘든 상황이 그려지곤 한다.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작가의 대표적인 장편들, 예컨대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 보았던 인간 내면의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형상화하는 역량이,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표제작인 <여수의 사랑>은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동거하게 된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깔끔한 성격의 정선과는 달리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성격의 자흔이 함께 살면서, 오로지 ‘여수’라는 지명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득 사라진 자흔을 찾아서, 기차를 타고 여수로 향하는 정선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으로 작품은 종결된다. 물론 여수에 도착한 정선이 자흔을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떠나왔던 곳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작품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누군가에게 ‘귀향’이라는 단어는 아련하게 다가오고, 때로는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여수’라는 지명은 ‘가고 싶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래서 사라진 자흔을 찾는다는 핑계로 정선은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작품의 두 주인공에게는 그곳이 ‘여수’라는 지명으로 부각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곳이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김병익은 ‘해설’에서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정선과 자흔이 전혀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상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상반된 감정 혹은 성격들을 고려한다면, 두 인물이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증의 감정’이 그에 비견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여타의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상반된 존재 혹은 상황들은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26년 전에 출간되었던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후 한국 문단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한강이라는 소설가의 역량과 자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고 무거운 주제를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지만,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해가는 작가의 역량이 이 작품들에서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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